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수) 여호수아 22:21-34 / 하나 됨을 증거 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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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4건 조회 268회 작성일 25-12-24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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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22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23 우리가 제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또는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또는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거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24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25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느니라 하여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26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27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번제와 우리의 다른 제사와 우리의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들이 후일에 우리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28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이 지은 여호와의 제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29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제단 외에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고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라 하리라

30 제사장 비느하스와 그와 함께 한 회중의 지도자들 곧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긴지라

31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고

32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지도자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떠나 길르앗 땅에서 가나안 땅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와 그들에게 보고하매

33 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거주하는 땅에 가서 싸워 그것을 멸하자 하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34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그 제단을 엣이라 불렀으니 우리 사이에 이 제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는 비느하스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앞에서 자신들이 쌓은 제단의 뜻을 밝히며 먼저 하나님 앞에 양심을 내어놓습니다.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라고 고백하고(22), 만일 다른 마음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친히 심판하셔도 마땅하다고까지 말합니다. 이 말 속에는 사람 앞에서의 명예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을 더 두려워하는 경외가 담겨 있습니다. 형제들의 오해를 풀기 위한 첫걸음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마음입니다. 자신을 변호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할 때에 서로의 영혼을 살리는 자리로 바뀝니다(21-23).

그들이 제단을 쌓은 동기는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려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요단 강의 동편과 서편을 가르는 물길이 훗날 자손들의 마음까지 갈라놓지 않도록,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번제와 다른 제사와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후일에 누가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간절함이었습니다. 그들의 제단은 하나의 이름과 하나의 믿음으로 묶인 한 백성임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평안이 내일의 분열로 변질되지 않도록, 지금의 하나 됨이 후대의 불신으로 희미해지지 않도록 세운 표지석이였습니다(27).

그렇다 해도, 선한 의도가 모든 혼란을 자동으로 면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사전에 온 회중과 상의하지 않고 임의로 행동했기 때문에 오해의 불씨가 커졌고, 동족 간 전쟁 직전까지 치달을 뻔했습니다. 의도는 선했으나 방식이 성급했습니다. 공동체의 신뢰는 투명한 소통 위에서 자랍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라는 이름으로라도 형제를 앞지르거나 절차를 건너뛰면, 선의는 쉽게 오해로 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깊을수록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더 섬세해져야 합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열심이 클수록 형제의 양심과 자유를 존중하는 배려가 함께 자라야 합니다(24).

이스라엘의 중심 진영은 비느하스와 각 지파 지도자들을 급히 길르앗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이 들고 간 물음은 단호했으나, 손은 먼저 칼이 아니라 귀를 들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는 물음은 정죄가 아닌(16), 공동체를 지키려는 의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섣부른 응징보다 먼저 사실 확인을 선택했고, 만약 동편의 형제들이 제단을 필요로 했다면 “우리의 소유를 나누어 주겠다”라는 고백까지 아끼지 않았습니다. 형제를 죄에서 건져내기 위해 내 몫을 기꺼이 덜어내려는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언약 공동체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었습니다(19-20).

길르앗의 답변은 분명했습니다. 제단은 번제와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단이 아니라, 여호와의 제단이 오직 실로의 성막에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운 표징이었습니다. 즉, 요단 강이 지리의 경계를 이루긴 하지만, 언약의 경계가 될 수 없다는 고백의 의미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제단은 “증거”라는 뜻을 담아 ‘엣’이라 불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강이 마음을 가르지 못하도록, 오늘의 증거가 내일의 기억이 되게 하려는 믿음의 장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한 백성, 한 이름, 한 제단이라는 정체성을 후대의 심장에 새기기 위한 고백이었습니다(34).

