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월) 요한계시록 6:1-17 / 재앙과 같은 현실 속에서도 / 안병찬 목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38회 작성일 26-06-22 04:24

본문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요한은 어린양께서 일곱 인 가운데 하나를 떼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 장면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온 역사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드러내는 계시의 중심입니다. 어린양은 이미 죽임을 당하셨으나 살아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만이 하나님의 뜻을 열어 가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인을 떼는 사건은 재앙의 시작 이전에 먼저 선포되는 선언과 같습니다. 이 세상은 우연이나 혼돈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 보여줍니다.

첫째 인이 떼어질 때 요한은 흰 말을 보게 됩니다. 그 탄 자는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받았으며 이기고 또 이기려고 나아갑니다. 이 장면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드러냅니다. 정통교회의 해석은 이 흰 말을 복음의 전진, 곧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상에 퍼져 나가는 흐름으로 이해합니다.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반드시 복음이 먼저 선포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향하여 경고하시기 전에 먼저 회개의 길을 여십니다. 그러므로 이기고 또 이긴다는 말은 특정한 한 시점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복음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단 신천지는 이 장면을 왜곡하여 특정 인물에게 적용합니다. 흰 말을 교주의 육체로, 탄 자를 예수의 영으로 해석하며 자기들만이 참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보편적 복음의 승리를 한 개인에게 축소시키는 오류입니다. 성경은 어느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해석합니다. 따라서 흰 말은 결코 특정 교주를 의미할 수 없으며, 복음의 역사적 확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둘째 인이 떼어질 때 붉은 말이 등장합니다. 그 탄 자는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고 서로 죽이게 합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죄가 가져오는 전쟁과 파괴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스스로 평화를 유지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역사 속의 수많은 전쟁은 단순한 정치적 충돌이 아니라 죄의 결과로 나타난 필연적 열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전쟁조차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제한된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셋째 인이 떼어질 때 검은 말이 나타납니다. 그 탄 자는 저울을 들고 있으며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극심한 기근을 의미합니다. 하루의 품삯으로 겨우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반드시 기근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6). 이는 기근이라는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은혜의 영역을 남겨 두신다는 뜻으로, 문자적으로는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신학적으로는 감람유가 성령의 인도와 하나님의 임재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구속의 은혜와 언약의 생명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재앙이 아무리 극심해도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성령의 보호와 구원의 은혜는 결코 끊어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넷째 인이 떼어질 때 청황색 말이 등장합니다.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며 음부가 뒤를 따릅니다. 전쟁과 기근이 결국 사망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이 네 가지 재앙은 서로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연결된 하나의 흐름입니다. 죄로 인해 무너진 세상은 결국 죽음으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제한된 권세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땅 사분의 일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심판이 전면적인 멸절이 아니라 경고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재앙은 점점 확장되지만, 그 모든 과정은 어린양의 손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어느 하나도 우연히 발생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허락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재앙 자체보다 그 재앙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섯째 인이 떼어질 때 장면은 갑자기 전환됩니다. 이제 요한은 제단 아래에서 순교자들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언제까지 우리의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외칩니다(10). 이 외침은 복수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공의를 이루실 것을 신뢰하며 그 완성을 간구하는 믿음의 호소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잠시 동안 쉬라고 하십니다. 흰 두루마기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의가 덧입혀져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로 인정되었음을 나타내고, 동시에 반드시 이루어질 공의로운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보증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신다는 표시입니다.

신천지는 이 장면을 왜곡하여 순교자들을 말씀을 지키다 죽은 자들이 아니라 배도한 장막에서 떨어져 나간 자들이거나, 혹은 자신들의 교리 체계 안에서 탈락한 존재로 해석하며, 순교의 의미를 영적 실패나 탈락으로 전도시키는 오류를 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들을 하나님께 충성하다 죽은 자들로 분명히 증거합니다. 흰 두루마리는 그들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가 입혀진 결과이며, 그들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순교를 영광으로 묘사하며, 이를 통해 교회를 세워 가십니다.

여섯째 인이 떼어질 때 장면은 우주적 규모로 확대됩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고 해는 검어지고 달은 피처럼 변하며 별들이 떨어집니다.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리고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겨집니다. 이는 일시적인 자연현상이 아니라, 창조질서 자체가 흔들리는 심판의 장면입니다. 이때 땅의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산과 바위 틈에 숨으며 외칩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말합니다(17). 세상의 권력도, 부도, 지식도 그 날에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오직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은 자만이 그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는 이미 성경 전체가 증거하는 구원의 원리입니다.

이단 신천지는 이러한 우주적 심판을 특정 교단 내부의 사건으로 축소시킵니다. 해와 달과 별을 사람으로 해석하고, 굴과 바위를 교회 구조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전 인류가 동일하게 경험하는 심판의 장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축소 해석은 성경의 경고를 무디게 만들고, 회개의 긴박함을 흐리게 만듭니다.

요한계시록 6장은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을 주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경고를 주는 말씀입니다. 재앙은 실제이며 점점 더 강해질 것입니다. 전쟁과 내란과 기근과 사망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어린양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붙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불안과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니라, 우리를 붙들고 계신 분이 누구이신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고백합니다(시 23:4). 이 고백은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재앙은 점점 커지지만 하나님의 보호 역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땅 사분의 일이라는 제한, 감람유와 포도주를 남겨 두시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별하여 보호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이 보호는 단순한 육체적 안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믿음의 보존과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앙 자체를 두려워하기보다 그 재앙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통해 세상을 무너뜨리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을 깨우시려 하십니다. 심판은 끝이 아니라 경고이며, 동시에 구원의 문을 두드리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마지막 날에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숨게 될 때, 성도는 숨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대히 서게 됩니다. 이는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를 덮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분명한 소망입니다. 세상은 흔들리지만 어린양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속한 자는 어떤 재앙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확실한 위로이며, 동시에 깨어 있게 하는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79bc075c님의 댓글

79bc075c 작성일

월요묵상 김봉연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첫째인 부터 넷째인까지 떨때
말씀, 전쟁, 기근, 사망,등의 경고를 통해 재앙을 선포하심은 하나님만이 모든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는 분인것을 알게하십니다.
내가 주장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남은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새벽이슬묵상 목록
열람중
329
328
327
326
325
324
323
322
321
320
319
318
317
316
315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