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스님의 댓글
민스 작성일
샬롬♡
이옥희 권사입니다
♡ 깨달은 점
우리에게 있는 모든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왔음을 믿고 주신것 나눔의 삶이어야 함과
사역자들을 귀히 여기며 말씀에 전념하도록
뒷받침해야함을 깨닫습니다.
♡ 실천하기
내게 맡겨진 사명 말씀과 기도로 항상 깨어 있어 나눔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 그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와
2 가나안 땅 실로에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가 거주할 성읍들과 우리 가축을 위해 그 목초지들을 우리에게 주라 하셨나이다 하매
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자기의 기업에서 이 성읍들과 그 목초지들을 레위 사람에게 주니라
4 그핫 가족을 위하여 제비를 뽑았는데 레위 사람 중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와 베냐민 지파 중에서 제비 뽑은 대로 열세 성읍을 받았고
5 그핫 자손들 중에 남은 자는 에브라임 지파의 가족과 단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제비 뽑은 대로 열 성읍을 받았으며
6 게르손 자손들은 잇사갈 지파의 가족들과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와 바산에 있는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제비 뽑은 대로 열세 성읍을 받았더라
7 므라리 자손들은 그 가족대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스불론 지파 중에서 열두 성읍을 받았더라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제비 뽑아 레위 사람에게 준 성읍들과 그 목초지들이 이러하니라
9 유다 자손의 지파와 시므온 자손의 지파 중에서는 이 아래에 기명한 성읍들을 주었는데
10 레위 자손 중 그핫 가족들에 속한 아론 자손이 첫째로 제비 뽑혔으므로
11 아낙의 아버지 아르바의 성읍 유다 산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그 주위의 목초지를 그들에게 주었고
12 그 성읍의 밭과 그 촌락들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어 소유가 되게 하였더라
13 제사장 아론의 자손에게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헤브론과 그 목초지이요 또 립나와 그 목초지와
14 얏딜과 그 목초지와 에스드모아와 그 목초지와
15 홀론과 그 목초지와 드빌과 그 목초지와
16 아인과 그 목초지와 윳다와 그 목초지와 벧 세메스와 그 목초지이니 이 두 지파에서 아홉 성읍을 냈고
17 또 베냐민 지파 중에서는 기브온과 그 목초지와 게바와 그 목초지와
18 아나돗과 그 목초지와 알몬과 그 목초지 곧 네 성읍을 냈으니
19 제사장 아론 자손의 성읍은 모두 열세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
레위 사람의 족장들이 실로에 모인 회중 앞, 곧 여호수아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스라엘 지파의 족장들에게 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가 거주할 성읍들과 우리 가축을 위해 그 목초지들을 우리에게 주라 하셨나이다.”라고 전합니다(2). 레위 사람들은 오랜 광야 생활 동안 성막을 메고 섬겼고, 가나안에 들어온 뒤에도 그 사명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제단과 말씀 곁에 머물며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예배를 인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넓은 토지가 아니라, 각 지파의 한복판에서 말씀을 전하며 성소의 봉사를 이어갈 수 있는 성읍들과 목초지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모든 지파에게 명령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 명령을 따라 성읍들과 그 주변 목초지를 레위 사람들에게 기꺼이 주었습니다(2, 3).
광야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레위에게 그 기업이 되시리라.”는 약속은 레위지파에게 땅을 소유하지 못하게는 구속과 통제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영원한 몫이심을 밝히신 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레위지파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기업이 되신 까닭은 그들이 다른 지파보다 더 거룩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지파를 말씀으로 섬기도록 하나님이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레위가 생업에 매이면 말씀이 메말라갑니다. 말씀이 메마르면 모든 지파의 심령이 메마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의 땅 가운데 마흔여덟 성읍을 흩어 주시고, 그 성읍마다 가축을 먹일 목초지를 두어 레위가 걱정 없이 봉사에 전념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함께 감당해야 할 거룩한 질서였고, 동시에 받은 은혜를 나누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나누는 그 행위 자체가 이미 예배이며, 복음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나누지 않는 입술이 아무리 큰 소리로 복음을 말해도 사람들의 심령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은혜로 채우신 분이 내일도 채우실 것을 믿는 자만이 오늘 기꺼이 떼어 나눕니다(4-8).
레위 사람에게 성읍을 내어 주었다는 것은 모든 지파가 하나님의 일을 함께 세우는 언약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자연히 움켜쥐려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겨우 손에 넣은 몫을 나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몫이 처음부터 자기 손의 수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각 지파가 성읍과 목초지를 내어 줄 때, 그들의 손에서 떠난 땅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큰 생명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 성읍들에서 율법이 낭송되고 제사가 드려지며 축복이 선포되었습니다. 레위지파가 먹을 풀을 얻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말씀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같은 부르심 안에 있습니다. 사역자들이 말씀에 전념하도록 뒷받침하는 일은 헌신을 넘어 합당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누는 일은 곧 생명의 호흡을 되돌리는 일입니다(4-8).
