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금) 호세아 2:14-3:5 / 새로운 관계 회복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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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34회 작성일 26-05-22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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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23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3장】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3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 가운데 머무는 것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 가운데 있었던 만큼 징계하십니다(2:13). 그 징계는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징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한 징계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되, 죄를 죄로 여기지 않은 채 지나치지도 않으십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시고, 징계하시기 때문에 다시 살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는 진노의 마지막 표현이 아니라 은혜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고통이고 막막함이며 잃어버림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길 한가운데서 새로운 관계를 준비하고 계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2:14). 거친 들은 사람이 기대어 살 만한 것이 없는 자리입니다. 익숙한 도움도, 익숙한 즐거움도, 익숙한 의지처도 사라진 자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거친 들로 자기 백성을 데리고 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곳에서 멸망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다시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가진 것이 많고 의지할 것이 많을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친 들에서는 다릅니다. 거기에는 사람의 소리가 줄어들고, 자기 확신이 무너지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타이르시고, 그 자리에서 위로하십니다. 징계의 자리가 오히려 은혜의 자리로 바뀌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포도원을 주시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2:15). 아골 골짜기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심판과 죽음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곳은 실패의 자리이고, 수치의 자리이며,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자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바꾸시겠다고 하십니다. 사람에게는 끝이라 여겨지는 자리가 하나님께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눈물의 골짜기인 곳이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회복의 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인생의 아골 골짜기를 두려움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을 소망의 문으로 바꾸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징계의 고난에는 반드시 우리를 변화시키시려는 거룩한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입에서 바알들의 이름을 제거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2:17). 이는 단지 입술의 습관을 고치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우상의 흔적을 지워 버리시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 외의 것을 붙들고 살아가려 합니다. 눈에 보이는 힘, 손에 잡히는 물질, 사람의 인정과 세상의 방식이 어느새 하나님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상의 이름을 우리 안에서 지워 버리시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가 되시는 자리로 이끄십니다. 참된 회복은 환경이 먼저 바뀌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 외의 다른 이름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 가운데서 돌이키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들의 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에 기는 것까지도 하나님은 자기 뜻 안에서 사용하실 수 있으십니다. 전쟁도, 두려움도, 흔들림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는 모두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은 그 모든 징계의 도구를 오히려 우리를 평안케 하는 도구로 바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2:18). 우리를 두렵게 하던 것들이 우리를 해하지 못하는 자리, 우리를 흔들던 환경이 오히려 평안을 이루는 자리, 그것이 회복된 관계가 가져오는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2:19-20). 이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얼마나 깊고도 친밀한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다시 맞아들이실 뿐 아니라, 영원한 언약 관계 안으로 들이십니다. 그것도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과 진실함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관계를 회복하실 때에는 억지로 끌고 가시지 않으십니다. 사랑으로 회복하시고, 언약으로 붙드십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이 언약적 사랑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알게 됩니다. 죄 가운데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오해하였고, 징계 가운데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만 하였으나, 회복의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얼마나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붙드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의 주변 환경도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응답하시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며,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21-22). 이는 단지 풍년을 약속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창조 질서 안에서 조화와 평안이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바로 설 때 가장 아름답게 움직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단지 내 마음의 위로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삶의 질서가 다시 세워지고, 존재의 방향이 바르게 놓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함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이 세상 한가운데 심으시고, “너는 내 백성이라” 하시며, 그 백성은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라고 고백하게 하십니다(2:23). 암미와 루하마의 회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버림받은 이름이 사랑받는 이름으로 바뀌고, 끊어진 관계가 다시 언약의 관계로 세워집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다시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여자를 사랑하라고 명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바라보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호세아의 삶을 통하여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3:1). 그래서 호세아는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그 여자를 다시 데려옵니다(3:2). 이 장면은 놀랍고도 아프며, 동시에 은혜롭습니다. 사랑받을 만하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여기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죄 가운데 있을 때에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다시 값을 치르고 사 오십니다. 그 사랑은 조건에서 시작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에서 시작됩니다.

호세아와 고멜의 이야기는 곧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녀인 우리가 충성스럽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가 늘 온전하기 때문에 붙들어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다른 것을 사랑하며, 쉽게 하나님 아닌 것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랑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은혜는 자격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함을 받은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도 바로 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은 우리의 결심이 먼저가 아니라,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정죄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며, 관계를 끊어 버리려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또한 사랑 안에서 관계 회복을 꿈꾸어야 합니다. 물론 죄를 가볍게 여기라는 말은 아닙니다. 관계의 회복은 진실함 없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의 길을 닫아 버리고, 사랑의 가능성을 끊어 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은혜의 방식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사시고, 다시 부르시고, 다시 관계 안으로 들어오게 하셨다면, 우리도 그 사랑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관계 회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거친 들에서 말씀하시고,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바꾸시며, 우리 입에서 우상의 이름을 지우시고, 다시 언약의 자리로 불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누구도 돌아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그 사랑 앞에 서야 합니다. 징계 가운데 있다면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메마른 들판에 서 있다면 거기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무너진 관계와 상한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게 하실 수 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은 과거를 지우는 회복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까지도 은혜의 통로로 바꾸시는 회복입니다. 오늘도 그 사랑 안에서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라고 고백하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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