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디도서의 서두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합니다(1). 단순히 자신의 직분을 밝힌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존재와 사명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표현은 스스로의 의지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절대적 순종을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말은 그 부르심의 목적이 복음 전파에 있음을 나타냅니다. 바울은 사도로서의 부르심이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위함”이라고 말합니다(2). 사도직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진리 안에서 성장하여 경건의 삶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사명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또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영생의 소망에 바탕을 둔 약속” 위에 세워져 있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은 인간의 공로나 노력에 근거하지 않으며,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이미 계획하신 구속의 은혜입니다(2). 그러므로 바울의 복음은 순간적인 감정이나 현실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약속을 소망하는 믿음의 근거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어 이 말씀을 “전도의 말씀으로 나타내셨다”고 하십니다(3).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에 약속하신 복음을,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내셨고, 이제는 그 복음을 바울과 같은 사도를 통해 세상 가운데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자신의 사역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밝히며, 디도에게 이 편지를 전합니다. 그는 디도를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라고 부르며, 영적 관계의 친밀함과 신뢰를 표현합니다(4). 바울에게 디도는 같은 믿음 위에 세워진 동역자였습니다. “같은 믿음”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라는 복음 안에서 한 형제가 된 자라는 것에 대한 확신의 표현입니다. 바울과 디도의 관계는 인간적인 친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동일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를 신뢰하였고, 그에게 중대한 사명을 맡깁니다. 그는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5). 바울이 디도에게 맡긴 그레데의 사역은 단순히 조직을 정비하는 행정적 임무가 아니었습니다. 그레데 지역의 교회는 거짓 교사들의 왜곡된 가르침과 도덕적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1:10-11). 그러므로 바울은 디도에게 진리의 기준을 바로 세우고, 교회를 바르게 이끌 영적 지도자들을 세우도록 한 것입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이러한 중대한 사명을 맡긴 것은 그를 신뢰했기 때문이며, 그 신뢰의 근거는 오직 ‘같은 믿음과 영원한 소망’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동역 또한 동일한 원리에 기초해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관계는 인간적인 호불호나 세상적 판단으로 세워져서는 안 됩니다. 복음의 사역은 언제나 믿음의 일치, 소망의 일치, 그리고 진리의 확신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할 때, 사람의 판단이나 감정이 아니라 영생의 약속에 근거한 신뢰가 그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사명을 위임하며 보여준 관계는, 오늘날 사역자와 교회가 어떤 신뢰의 토대 위에 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장로의 자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믿는 자녀를 둔 사람”이라야 한다고 말합니다(6). 여기서 “책망할 것이 없다”는 말은 단순히 흠이 없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삶의 온전함을 뜻합니다. 장로는 교회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공동체 안팎에서 신뢰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의 가정이 믿음 안에서 바로 서 있어야 하며, 자녀들이 불순종하거나 방탕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교회의 지도자가 가정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곧 교회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장로를 “하나님의 청지기”라고 부릅니다(7). 청지기는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는 자기 뜻대로 행하거나 자기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교회를 섬기고, 말씀을 따라 공동체를 인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교만하거나 급한 성품을 가져서는 안 되며, 술에 취하거나 폭력적이거나 더러운 이익을 탐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대신 무너뜨리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재물에 대한 탐심을 경계해야 하며, 세상적 성공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그는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며, 선을 좋아하고,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는 자”라야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8). 이런 인격적 자질은 도덕적이거나 외적인 덕목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가 삶에서 드러나도록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믿고 가르침을 받은 말씀의 가르침을 굳게 잡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9). 지도자는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에 붙들린 사람이어야 합니다. 즉, 설교를 살아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권면하며, 거짓된 가르침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교회의 직분은 세상의 직책과 달리 권위나 지위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복음의 진리를 변호하며, 성도를 돌보는 섬김의 자리입니다. 만일 지도자가 명예와 권세를 추구한다면, 교회의 직분은 곧 세속적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직분자는 자신이 맡은 자리가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종의 자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의 편지를 통해 우리는 신앙의 본질이 ‘믿음’과 ‘소망’ 위에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믿음은 단지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망은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는 영원한 확신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믿음과 소망이 단지 미래의 위로가 아니라, 오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능력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 믿음과 소망 위에 서야 합니다. 교회와 가정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려면, 영원한 약속의 소망을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디도를 통해 시대를 넘어 교회를 세우셨고,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부르심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우는 모든 일꾼과 지도자가,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영원한 소망의 기준 위에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