
내가 처음으로 교회 반주를 해 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전남 강진에 살기 전이었고,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니며 예배를 드리던 시절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하곤 했다. 새로운 곡을 배우는 것도 즐거웠고, 조금 어려운 곡을 반복해서 연습하다가 마침내 끝까지 연주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도 좋아했다. 그래서 피아노를 치는 일 자체는 내게 어렵거나 싫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집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는 것과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 앉아 반주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어느 주일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서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는데 엄마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씀하셨다. “이제 교회에서 반주를 한 번 해 보면 어떻겠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은 갑자기 무거워졌다. 사실 언젠가는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말을 직접 들으니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원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발표 시간이 되면 괜히 긴장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만 들어도 얼굴이 뜨거워지곤 했다. 그런데 교회 예배 시간에 피아노 앞에 앉아 반주를 한다는 것은 내게 정말 큰 부담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혹시 악보를 틀리면 어떡할까, 손이 꼬여 실수하면 어떡할까, 사람들이 내 실수를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괜히 내가 반주를 잘하지 못해서 예배 분위기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엄마가 반주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못 하겠어요.” “하기 싫어요.” “저는 안 할래요.” 사실 피아노를 싫어해서가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우리 가족은 강진으로 오게 되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면서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교회를 만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한 시기였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반주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엄마도 권하셨고 목사님께서도 교회에서 반주를 해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마음속에서는 계속 망설여졌다. 하지만 계속되는 권유 속에서 결국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 더 이상 피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처음 반주를 하던 날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는데 평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손바닥에는 땀이 나고 심장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손끝도 조금 떨렸다. 분명 집에서는 여러 번 연습한 곡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악보가 낯설게 느껴졌다. 예배 시작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긴장은 더 심해졌다. ‘혹시 틀리면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못 하겠다고 말할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예배가 시작되자 마음은 더 긴장되었다. 찬송가 반주를 하면서도 혹시 다음 부분을 잊어버리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날 예배 시간은 평소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긴장 속에서 어떻게 반주를 마쳤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예배가 끝난 뒤 나는 마음속으로 정말 큰 숨을 내쉬었다. 마치 아주 큰 시험을 끝낸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속에는 안도감만 남지 않았다. 힘들었고 긴장도 많이 했는데,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뿌듯함도 있었다. ‘생각보다 해냈네’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작은 경험이 내게는 아주 큰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여전히 반주 시간이 부담스러웠다. 주일이 가까워질수록 괜히 긴장이 되었고, 예배 전날이면 여러 번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하기도 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같은 부분을 계속 반복해서 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반주를 단순히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예배를 위해 반주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반주를 하다가 문득 성도들이 찬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함께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피아노 소리에 맞춰 한 목소리로 찬양하는 모습을 보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단순히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함께 섬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전까지는 반주를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일로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하나님께 드리는 소중한 섬김이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게 된 것이다.
특히 반주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다. 예배 전에 긴장될 때면 조용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실수하지 않게 해 주세요.” “예배를 잘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짧은 기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곤 했다. 긴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도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반주하기 전에는 긴장될 때가 있고, 가끔 실수할 때도 있다. 연습했던 것처럼 잘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두렵기만 하지는 않다. 오히려 부족한 나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돌아보면 반주를 하면서 피아노 실력만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믿음도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무척 두려워했다. 실수하는 것이 무서웠고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조금씩 변화시켜 주셨다.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용기를 주셨고, 조금씩 자신감을 주셨고, 조금씩 두려움을 이기게 해 주셨다. 또한 작은 섬김도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신다는 사실도 배우게 해 주셨다.
지금 돌아보면 처음 엄마가 반주를 해 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렇게 싫다고만 했던 내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때는 정말 하기 싫었고 두렵기만 했는데, 지금은 예배 시간에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이 감사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아마 이것은 내 힘만으로 된 일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 조금씩 나를 변화시키시고,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연습하고 싶다. 더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 반주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믿음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무엇보다 부족한 나를 사용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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