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22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성도들의 싸움이 어떤 성격의 싸움인지를 밝히며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합니다(10-11). 여기서 바울은 먼저 성도에게 요구되는 힘이 자기 안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10). 그리스도의 구속의 능력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능력이며, 어떤 원수도 뚫을 수 없는 견고한 보호가 됩니다. 이 능력이 바로 성도를 둘러싸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각각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6:32-33). 진리를 수호하고 전해야 하는 성도들이 악한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을 겪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죄와 사망과 세상을 이기셨기에, 성도가 당하는 모든 공격과 고난은 더 이상 우리를 최종적인 멸망으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구원과 영생의 은혜 자체가 성도를 둘러싸는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갑주를 “하나님의 전신갑주”라고 부릅니다(11). 이는 갑주의 출처와 주인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패와 무기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해 주신 보호와 능력을 믿음으로 입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고, 교회 안에 분열을 일으키며, 거짓 교훈으로 미혹하여 이단과 불순종의 길로 끌고 가는 ‘마귀의 간계’였습니다(11). 베드로 사도는 이 싸움의 심각성을 알리며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권면합니다(벧전5:8-9). 그러나 동시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약속하십니다(벧전5:10).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계략은 집요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은혜는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더욱 굳건히 세워 갈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말합니다(12). 성도의 싸움은 눈에 보이는 사람과 환경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들과의 영적 전쟁입니다. 악한 영들은 보이지 않지만 실제하며, 사람들의 마음과 욕망을 붙잡아 죄와 불순종의 길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먼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의 지혜와 경험과 의지로는 이 싸움에서 설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전신갑주가 아니면 누구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합니다(13). 전신갑주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주신 것이며,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취하여 입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모든 악한 세력과 죄의 정죄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완전한 방패요 갑옷입니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다”고 증거합니다(빌2:10-11). 이는 악한 영들의 세계와 세상의 모든 권세와 통치자들, 어둠의 세력들까지도 이미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하게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을 때, 사람만을 원수로 여기며 감정과 혈기로 싸우게 되고, 오히려 악한 영들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싸워야 할 대상을 분명히 아는 것, 그리고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가 확정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이 영적 전쟁의 첫 걸음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합니다(14-17). 허리를 동이는 진리는 우리 존재를 지탱하는 중심입니다. 진리가 허리를 묶지 않으면 생각과 마음이 흔들려 거짓과 미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의의 호심경은 마음과 양심을 지키는 보호장비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로 가슴을 덮을 때 정죄와 수치, 자책과 두려움 속에 무너지지 않고, 은혜 안에서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평안의 복음의 신은 우리가 서야 할 자리를 보여 줍니다. 복음을 붙잡고 있을 때 발걸음은 비틀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사명을 기억하게 됩니다. 믿음의 방패는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들을 소멸시키는 방패입니다. 의심과 두려움, 절망과 분노의 화살이 날아올 때, 우리의 믿음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 향하여 있으면 그 화살들은 심장까지 파고들지 못하고 방패에서 꺼져 버립니다.
구원의 투구는 우리의 생각과 정체성을 지키는 장비입니다. 우리는 많은 정죄의 소리와 실패의 경험 속에서 쉽게 “나는 안 된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거짓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투구를 쓰고 있을 때, 우리는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요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라는 복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은 공격과 방어를 겸한 무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실 때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마4:1-11).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으면, 아무리 다른 갑주를 입은 것 같아도 실제 전투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덧붙입니다(18). 전신갑주를 입는 것과 기도는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현재의 자리로 불러오는 통로이며, 우리가 스스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매달려 서 있다는 고백입니다. 갑주를 갖추었다고 하면서 기도에 게으르면, 결국 자기 힘을 믿는 교만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반대로 눈물로 기도하면서도 말씀과 믿음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감정의 파도에 치이며 쉽게 지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신갑주와 기도는 함께 가야 합니다. 매 순간 깨어 기도하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성도를 위하여”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교회는 영적 전쟁터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공동체가 됩니다(18).
바울은 자신 또한 담대히 복음의 비밀을 전할 수 있도록 에베소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19-20). 그는 자신을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라 부르며,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여전히 복음의 사신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잊지 않습니다(20). 환경이 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 그의 삶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사정을 숨기지 않고 에베소 교회와 나누며 기도를 요청하는 모습은, 영적 싸움이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교회의 싸움이며, 함께 짊어져야 할 싸움임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정을 알리고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신실한 일꾼인 두기고”를 보냅니다(21). 두기고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바울의 마음을 함께 품고 그 사역을 함께 짊어진 동역자였습니다. 사도행전은 그가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사람임을 전하고, 다른 서신에서도 두기고가 에베소와 그레데에 보내져 신실한 동역으로 수고한 사실을 언급합니다(행20:4, 딤후4:12, 딛3:12). 신실한 일꾼이란 서로의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고난을 받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주 안에서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고 말한 것은, 두기고를 통해 자신의 심장과 같은 마음을 전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22).
바울은 마지막으로 에베소 성도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합니다(23). 여기서 말하는 평안은 아무 일도 없는 고요한 상태가 아니라,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확신에서 오는 담대함입니다.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 치열할수록,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상황을 바꾸어 주는 평안보다 마음을 지켜 주는 평안입니다. 믿음을 겸한 사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혼자만 지키는 신앙이 아니라 서로를 붙들고 중보하는 사랑이 있을 때, 교회는 어떤 공격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마무리합니다(24). 전신갑주를 입는 삶의 중심에는 결국 그리스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식지 않을 때, 우리는 끝까지 싸움을 싸우며, 승리하신 주님 안에서 굳게 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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