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화) 요한계시록 7:1-17 /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신하라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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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40회 작성일 26-06-23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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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요한은 여섯째 인의 심판 장면 이후에 전혀 다른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가 바라보던 두려움과 떨림의 장면은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감추어져 있던 또 다른 장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일 후에”라는 표현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계시의 초점이 전환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심판이 이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는 일이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요한은 땅 네 모퉁이에 네 천사가 서서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 바람은 땅이나 바다나 각종 나무를 해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었으나, 지금은 멈추어 있습니다. 이는 심판이 아무 때나 임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때와 계획 안에서 제한되고 통제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1).

여기서 하나님의 성품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급하게 쏟아 붓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그 전에 반드시 자기 백성을 구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또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 외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는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2-3).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질서를 보게 됩니다. 심판보다 먼저 이루어지는 것은 구별이며, 재앙보다 앞서는 것은 보호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확증되기 전에는 심판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 인침은 육체에 행해지는 특정한 표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와 보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고대에서 인은 문서나 물건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며, 변조할 수 없는 확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것으로 삼으셨다는 선언입니다. 이는 인간의 감정이나 느낌에 따라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은혜에 의해 이루어지는 확정된 사실입니다. 출애굽 당시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졌을 때 죽음의 재앙이 그 집을 넘어갔던 것처럼, 하나님의 인침은 심판 속에서도 구별되는 은혜를 나타냅니다(출 12:13).

신천지는 이 인침을 자신들의 조직과 특정 인물에 연결시키는 오류를 범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을 특정 교주와 조직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인치는 주체를 인간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인침이 성령의 사역임을 증거합니다. 바울은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합니다(엡 1:13). 인침은 인간이 행하는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이루시는 구원의 확증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특정 단체에 국한시키는 해석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어서 인 맞은 자들의 수를 듣게 됩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각각 일만 이천 명씩, 총 십사만 사천 명입니다(4). 이 숫자는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열둘이라는 수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완전수이며, 여기에 또 다른 열둘이 더해지고, 거기에 천이라는 충만의 수가 곱해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온전하게, 그리고 하나도 빠짐없이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십사만 사천은 제한된 숫자가 아니라 완전한 구속 공동체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숫자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특정 인원으로 제한합니다. 그들은 십사만 사천 명만이 특별한 지위에 오르는 구원받은 자들이라고 주장하며, 그 외의 사람들은 그 아래 계층으로 구분합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보편성과 은혜를 왜곡하는 해석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선포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요 1:12). 구원은 숫자에 의해 제한되지 않으며, 오직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이제 곧바로 또 다른 환상으로 이어집니다. 요한은 이제 자신이 들은 숫자를 넘어, 눈으로 보는 장면을 경험하게 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옵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 있습니다(9).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연결을 보게 됩니다. 들은 수와 본 장면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 본질은 하나입니다. 십사만 사천이라는 상징적 수가 실제로는 셀 수 없는 큰 무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흰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 흰 옷은 그들의 행위로 이루어진 의가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 씻겨진 의입니다. 그들은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라고 외칩니다(10). 이 고백은 구원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어린양의 희생으로 이루어집니다.

신천지는 이 큰 무리를 기존 교회에서 자기들 조직으로 들어온 사람들로 해석하며, 구원의 범위를 다시 제한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들을 모든 민족과 언어에서 나온 자들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특정 집단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열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며,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 열려 있습니다.

천사들과 장로들과 네 생물은 이 장면 앞에서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들은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라고 찬양합니다(12). 이는 구원의 완성이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모든 역사의 결론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귀결됩니다. 이 찬양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완전하고 흠이 없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또한 구원의 시작과 과정과 완성이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드러내며, 인간의 어떤 공로나 자랑도 개입될 수 없음을 선언하는 거룩한 경배입니다.

장로 중 하나가 요한에게 묻습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라고 말합니다(13). 요한은 겸손하게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14). 그때 장로는 이들이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고 설명합니다(14). 이 말씀은 성도의 삶이 환난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참된 성도는 환난을 통과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 환난은 멸망으로 이어지지 않고, 정결과 승리로 이어집니다.

신천지는 이 환난을 전 인류적 종말의 고난이 아니라 자신들이 말하는 ‘배도한 장막’ 곧 기존 교회에 대한 심판의 시기로 한정하며, 그 환난 속에서 신천지로 들어온 자들만이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어린양의 피를 실제 십자가에서 흘려진 대속의 피로 보지 않고, 자신들이 전하는 계시의 말씀이나 교리로 해석하여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피로 씻음 받는 것이라고 왜곡합니다. 나아가 그들은 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통로를 특정 인물과 조직에 연결시켜, 그 안에 들어와야만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린양의 피가 실제 십자가에서 흘려진 속죄의 피임을 분명히 증거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라고 말씀합니다(히 9:12). 구원은 인간의 해석이나 교리 체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침내 이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며,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게 하십니다. 해나 어떤 뜨거운 기운도 그들을 상하게 하지 못합니다(16). 어린양께서 친히 그들의 목자가 되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십니다(17). 이 장면은 성도의 궁극적인 소망을 보여줍니다. 이 땅에서의 눈물과 고통은 영원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것을 씻어 주시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됩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분명한 확신을 줍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재앙이 다가올 때에도,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는 결코 버려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함을 얻은 구원은 결코 번복되지 않습니다.하나님께 속한 자는 환난 가운데서도 보호받으며, 결국 어린양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는 끊임없이 두려움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확신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이며, 그분의 소유입니다. 이 사실을 붙드는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장차 이루어질 영광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날에 우리는 흰 옷 입은 큰 무리 가운데 서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며, 성도가 붙들어야 할 확실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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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프라하님의 댓글

강진프라하 작성일

샬롬!! 김숙자입니다

이땅가운데 눈물과 고통은 영원하지 않으며,주님만이 친히 닦아주시고 멎게 하실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 그분의 계획, 그분의 손길안에서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다는것을 기억하며 말씀가운데 약속하신 구원을 끝까지 붙잡고, 전하는데 힘쓰는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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