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금) 여호수아 24:1-18 /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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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4건 조회 301회 작성일 25-12-2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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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4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5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들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노라

 6 내가 너희의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바다에 이르게 한즉 애굽 사람들이 병거와 마병을 거느리고 너희의 조상들을 홍해까지 쫓아오므로

 7 너희의 조상들이 나 여호와께 부르짖기로 내가 너희와 애굽 사람들 사이에 흑암을 두고 바다를 이끌어 그들을 덮었나니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을 너희의 눈이 보았으며 또 너희가 많은 날을 광야에서 거주하였느니라

 8 내가 또 너희를 인도하여 요단 저쪽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매 그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 주매 너희가 그 땅을 점령하였고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멸절시켰으며

 9 또한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일어나 이스라엘과 싸우더니 사람을 보내어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10 내가 발람을 위해 듣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오히려 너희를 축복하였고 나는 너희를 그의 손에서 건져내었으며

11 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주민들 곧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었으며

12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13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세겜으로 모읍니다(1). 세겜은 아브라함이 처음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제단을 쌓았던 장소이며, 하나님의 약속이 시작된 자리였습니다. 그 땅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 자손에게 이 땅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을 다시 모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언약의 뿌리를 다시 되새기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했다고 해서 언약이 끝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는 앞으로도 계속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겜에서의 언약 갱신은 여호수아서 전체에서 가장 신학적으로 중요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에서 시작된 언약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성취되어 왔는지를 다시 확인하고, 그 은혜를 기억한 백성이 앞으로도 신실하게 순종할 것임을 고백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언약의 흐름을 되짚으며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을 데라의 집에서 이끌어내셨다”고 회상합니다(2-4). 아브라함의 부친 데라는 다른 신들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집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언약의 여정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은 전적인 은혜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선택이 먼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선택과 인도하심이 아브라함에게만 머문 것이 아니라 그의 후손에게도 이어졌음을 상기시키며, 그 모든 과정이 약속의 성취를 향해 흐르고 있었음을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보여 주셨고, 이삭을 주셨고, 야곱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야곱의 후손들을 애굽에서 큰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반응한 순간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언약의 역사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구원 역사를 상기시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잊어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고, 바로의 압제에서 신음하던 백성을 건지시며, 큰 심판으로 애굽을 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홍해에서 애굽의 군대를 몰살시키셨습니다(5-7). 여호수아는 이것을 단지 이스라엘의 해방 사건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애굽왕이 의지하던 신들도, 강력한 군대도, 홍해의 장벽도 하나님의 언약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 40년 동안의 인도하심도 하나님께서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한 지속적인 보호였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주셨습니다. 광야의 혹독함 속에서도 백성이 멸망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의 의로나 열심 때문이 아니라, 오직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제 가나안 땅에서 싸운 전쟁의 의미를 설명합니다(8-13). 그 전쟁은 주변 민족들과의 영토확장을 위한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대적의 강함에 눌려 불순종할 것인가의 싸움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견고한 성과 철병거를 가졌고, 군사력으로 보나 문화적으로 보나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대한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붙이셨다”고 말합니다. 백성이 온전히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대적도 무너뜨리시며 약속하신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광야의 훈련은 결국 순종의 훈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여러 번 불순종하며 시험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시고 다시 세워 가며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준비를 시키셨습니다. 여리고성 앞에서의 순종이 그들의 훈련의 결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돌기만 했을 뿐인데 그 견고했던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달라졌음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싸우신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제 언약의 성취를 경험한 백성에게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는 가장 중요한 말씀을 선포합니다(14). 가나안 땅은 풍요가 가득하고 우상숭배적 요소가 넘쳐나는 땅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편안한 선택이 아니라 명확한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두 길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거나, 아니면 조상들이 섬기던 우상이나 가나안 사람들의 신을 섬기든지 스스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결단하며 자신의 선택을 분명히 합니다(15). 이 고백은 여호수아 개인의 신앙 고백을 넘어, 가나안이라는 거대한 우상 문화 한복판에서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신앙의 선언이었습니다. 이 고백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을 것이라”며 흔들림 없이 화답합니다(16). 이들의 고백은 지난날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과 공급과 승리를 기억하며 나온 신앙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분만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라는 믿음의 선언이었습니다(18).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세상을 섬길 것인지,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아브라함처럼 부르시는 하나님께 반응하는 데서 시작되고, 광야처럼 훈련 속에서 다듬어지며, 가나안과 같은 현실의 자리에서 결단으로 드러납니다. 세겜에서 여호수아가 선포한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말씀은 오늘날 우리의 가정에도 여전히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단지 종교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난님을 바라보고, 마음과 삶의 방향을 그분께 두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이 유일한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삶입니다.

또한, 세겜의 언약처럼 우리의 신앙도 매 순간 새롭게 갱신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언약을 다시 고백한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매순간 다시 결단해야 합니다. 풍요와 안정 속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세상의 많은 선택지 속에서도 하나님을 가장 먼저 선택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로 다시 서야 합니다. 믿음의 대를 이어가려면 가정 안에서부터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이 흐르고, 말씀의 기억이 이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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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건축학개론님의 댓글

건축학개론 작성일

묵상: 여호수아의 생애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는 이제 곧 세상을 떠날 나이에 이스라엘 백성을 세겜으로 불러 모읍니다.그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오늘 너희가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무엇을 소유했는가 보다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선택'입니다.하나님을 향한 '결단'의 촉구입니다. 여호수아의 마지막 고별은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는 예배 였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믿음의 집이 되게 하소서.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삶의 여정 속에 선택은 항상 있지만, 그 선택이 항상 올바르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항상 올바르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항상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려고 말씀을 주십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민스님의 댓글

민스 작성일

샬롬♡
이옥희 권사입니다
♡ 깨달은 점
말씀앞에 항상 깨어 있어 끊임없는 나의 기도와 신실한 헌신이 "오직 나와 내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결단이 우리가정에 이루어지는
큰 역사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 실천하기
온전히 주님만을 믿고 맡기는 삶이 부족하였으나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이루어가시는 과정임을 믿고 모든것 내려놓고 기도와 말씀 실천으로 살겠습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때로는 상처의 깊은 골도, 고난의 아픈 골짜기도 은혜의 강이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세상에서 기대할 것이 없는 것은, 소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만이 참 소망이심을 드러내기 위한 섭리의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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