이제 성경은 레위족속 중에서도 제사장의 계보, 곧 아론 자손에게 돌아간 성읍들을 먼저 기록합니다. 유다와 시므온, 베냐민의 경내에서 제사장들에게 돌린 성읍의 이름들이 차례로 열거됩니다. 그중 첫머리에 헤브론이 있습니다. 헤브론은 요단 서편 남부의 산지에 자리한 성읍으로,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 곧 아낙 자손의 장수가 자리하던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성읍을 제사장들에게 주되, 곧바로 “그 성읍의 밭과 그 촌락들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어 소유가 되게 하였더라”는 단서를 덧붙이십니다(12). 제사장의 도피성과 목초지가 헤브론에 주어졌으나, 성읍 밖 들과 마을은 갈렙의 몫으로 남겨진 것입니다. 갈렙은 언약을 신뢰해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외쳤던 사람이며, 실제로 아낙 자손이 버티던 산지를 믿음으로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믿음의 증표로 갈렙의 지경을 백성이 에배드리는 곳 한복판에 두신 것입니다. 제사장이 거하는 성읍, 곧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는 곳 중심에 갈렙의 믿음이 있습니다. 이는 예배가 삶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고, 삶이 예배의 자리로 돌아와야 함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전투가 끝나는 곳에 제단이 서고, 제단이 서는 곳에서 믿음이 증거 됩니다(12).
갈렙의 이름을 굳이 다시 꺼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두려움이 공동체를 덮던 때에 믿음으로 말을 뱉은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거인들을 하나님 앞에서 작게 보았습니다. 그 믿음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았고, 이제 기업 분배의 기록 속에서 다시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말을 잊지 않으십니다. 믿음의 발걸음이 밟은 자리를 예배의 자리가 되게 하십니다. 헤브론에 제사장의 도피성이 놓이고, 그 들과 촌락이 갈렙에게 남겨진 기록은, 하나님이 어떻게 예배와 일상, 제사와 생업을 얽어 하나의 거룩한 지경으로 세워 가시는 지를 보여줍니다. 예배당 안에서만 거룩하고 삶의 들판에서는 각자도생하는 길을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레위의 성읍 한가운데서 울려 퍼지는 축복은 갈렙의 밭두렁까지 흘러가고, 갈렙의 밭에서 거둔 곡식은 다시 제단 앞의 감사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은혜의 순환이며, 언약의 경제입니다(9-19, 12).
레위 사람에게 성읍을 내어주는 일은 곧 백성의 심령이 물질 곁에 있게 하지 않고 말씀 곁으로 옮겨 놓는 일이었습니다. 각 지파가 자기 지경에 레위족속의 성읍을 품었다는 것은, 예배의 불씨를 자기 장막 곁에 두었다는 의미입니다. 광야에서 불기둥이 밤을 지키고 구름기둥이 낮을 인도했듯, 가나안에서는 레위 성읍들이 언약의 등불이 되어 밤을 지켜 주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풍요 앞에서 빠르게 둔해집니다. 소유가 늘어날수록 예배는 작아지고, 창고가 가득할수록 감사는 줄어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백성의 삶 한복판에 말씀의 사람을 심으시고, 그들이 목초지를 얻어 걱정 없이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단지 레위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지파의 안전장치였습니다. 레위를 굶기면 결국 자기 자녀의 영혼을 굶기는 것이고, 레위가 힘을 얻으면 결국 자기 가정의 믿음이 힘을 얻습니다. 이 질서를 기쁨으로 받아들인 이스라엘의 결단은, 기업을 받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낳았습니다(4-8).
나눔은 언제나 신앙의 시험대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왔다면, 우리의 손바닥은 주님의 손바닥처럼 열려 있어야 합니다. 레위에게 성읍을 준 사건에서 이스라엘은 이 진리를 배웠습니다. 오늘 교회는 말씀에 전념하는 이들을 귀히 여기며 그들의 쓸 것을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단지 책임이 아니라, 영광스럽고 달콤한 특권입니다. 나눌 때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넉넉해집니다. 내일의 양식은 내가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창고에 있습니다. 하늘의 창고를 믿는 사람만이 오늘 기꺼이 떼어 줄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나눔은 결코 계산이 되지 않습니다. 계산은 손해를 헤아리지만, 믿음은 은혜를 셉니다. 은혜를 세는 자는 언젠가 자신이 셀 수 없는 은혜 속에 잠겨 있음을 발견합니다(3). 오늘도 주신 것을 나누고 베푸는 손길 위에, 주께서 내일의 양식을 하늘 창고에서 내려 주실 것을 신뢰하기를 소망합니다(2, 3, 9-19, 12).
샬롬♡
이옥희 권사입니다
♡ 깨달은 점
우리에게 있는 모든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왔음을 믿고 주신것 나눔의 삶이어야 함과
사역자들을 귀히 여기며 말씀에 전념하도록
뒷받침해야함을 깨닫습니다.
♡ 실천하기
내게 맡겨진 사명 말씀과 기도로 항상 깨어 있어 나눔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역자뿐만 아니라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신앙으로서의 삶의 지침입니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신 주님의 삶, 그 여정을 따라가는 일입니다. 더욱이 주의 일을 감당하는 사역자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더욱더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