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금) 요한계시록 9:13-21 /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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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34회 작성일 26-06-26 04:36

본문

13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14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15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16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17 이같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18 이 세 재앙 곧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19 이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으니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요한은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에 이전까지의 재앙과는 또 다른 깊이를 가진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되는데, 이 음성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시작됨을 알리는 거룩한 선포입니다(13). 금 제단은 성도의 기도가 드려지던 곳이며,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던 자리입니다. 그러한 제단에서 심판의 명령이 나온다는 것은 이 재앙이 우연이나 분노의 폭발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응답의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미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이제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음성은 유브라데 강에 결박된 네 천사를 놓아주라는 명령으로 이어집니다(14). 유브라데는 성경에서 지리적 강을 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강대국들이 등장하던 상징적 공간입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이 그곳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혔던 것처럼, 유브라데는 종말에 일어날 심판과 침략, 그리고 파괴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 네 천사가 결박되어 있다가 풀려난다는 것은 악의 세력이 스스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따라 제한적으로 허락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이 네 천사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15).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 주권을 분명히 보게 됩니다. 심판은 무질서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시간과 계획 가운데 모든 일을 진행하십니다. 악한 세력조차도 그분의 계획 밖에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절대적인 주권자이심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그 어떤 재앙도 우연히 발생하지 않으며,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따라 이루어지며 그 목적 또한 분명하게 성취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요한은 마병대의 수를 듣게 됩니다. 그 수는 이만 만, 곧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숫자로 표현됩니다(16). 이 수는 문자적 계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규모와 위력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 표현입니다. 이 마병대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들의 모습은 불과 연기와 유황을 내뿜는 말들과 같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이는 인간의 어떤 방어 수단이나 지혜로도 막을 수 없는 전면적인 심판의 위력을 드러내며, 피할 길이 없는 절박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장면은 역사적으로 로마 제국이 두려워했던 파르티아의 기병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요한이 본 환상은 단순히 역사적 군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에 나타날 심판의 위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마병대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사람 삼분의 일을 죽입니다(18). 이는 인간이 어떤 방법으로도 피할 수 없는 전면적인 심판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고 두려운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들의 힘이 입과 꼬리에 있다는 표현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는 공격의 방향이 한쪽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방향에서도 피할 수 없는 완전한 파괴력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지혜나 힘으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절대적인 심판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재앙 역시 ‘삼분의 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전면적인 멸망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남은 자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남겨 두십니다.

정통교회는 이 장면을 문자적인 전쟁으로만 보지 않고, 종말에 나타날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고 피할 수 없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계시로 이해합니다. 이는 물리적인 군사적 충돌을 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에 대한 전면적인 심판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이 모든 재앙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제한되고 통제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고 깨어 준비하게 하는 경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장면을 특정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연결하여 해석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그들은 유브라데를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지옥이나 특정 장소로 규정하고, 네 천사를 멸망자로 해석하며, 이 사건을 1981년 9월 20일과 같은 특정 시점에 일어난 일로 단정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과거 장막성전과 관련된 사건을 종말의 실상으로 동일시하며, 역사 속의 특정 인물들과 연결하여 계시의 내용을 제한된 사건으로 축소합니다.

또한 마병대를 사탄 조직에 속한 거짓 목자들이나 기성교회로 규정하여, 성경이 말하는 전 인류적 심판의 의미를 왜곡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요한계시록의 상징적 표현을 자의적으로 현실 사건에 끼워 맞추는 것이며, 모든 시대와 모든 인류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경고를 특정 집단 내부의 사건으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결국 이러한 해석은 성경이 전달하려는 종말적 경고의 보편성과 긴박함을 흐리게 만들고,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제한하는 심각한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해석은 성도들의 시선을 그리스도가 아닌 특정 조직과 인물에게 집중시키게 하여, 복음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처럼 심판은 점점 강해지고 있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심판 속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이 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귀신과 금, 은, 동과 돌과 나무로 만든 우상에게 절하고” 있다고 증거합니다(20). 이는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깊고 완악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심판의 두려움을 분명히 경험하면서도, 그들은 마음을 낮추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이 우상 숭배와 죄악에 집착합니다. 이는 죄가 단순한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는 본성적인 상태임을 드러내며, 인간 스스로는 결코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이 우상 숭배와 죄악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않습니다(21). 이는 도덕적 타락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는 근본적인 반역의 상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도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라고 말씀하며 인간의 타락을 설명합니다(롬 1:21).

이는 곧 하나님의 심판이 결코 과도하거나 불공정한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기회를 주시고, 경고하시며, 돌이킬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인간의 완악함이 결국 심판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히 공의로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재앙을 보며 단순히 두려워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과 환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듣지 않으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완악해질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은혜 속에서도 무감각해지고, 경고 속에서도 무뎌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회개는 특별한 순간의 행동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지속되어야 하는 신앙의 태도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세상을 향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심판을 받게 될 사람들을 향해 무관심하거나 정죄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의 상태를 바라보며 안타까움과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마지막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재앙은 끝이 아니라 경고이며, 동시에 은혜의 초청입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결국 때가 되면 심판은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보호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 시대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그분께 속한 자를 끝까지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혼란 속에서도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회개하며,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길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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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민스님의 댓글

민스 작성일

샬롬
♡ 이옥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가끔
민감한 환경에 반응하곤 했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분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순종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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