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 저는 엄마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 가지 않으면 엄마께 꾸중을 들어야 했으니까요.
엄마께서는 어릴 적 저희에게,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하나님을 믿는 자는 이래서는 안 된다. 이것 하지 마라, 저것 하지 마라”고 하시며 많은 제약을 두셨습니다. 그런 가르침은 사춘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면서 오히려 저를 교회에서 멀어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께서 제게 하셨던 행동들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고 하시던 엄마의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의 두 딸들이, 하나님을 멀리했던 저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만이 최선임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김봉연 권사님께서 예쁜 종이 한 장을 주시며 크로마하프를 하면서 느낀 점을 적어달라고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악기를 다루지 못했던 제가 아이노스 하프 팀에 합류한 후로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주 하프 특송이 있는 날, 가온이가 하늘소리 찬양팀 반주를 하게 되었고, 저는 기쁜 마음으로 가온이의 반주와 라온이의 찬양을 들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늘소리 찬양팀 반주는 온전히 가온이의 선택이었기에 더욱 감사했습니다.
이서현 권찰님께서 발령을 받아 광주로 가신 첫 주, 하늘소리 찬양팀의 찬양을 들으며 유난히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가끔 급한 일로 자리를 비우시는 권사님들의 빈자리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서현 권찰님의 자리가 허전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수진] “애들아, 오늘 하늘소리 찬양대에서 서현 선생님의 빈자리가 엄마 눈엔 크게 보이고 너무 허전하더라. 엄마가 그 자리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가온] “엄마, 노래 못하잖아!”
[수진] “뭐래~ 너는 잘해? 그것보다 엄마는 너희를 데리고 매주 아침 9시 30분까지 올 자신이 없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는 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목사님께서 가온이가 하늘소리 찬양팀 반주를 매주 맡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고, 부족한 저에게도 하늘소리 찬양팀에 설 수 있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지난 부활절 연합 예배 때, 샘 교회에서 느꼈던 그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감동은 우리 교회에서 제 딸들과 함께 하늘소리 찬양팀으로 첫 찬양을 드릴 때의 감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말 큰 감동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저 ‘가온이, 라온이가 찬양 반주를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큰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큰 딸의 반주에 맞추어 작은 딸과 찬양하는 그 시간은, 저에게는 감동과 감사가 넘치는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에 잘 일어나지 않는 아이들을 깨우고, 차에 태워 까치내재를 굽이굽이 넘어갈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할 일이구나. 나만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고도 즐겁게 교회에 올 수 있을 텐데… 과정이 어쨌든 지금 아이들은 나와 함께 교회로 향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조바심을 내었을까?’
화를 내며 교회로 향하지만, 예배를 드리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이 각자 악보를 스스로 챙기며 찬양을 부르면서 “엄마, 이 찬양은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거잖아?”라고 말할 때면 참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저는 이런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신앙생활을 보여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목사님의 설교 중, “몇 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느냐보다 성경을 몇 번 통독했느냐가 신앙생활의 기준이 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저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말씀을 묵상해보자는 마음을 품고, 말씀 묵상을 중심에 두신 목사님께 묵상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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