비느하스와 함께 간 지도자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이 기쁨은 형제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동일한 경외와 언약에 대한 충성을 발견한 기쁨이었습니다. 긴장은 찬송으로 바뀌었고, 오해는 신뢰로 변했습니다. 하나를 위협하던 상처가 오히려 더 깊은 하나 됨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싸움의 칼자루 대신 서로의 손을 붙잡게 한 것은, 상대의 의도를 다 들을 때까지 기다려 준 인내와, 만일을 대비해 내 몫을 내주려 한 사랑이었습니다. 진리를 지키는 엄정함과 형제를 살리는 관용이 같은 자리에서 입을 맞출 때,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고 더 단단해집니다(30-32).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 됨의 영성이 무엇으로 지켜지는지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아신다”는 고백은 내 편을 세우는 말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 편 앞에 서게 하는 말입니다. 이 고백이 빠진 대화는 결국 이기심의 언어로 흐르기 쉽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투명함이 사람 앞에서의 정직함을 낳고, 사람 앞에서의 정직함이 다시 하나님 앞에서의 담대함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명확할수록, 형제를 향한 마음도 흔들리지 않습니다(21-23).

다음으로, 하나 됨은 기억을 세우는 수고로 지켜집니다. 제단 ‘엣’은 제사의 기능보다 기억의 기능을 강조한 표지였습니다. 기억이 사라지면 신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이 굳어지면 관습이 됩니다. 관습은 결국 권리로 변하고, 권리는 쉽게 배타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백성에게 늘 기억을 새기게 하십니다. 유월절 밤의 피, 요단 가운데 세운 돌, 도피성의 길표, 그리고 오늘의 ‘엣’. 이 표징들은 모두 하나의 이름을 가리킵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다.” 후대가 이 이름을 잊지 않도록, 어른들은 길 위에 표지석을 세웁니다. 신앙은 전수의 통로 속에서 세워지며, 믿음의 삶은 후대를 위한 표지석이 됩니다(27, 34).

또한, 하나 됨은 소통의 겸손으로 지켜집니다. 의도만 선하면 된다는 자기 확신은 공동체를 피로하게 만듭니다. 선의가 오해를 만나 상처로 번지지 않게 하려면, 선의만큼이나 방식이 성숙해야 합니다. 길르앗이 미리 상의했다면 불필요한 긴장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심 진영 또한 서둘러 칼을 빼지 않고 먼저 들으려 했습니다. 잘못된 열심은 정죄로 달려가고, 성숙한 열심은 대화로 들어갑니다. 언약 공동체의 성숙은 진리를 약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지혜에서 나옵니다.

또한, 하나 됨은 희생의 결단으로 지켜집니다. 비느하스와 지도자들은 필요하다면 자신들의 소유를 나누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신학의 논증이 형제를 돌이키지 못할 때, 사랑의 손해가 길을 엽니다. 정의는 기준을 세우고, 사랑은 다리를 놓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십자가에서 입맞춘 것처럼, 공동체의 하나 됨도 기준과 희생의 만남 위에 서 있습니다. 기준 없는 사랑은 흐려지고, 사랑 없는 기준은 날카로워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이 둘을 함께 지키게 합니다(19-20).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앞에서 우리가 먼저 붙들어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니라 관계이며, 속도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경외, 기억을 세우는 표징, 소통의 겸손, 희생의 결단이 함께 흐를 때, 하나님 안에서의 하나 됨은 풍랑 속에서도 깨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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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건축학개론님의 댓글

건축학개론 작성일

묵상: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발생한 큰 위기와 극적인 해결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친 르우벤.갓.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와 약속한 대로 요단 동편의 땅으로 돌아갑니다.요단 동편의 지파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보이기 위해 제단으로 증거를 삼았습니다. 그리스도 인 됨의 증거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가 요단동편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이 단을 쌓은 것은 지극히 신앙적인 일처럼 보였지만, 그것이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은 내일을 걱정하며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을 앞세운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됨은 '외형적인 예배'가 아닌, '삶의 정체성'을 통해 증거됩니다.

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깨달은점---)
어떤일이든  대화하고 의견을 듣고
나눠서 함께해야합니다.  나 혼자 즐거운 공동체생활이 되지않도록 중심을 붙들어야합니다.
그 안에서도 절대 내가 주체가 되지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뜻 안에서 해야합니다.
실천하기---)
잘듣고 꾸준히 기도하고 단어 한마디도 소중하고 신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큰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힘은 수 많은 기둥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기본에 충실한 몇 개의 기둥으로부터 힘은 시작됩니다. 공동체의 성장은 더디지만 그 기본에 충실한 기간을 참아내고 견뎌야 합니다. 오랜 시간 준비한 것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교육을 위한 준비였고, 그것이 지금의 터전이 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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