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수) 요한계시록 1:9-20 / 심판 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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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47회 작성일 26-06-10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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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다가 밧모라 하는 섬에 갇히게 됩니다(9).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는 실패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자유를 빼앗겼고, 외딴섬에 유배된 처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패배한 자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고독한 자리에서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으로 기록합니다. 사람은 상황과 처지를 보고 결론을 내리지만, 하나님은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로마의 권세는 요한의 몸을 가둘 수 있었으나 하나님의 말씀까지 가둘 수는 없었습니다. 세상은 요한을 교회로부터 떼어 놓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그 유배지에서 오히려 일곱 교회를 향한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소개하며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말합니다(9). 이 고백에는 참된 목자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높은 자리에서 교회를 이끄는 자가 아니라, 성도들과 같은 자리에서 함께 환난을 겪는 형제였습니다. 예수의 환난에 동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오래 참음을 함께 감당하는 자였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이러한 자리에 섭니다. 교회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함께 서고 고난 가운데서 함께 견디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종을 통해 교회를 향한 뜻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줍니다. 우리의 환경과 조건은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사람을 가난이라는 이름으로, 무명이라는 이름으로, 실패라는 이름으로 가두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붙드시면 그 사람의 처지는 더 이상 한계가 되지 않습니다. 밧모섬은 사람의 눈에는 유배지였지만, 하나님께는 계시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삶의 좁은 자리에서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실지를 기대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답답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며, 때로는 그 환경 자체를 통하여 더 분명하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큰 음성을 듣습니다(10). 그는 유배된 상황 속에서도 주의 날을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자유로운 환경이 아니었지만 예배의 중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그는 홀로 버려진 자였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깊은 예배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은 아무에게나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모하며 그분 앞에 서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주의 날을 귀하게 여기고 말씀을 사모하는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드러내십니다.

요한이 들은 음성은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라는 명령이었습니다(11). 이는 요한계시록이 개인적인 신비 체험으로 끝나는 책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계시는 언제나 교회를 향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적은 어떤 한 사람이 비밀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교회가 듣고 회개하며 인내하고 소망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서 정통교회의 해석과 신천지의 해석은 분명히 다릅니다. 신천지는 계시를 특정 지도자가 독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비밀 지식처럼 주장합니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이 계시가 교회를 위한 공적인 말씀임을 고백합니다. 요한이 받은 말씀은 교회에 보내어 읽히고 들려지도록 하신 것이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바르게 이해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요한이 돌아보았을 때 먼저 본 것은 일곱 금 촛대였고, 그 가운데 인자 같은 이가 서 계셨습니다(12-13). 이 장면은 교회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주님께서는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가운데 계십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약해 보일지라도, 그 중심에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세상의 눈에는 교회가 작고 연약해 보일 수 있지만, 하늘의 시선에서는 주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외적인 힘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참된 능력은 조직이나 규모가 아니라 주님의 임재에서 비롯됩니다.

주님의 모습은 장엄하게 묘사됩니다. 그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13). 이는 왕의 위엄과 제사장의 권위를 나타냅니다. 또한 그의 머리와 털은 흰 양털 같고 눈 같았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았습니다(14). 주님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십니다.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며, 교회의 참된 상태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임재는 위로이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입니다. 진실한 자에게는 은혜가 되지만, 거짓된 자에게는 떨림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진실로 주님 앞에 서 있는지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그의 발은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았습니다(15). 이는 그의 심판과 통치가 완전하고 흔들림 없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권세는 크고 두려워 보일 수 있으나 결국 사라집니다. 그러나 주님의 통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의 음성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며, 그의 판단은 언제나 공의롭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들려 있었고, 그의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왔으며, 그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16). 일곱 별은 교회의 사자들을 뜻하며, 교회가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보여줍니다(20). 교회는 세상의 손에 달려 있지 않고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검은 말씀의 권세를 나타냅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심판하시고 말씀으로 다스리십니다. 그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냅니다(16). 이 부분에서 신천지는 이 빛을 특정 인간에게 적용하며 왜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분명히 고백합니다. 이 영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며, 어떤 인간도 이 영광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요한은 이 영광을 보고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17). 이는 참된 계시가 사람을 낮추게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선 사람은 자신을 높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짓된 계시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합니다. 이것은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엎드러진 요한에게 손을 얹으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17). 주님은 심판의 주이시지만 동시에 위로의 주이십니다. 그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17-18).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를 보여 줍니다. 그는 죽음을 이기셨고 지금도 살아 계시며, 생명과 죽음의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이 부분에서도 신천지는 왜곡된 해석을 제시합니다. 그들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특정 인간이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며, 그 권세를 통해 생명을 주고 심판을 좌우할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그를 높입니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분명히 고백합니다. 이 권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습니다. 어떤 인간도 죽음을 이기지 못했고, 어떤 지도자도 지옥의 권세를 다스리지 못하며, 어떤 존재도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거나 멸망으로 결정할 권한을 가지지 못합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고, 그 결과로만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소유하신 분이 되셨습니다(18). 그러므로 이 권세를 인간에게 돌리는 해석은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구속의 완전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오류이며, 결국 사람을 의지하게 만들어 참된 구원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거짓 가르침입니다.

주님은 요한에게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명하십니다(19). 이 계시는 개인의 체험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뜻입니다. 주님은 마지막으로 일곱 별과 일곱 촛대의 의미를 직접 설명해 주십니다(20). 이는 계시가 혼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임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영광의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공동체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가운데 살아 계신 주님이십니다. 밧모섬에 갇힌 요한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오늘도 하나님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경 때문에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교회 가운데 계시며, 여전히 말씀하시고, 여전히 붙들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시록에 대한 화려한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마음이며, 비밀 지식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는 믿음입니다. 교회는 어떤 인간의 빛을 따라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해같이 빛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공동체입니다. 성도는 어떤 사람에게 생명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만 의지하는 자입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고 살아가는 자만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기쁨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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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절대로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입니다.

나의 본문을 잊지않고 이 곳 강진에서 이정현수학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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