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말합니다(1). 스스로를 “주 안에서 갇힌 자”라고 소개하는 것은, 자신이 감옥에 갇힌 상황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으며,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한 권면이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것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바울이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연히 교회에 속하게 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신 자들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권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1).
성도의 정체성에 합당한 삶, 바울은 그것을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2-3). 성령께서 이미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기에, 우리는 주께서 이루어 주신 그 하나 됨을 훼손하지 않도록 힘써 지켜야 합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이란, 교회 안에서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같은 말을 하고,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함께 세워져 가는 것을 가리킵니다(고전1:10).
우리의 부르심도 이와 같이 “한 소망 안에서” 받은 것입니다(4).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기 권리와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몸 된 교회를 세우는 능력은 개인의 열심이나 탁월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데서 나옵니다. 갇힌 몸이면서도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가 되기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바울을 생각할 때, 내 중심의 사고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뜻 안에서 합당한 자로 살 수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을 위해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설명합니다.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7).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는 많은 것을, 누구에게는 적은 것을 나누어 주셨다는 말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맡기신 삶과 사명에 알맞게 은혜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선물은 조건과 자격을 따져 보상하듯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거저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선물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와 사망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조건 없는 구원의 은혜를 주셨다고 해서, 모두에게 획일적인 사역과 봉사를 요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언약적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은혜의 선물을 주시고, 각각이 감당할 만한 분량대로 직분을 맡기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사도로, 어떤 사람을 선지자로, 어떤 사람을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을 목사와 교사로 세우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11). 교회 안에서 내가 맡은 사역이 다른 사람에 비해 무겁다고 불평하거나, 나의 직분을 남의 것과 비교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역이 무겁게 느껴질수록, 주신 은혜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부르실 때 그에게 합당한 은혜를 함께 주셨습니다. 직분은 서열이나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아닙니다. 믿음의 수준을 나누는 잣대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각 사람에게 맞게 맡기신 사명일뿐입니다. 그러므로 큰 직분이 따로 있고 작은 직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는 순간 이미 각자에게 충분한 은혜와 선물이 주어진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은혜와 직분을 주셔서 교회 안에 세우신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증거합니다(12). 교회는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각 사람을 통해 이 몸을 세워 가기를 원하십니다. 목사와 장로, 집사와 권사, 평신도와 직분자의 사역이 같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자리와 역할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그 다름이 곧 높고 낮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역할과 은사의 다름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 은혜 안에서 자라 가야 할 목표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3). 신앙의 목표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 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렇게 자라 가지 못하면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머무르게 됩니다. 바울이 염려하는 것은, 이단과 거짓 교훈에 휩쓸리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14). 그들은 새로운 가르침이나 특별한 체험을 갈망하며,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리기보다 사람과 환경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권면합니다(15). “참된 것”이란 단지 정직하게 살라는 윤리적인 요구가 아니라, 말씀에 기초한 진리를 붙들고 행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랑 안에서”란, 진리를 전할 때에도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격이 아니라, 세우기 위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라는 요구입니다. 사랑 없는 진리는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고, 진리 없는 사랑은 결국 방종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이시며 동시에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하는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말씀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바울이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라”고 한 것은, 성도의 성장이 단지 지식의 증가나 경험의 누적이 아니라, 인격과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바울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몸과 지체의 비유로 설명하며,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증언합니다(16). 교회는 어느 한 사람의 힘과 열심으로 유지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눈에 띄는 사람이 있더라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눈물로 기도하고 수고하는 수많은 지체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몸이 건강하게 자라 갑니다. 각 지체가 자기 분량대로 역사한다는 것은, 모두가 똑같이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허락하신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감당한다는 뜻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도,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도 결국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는 바울의 권면은, 신앙의 성숙이 곧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지는 길임을 보여 줍니다(15-16).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 가는 삶,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십자가의 사랑을 따라 자신을 낮추고 서로를 세워 주는 그 길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부르심에 합당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