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옛 사람에 속한 모든 행위를 버리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세워 가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은 새 사람의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거짓을 버리고 분을 내는 일을 삼가며 도둑질을 끊고 더러운 말을 입에 담지 말라고 합니다(25). 성도는 자기 욕망이나 감정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새롭게 지음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고 하였습니다(골 3:9-10). 거짓은 마음에서 시작되며, 상대를 속이고 이용하려는 생각과 술책으로 드러나고, 결국 하나님 앞에서 죄의 행위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거짓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며,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형제 사이에 불신을 심는 죄의 뿌리라고 경고합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멸망을 앞둔 유다와 예루살렘에 촉구한 것도 바로 이 거짓을 버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고 전했습니다(슥 8:16-17). 거짓을 버리라는 촉구는 회개의 마지막 기회를 의미합니다. 거짓이 마음에 자리 잡으면 행동으로는 위선이 되고,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외식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시며 외식하는 행동을 경계하셨습니다(마 6:1). 이는 성도의 삶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공동체 안에 속한 모든 성도가 서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기 때문에, 거짓은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서로를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근원이 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거짓과 위선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합니다(롬 12:2).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마음의 새로움이 있어야 자신을 중심에 두려는 옛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는 일도 은혜 가운데서 가능합니다. 열심히 행하는 모든 일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은 아니며, 자신의 열정이나 판단이 하나님의 지혜와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판단해야 하고, 하나님보다 앞서서 스스로의 생각을 높이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공동체의 모든 지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며, 각자가 맡은 역할과 은사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은 분을 내되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26). 분은 마음의 문을 여는 틈이 되어 마귀가 침투하게 만듭니다(27). 마귀는 성도가 먼저 상대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을 먼저 보게 하여 마음에 상처와 오해를 심고 공동체를 나누려 합니다. 작은 감정의 틈도 시간이 지나면 큰 상처로 번져 공동체 전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분노를 마음에 오래 두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아야 합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은 덕을 세우는 일이며, 선한 말을 하여 형제에게 은혜를 끼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친절함으로 대해야 합니다(32). 이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는 삶의 진정한 방향을 보여 줍니다.
거짓으로 돌아가는 행위는 옛 사람의 행동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며, 도둑질하는 자가 다시 도둑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28). 주님 안에서 새롭게 되었다면 과거로 돌아가는 삶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도둑질과 대비하여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권합니다(28). 이는 정직한 노동으로 얻은 것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는 뜻이며, 성도는 단지 더 많은 재물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며 서로 돕는 일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라고 가르칩니다(갈 6:2). 성도의 선함과 악함은 결국 입에서 나오는 말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말은 형제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더러운 말과 악한 말은 상대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공동체에 상처를 남깁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묻어나도록 힘써야 합니다(29).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모든 행동은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에서 비롯됩니다(30). 성령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성도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진리의 길로 걸어가도록 도우십니다. 그러나 성도가 말씀을 따르지 않고 옛 사람의 삶을 되풀이하면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택함을 받아 구원을 얻은 성결한 백성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비방과 악의를 버리고 서로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31-32). 이것이 곧 그리스도께서 품으신 마음이며, 주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길입니다.
사도바울은 육체의 일 가운데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과 시기와 분냄, 당 짓는 것과 분열함, 술 취함과 방탕함 등을 열거하며,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갈 5:20-21). 분냄이 때로는 옳은 것을 위한 정당한 감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말씀은 분냄을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가로막는 죄악으로 분명하게 밝힙니다. 자신의 감정이 의로움의 근거가 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요소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직을 잃어버린 부분은 없는지, 말로 형제를 상하게 한 적은 없는지, 분노를 마음에 품고 해가 지도록 풀지 못했던 날들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을 중심에 두고 공동체를 판단하였던 마음이 있었는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앞세운 적은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심과 긍휼로 품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그와 같은 마음을 품을 때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세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