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월) 갈라디아서 5:1-12 /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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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2건 조회 137회 작성일 25-09-15 05:38

본문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선포합니다(1). 이 말씀은 갈라디아서 전체를 요약한 핵심 주제와도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는 사실은 단순히 신앙적 위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역사적이고 구속사적인 사건의 결과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유’는 인간 사회에서 말하는 정치적 자유나 개인적 선택의 자유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자유는 율법과 죄의 권세 아래에서 해방되는 영적 자유를 의미합니다(요8:36). 율법은 거룩하고 선한 것이지만, 죄로 인해 인간은 그것을 온전히 지킬 수 없으며, 결국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하기보다 죄를 깨닫게 하고 정죄하는 기능을 하게 됩니다(롬3:20). 그렇기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전하게 이루시고, 우리 대신 저주를 담당하심으로 율법의 멍에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신 것입니다(갈3:13).

그러므로 바울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권하는 것은 복음을 떠나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철저히 거부하라는 강력한 명령입니다. 율법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곧 내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는 착각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 안에는 유대주의자들이 들어와, 이방인 신자들에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 외에도 모세의 율법, 특히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2).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이 할례라는 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 태도를 문제 삼는 것입니다. 그 순간 구원의 근거가 은혜에서 행위로 옮겨가게 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무너집니다.

바울은 이어서 “율법으로 의롭다 하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라고 경고합니다(4). 이는 매우 강한 표현입니다. ‘끊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관계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에서 제외된다는 뜻입니다. 은혜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길을 스스로 포기하고 다시 율법의 정죄 아래로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이행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절박하게 경고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속에서 은혜로 시작해 놓고, 어느 순간 다시 나의 행위, 나의 기준, 나의 열심을 구원의 근거로 삼으려는 유혹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다시 복음의 기초로 돌아가야 합니다.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는 바울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갈3:3).

바울은 참된 신앙의 길을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라고 정의합니다(5). 여기서 ‘의의 소망’이란 최종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율법 준수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믿음을 따라 살아갈 때 주어집니다. 믿음은 단순한 동의나 지적 수용이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그리스도께 의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참되다는 것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고 말합니다(6).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은 믿음이 있다는 표지이며,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신 증거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달리기를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고 하며(7), 갈라디아 교인들이 처음 복음을 받았을 때는 잘 달리다가, 거짓교사들의 영향으로 그 경주를 방해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막는다’는 것은 단순한 방해가 아니라, 길을 가로막아 방향을 바꾸게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속임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8). 그리고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느니라”고 하며, 그 속임을 ‘누룩’에 비유합니다(9). 누룩은 처음에는 작고 눈에 띄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작은 거짓교훈도 방치하면 결국 공동체 전체를 변질시키고 무너뜨립니다.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복음을 조금만 변형시켜도, 그것은 복음이 아닌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맙니다.

바울은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거짓교사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선언합니다(10). 그들은 단순히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열심과 외형은 신앙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자기 이익과 명예를 위해 사람들을 모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매우 강경한 표현까지 사용하며, 교회 안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철저히 차단할 것을 요구합니다(12). 이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복음을 지키고 성도들을 보호하려는 목자의 절박한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유는 결코 방종의 면허가 아닙니다.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권면합니다(13).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욕망을 채우는 변명거리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자유를 완전히 왜곡하는 것입니다. 참된 자유는 죄를 짓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 데 사용됩니다. 자유인은 강요가 아니라 사랑 때문에 자발적으로 섬깁니다. 그 섬김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고,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 우리는 율법이나 나의 행위를 구원의 근거로 삼으려는 모든 시도를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완성됩니다. 둘째, 작은 거짓교훈이라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결국 나와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셋째, 자유를 주신 목적은 방종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사랑은 성령이 주시는 열매이며, 참된 믿음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목소리와 사상, 종교적 주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중에는 복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은혜에 인간의 조건을 덧붙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결국 사람을 다시 종의 멍에로 끌고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분명히 붙들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굳게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권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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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건축학개론님의 댓글

건축학개론 작성일

묵상: 기억에 남은 이유는 그들의 말과 행동속에서 종종 마주하게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는 모든 상황과 삶을 기쁘게 누릴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 예수를 믿으면서 내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은 자유 입니다. 실천하기: 칭찬해주고 서로 웃어주기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믿음의 자유함을 얻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유함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국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세상에 가치관을 둔 삶은 결코 믿음의 자유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멍에를 벗어 버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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