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수) 갈라디아서 4:1-11 /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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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3건 조회 198회 작성일 25-09-10 05:34

본문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은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라고 말씀합니다(1). 로마 사회의 관습법에 따르면, 14세 미만의 아들은 아버지가 지정한 후견인의 관리 아래 있었고, 25세가 될 때까지는 청지기가 그 재산을 대신 관리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법적 구조를 비유로 들어, 우리가 율법 아래 있었던 상태를 설명합니다. 곧,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을 자이지만, 율법이라는 초등학문 아래에서 종과 같이 구속된 상태에 있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기 전까지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서 자유하지 못한 채, 마치 미성년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재산을 스스로 누리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유업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4-5). 여기서 “때가 차매”라는 말은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전한 때를 맞이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연이나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섭리 가운데 준비하신 때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되, 여자의 몸을 통하여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참 사람이자 참 하나님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에 자신을 두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완전하게 성취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결과, 율법 아래 종 되었던 자들이 속량을 받아 자유하게 되었고, 단순히 해방된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아들의 명분”은 결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소유한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은혜로 주어진 신분입니다. 우리의 공로나 자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법적·신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아들로 삼으신 자들에게 “그 아들의 영”을 보내셨습니다(6). 여기서 “그 아들의 영”이란 곧 성령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시며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십니다. “아빠”라는 호칭은 깊은 친밀감과 신뢰의 표현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멀리 떨어진 주종관계가 아니라,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탈무드에서는 아기가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아빠”라고 전합니다.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고 단언합니다(7).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상속자입니다. 유업은 단순히 천국에서의 영광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현재 이 땅에서도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누리는 영적 복이 포함됩니다. 이는 결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소망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누릴 수 있는 친밀한 교제와 보호의 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라고 경고합니다(8). 과거에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때, 그들은 스스로 신이라 칭하는 헛된 우상과 사람의 전통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그것은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을 섬기는 어리석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복음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아신 이상, 다시 그 초라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 종노릇 해서는 안 됩니다(9). 바울이 말하는 “초등학문”은 율법뿐 아니라, 구원의 실체를 보여주는 그림자에 불과한 모든 옛 제도를 포함합니다. 그것은 유치원에서 배우는 기초 지식과 같아서, 성숙한 신앙인의 삶을 이끌어 주는 실체가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 때에는’과 ‘이제는’을 대조합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진리의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복음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아십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인격적·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뜻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우리를 아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사랑으로 부르시고, 성령을 통해 그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라고 질문합니다(9). 여기서 “약하다”는 것은 구원할 힘이 없음을, “천박하다”는 것은 영광스러움과 거리가 먼 초라함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풍성함과 비교할 때, 율법과 세상의 원리들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옛 것에 미련을 두고 돌아가려는 것은, 이미 열린 하늘의 문을 뒤로하고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을 돌아볼 때,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습관과 옛 가치관, 그리고 세상의 초라한 원리에 끌려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얻었으나, 자유를 방종으로 바꾸어 종의 자리로 내려갈 위험이 있습니다. 종은 주인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일을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사랑으로 행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된 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그 뜻을 기꺼이 이루어 가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양자됨은 우리의 신분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변화시켰습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심으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며, 아버지와의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권면한 것처럼, 우리도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아들의 자유와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 자유는 율법에서 벗어난 방종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자유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자유입니다.

결국 바울의 권면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라는 초청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종됨을 잊지 않고, 현재의 아들 됨을 감사하며, 미래의 유업을 소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단지 죄에서 해방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 안에 들여서 영원한 교제와 사랑을 누리게 하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그분의 품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삶을 이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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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깨달은점---)
내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자녀됨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보혈이 얼마나 위대한지요.
당연히 여겼고 그래서 감사가 부족했습니다.
그렇기에 그져 내가 받은 구원만 흡족했습니다.
깊이 반성합니다.

실천하기---)
시어머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나누고싶지 않았습니다. 정말 괴수중에 괴수입니다.
간절히 나누고 기도하겠습니다.

건축학개론님의 댓글

건축학개론 작성일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는 아들로 깨닫게 하소서.

강남교회님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단순히 우리의 신분이 바뀐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삶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종이 주인의 뜻에 얽매여 살듯이 우리는 죄의 권세 아래 끌려 다녔지만, 이제는 아들의 권세로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아버지의 뜻을 즐거이 따르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자긍심이 가득한 삶 속에서 늘 긍정과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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