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금) 에베소서 4:17-24 /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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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2건 조회 169회 작성일 26-01-16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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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사도바울은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고 권합니다(17). 이는 구원받은 성도의 정체성을 확인시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존재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미 앞서 성도가 추구해야 할 모습으로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며,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명했습니다(4:2-3). 이는 자기를 중심에 두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독선과 독단의 삶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의지적으로 매우 연약하며 죄성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는 경향을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체험해야 하며, 그분의 제자로서 지속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20). 믿음이 어느 정도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넘어지기 가장 쉬운 때입니다. 제자도의 삶이란 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시 배우며, 다시 서는 삶입니다.

바울이 묘사한 이방인의 삶은 어두운 총명, 무지함, 마음의 굳어짐,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상태,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며 더러운 욕심을 좇는 모습입니다(18-19). 이러한 삶은 절제와 사랑과 지혜와 오래 참음과 평안과 형제 안에서의 하나 됨을 추구하는 성도의 삶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는 삶의 목적과 지향점이 완전히 다름을 의미합니다. 성도가 이방인과 같이 살아간다면 그것은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며 양심이 화인을 맞아 외식함으로 거짓을 따라가는 삶과 다를 바 없습니다(딤전4:1-2).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묵상하고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방탕한 길을 따라가는 것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멸망의 길로 끌고 가는 행위입니다. 심령의 새로움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의롭다 하심을 받은 법적 신분과 별개로, 우리 스스로가 끊임없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통해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들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고 말하며 이것을 “주 안에서 증언한다”고 덧붙입니다(17). 여기서 ‘증언’이라는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한 사실에 기초한 진술입니다. 허망한 것이라 함은 우상 숭배를 가리키며, 곧 없어질 것들을 좇아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만났던 우상 숭배의 허무함과 그 속에서 발견된 영혼의 공허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참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함을 강력하게 증언한 것입니다. 그는 이방인들이 “무지함과 마음의 굳어짐으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진단합니다(18). 이는 단지 지식이 부족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마음이 굳어져 창조주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영적 죽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총명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깨달음에 닿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며, 그들의 삶의 방향성이 세상 욕망과 방탕으로 흐르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제한받는 것을 싫어하며,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합니다. 이는 방탕 속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맡기는 결과를 낳습니다. 마음이 굳어지면 죄를 지으면서도 수치심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결국 정욕을 좇아 욕심을 따라 행동하는 데 거침이 없어집니다. 그렇게 감각이 없는 자가 되어 악한 행실로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난 자가 됩니다(골1:21). 그러나 말씀을 들으며 양심에 찔림이 있는 자는 아직 구원의 자리에서 멀어진 이방인과 같은 무감각한 자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양심을 일깨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서 마음이 찔릴 때, 그 말씀을 전하는 자를 비난하기보다 내 심령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다시 돌이키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라 하더라도 여전히 이방인과 같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를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바울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20). 이 말은 성도가 이방인들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단호하게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겉으로는 같은 동네에서 살고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지만, 성도의 삶의 방향성과 목적은 세상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리스도를 배웠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익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실제적인 삶의 훈련과 순종을 통해, 그분의 마음과 뜻을 배우고 그분의 성품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상 숭배는 자기 욕망을 따라 절하고 행동하는 삶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자기 부인을 통해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명합니다(23). 칼빈은 옛 사람을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옛 사람은 거듭나기 이전의 행실, 성격, 삶의 태도를 포함하며, 죄인의 옛 생활을 반복하려는 죄성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옛 사람은 결국 썩어질 것이며 영원한 생명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옛 사람을 “욕심과 구습을 따라가는 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라 행하는 진노의 자녀”라고 불렀습니다(2:3).

반면 새 사람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자입니다. 새 사람은 영원히 썩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의 모습이며, 그 삶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며 닮아가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집니다(20). 이것이 참된 제자도의 길이며, 성도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성숙함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을 신처럼 섬기며 살아가지만, 성도는 하나님께 자신을 우상 대하듯 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생명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를 함께 지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가는 실제적인 사역 속에서 그분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갈6:14). 그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달았으며, 그 깨달음이 그의 삶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음으로써, 바울과 같이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신앙의 경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을 드러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성도로서의 모습을 이루어 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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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민스님의 댓글

민스 작성일

샬롬♡
이옥희 권사입니다
♡ 깨달은 점
하루도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지 않으면
이기적이고 욕심을 따라 살고자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 실천하기
매일 말씀 앞에 나를 점검하고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열매 맺는
 삶을 살겠습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말씀 앞에 서지 않으면 우리는 허망한 것을 좇아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허망한 삶이란 세상적인 삶이 아닙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입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사는 삶, 그래서 우리는 상황을 불편해 하기도 하고, 사람을 불편해 하기도 합니다. 내 마음에 만족스러워야 은혜롭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러한 삶을 허망한 삶, 벗어버리지 못한 옛사람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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