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6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증언하여 이르되
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스가랴 선지자는 또 다른 환상을 보게 됩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서 있고, 사탄은 그의 오른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고 있었습니다(1).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여호수아의 죄를 고발하며 정죄하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단지 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고소는 단지 여호수아 개인의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 전체의 죄악과 더러움을 드러내며 심판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을 고소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를 들추어내며 정죄합니다. 죄를 짓고 넘어질 때마다 “너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속삭입니다. 세상 역시 성도의 허물과 죄를 바라보며 조롱합니다. 자신들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면서도, 믿는 사람의 죄는 더욱 크게 확대하여 비난합니다. 마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단 한 번도 실수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고소 앞에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사탄을 향하여 “사탄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2). 그리고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2). 유다는 이미 심판의 불을 통과한 백성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이라는 혹독한 징계를 경험하였고, 불 가운데서 겨우 건져낸 나무처럼 상처 입고 연약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백성을 향하여 다시는 사탄이 함부로 정죄하지 못하도록 책망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사람을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본래 우리는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와 허물 가운데 있던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로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3). 대제사장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죄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해야 할 백성이 죄로 인해 더럽혀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명령하십니다(4). 그리고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고 말씀하십니다(4).
더러운 옷은 죄의 옷이었고, 아름다운 옷은 하나님께서 입혀 주시는 의의 옷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스스로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죄인은 자기 힘으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죄를 제거하시고 새로운 옷을 입혀 주셔야 했습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구원의 은혜를 보여 줍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입을 때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머리에 정결한 관을 씌우게 하십니다(5). 이는 대제사장의 직분을 회복시키셨다는 뜻입니다. 죄로 인해 더럽혀졌던 자를 다시 하나님 앞에 세우시고, 거룩한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본래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제사장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그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그들을 회복시키셨습니다. 베드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증거합니다(벧전 2:9).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그들에게 다시 사명을 맡기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단지 천국 가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그의 영광과 은혜를 세상 가운데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과거를 들추어냅니다. 죄를 기억하게 하고, 넘어졌던 순간들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자를 다시 정죄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바울은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선포합니다(롬 8:33).
그러므로 성도는 정죄 속에 머물러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깊이 회개하되,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붙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죄를 통하여 절망하게 만들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여호와의 천사는 여호수아에게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7).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신 후에 새로운 길을 보여 주십니다. 어둠 속에서 방황하던 자에게 다시 걸어가야 할 길을 밝히 비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용서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적인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어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8). 여기서 “싹”은 장차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메시아는 연약한 싹처럼 오실 것이지만, 결국 모든 죄악을 제거하시고 영원한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9).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죄를 속죄하실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청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10).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는다는 것은 평화와 안식을 의미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라고 선포합니다(미 4:4). 메시아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본래 사탄의 고소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입혀 주셨습니다. 그리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 안에 거할 때 우리는 다시 일어나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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