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화) 스가랴 5:1-11 / 성결을 말씀하시다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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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6-08-04 04:11

본문

 1 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본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있더라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이니이다

 3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4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것을 보냈나니 도둑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의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나무와 돌과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5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6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그가 이르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이니라 하시고 또 이르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7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니 그 때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8 그가 이르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귀 위에 던져 덮더라

 9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오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10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니

11 그가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것을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것이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여호와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에게 다시 한 번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스가랴가 눈을 들어 바라보니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였습니다(1). 그 두루마리는 길이가 이십 규빗이며 너비가 십 규빗이나 되는 거대한 크기였습니다(2).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이 환상은 단순히 이상한 광경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환상을 통해 자기 백성의 죄악과 그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성경에서 “눈을 들어 본다”는 표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바라보았습니다(창 13:14). 그러나 롯이 눈을 들어 바라보았을 때에는 달랐습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의 풍요로움을 바라보며 자신의 욕심과 계산에 따라 선택하였습니다(창 13:10). 육체의 눈으로 바라본 롯의 선택은 결국 실패와 고통으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아브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바라보느냐는 신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육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눈앞의 유익을 따라가게 되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게 됩니다.

스가랴는 자기 욕심과 계산으로 환상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보여지는 계시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는 스가랴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준비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부족하고 우둔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결국 겸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선택의 순간마다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됩니다.

믿음의 눈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기도와 말씀 묵상은 단순한 종교적인 습관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만드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사람은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세상의 기준에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머무르며 기도하는 사람은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경건의 삶은 사람을 더욱 겸손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성공과 결과를 따라가라고 말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흐려질 때 사람은 세상을 따라가게 되지만, 말씀 안에 머무를 때 다시 믿음의 길로 돌아오게 됩니다.

스가랴가 본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매우 큰 크기였습니다(2). 한 규빗이 성인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인 것을 생각하면, 길이는 약 팔 미터이며 너비는 약 사 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두루마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그 크기까지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크기가 솔로몬 성전의 성소 크기와 같았기 때문입니다(왕상 6:3).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는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므로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특정한 장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미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는 어떤 죄악도 감추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고 말씀하시며 도둑질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를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십니다(3). 두루마리에는 죄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둑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의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나무와 돌과 아울러 사르리라”고 말씀하십니다(4). 이는 죄를 철저하게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도둑질은 단순히 물건을 훔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우상을 사랑하는 모습을 포함합니다. 사람은 겉으로는 경건한 척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물질과 욕심을 더 의지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악입니다. 또한 맹세에 대한 말씀은 맹세 자체를 금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함을 드러내기 위해 맹세한 믿음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거짓 맹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게 만드는 수많은 우상들이 존재합니다. 사람은 물질과 성공과 명예를 의지하려 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모습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민 6:27, 학 2:19).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속에 참된 복이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은 잠시뿐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은혜는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스가랴에게 에바 환상을 보여주십니다(5-6). 에바는 곡식을 다는 되를 말합니다. 스가랴가 바라보니 에바 가운데 한 여인이 앉아 있었고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려졌습니다(7).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 유다 백성의 죄악을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에바는 사람의 삶을 달아보는 도구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가운데 있는 죄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죄악의 무게를 달아보시고 드러내십니다.

에바 가운데 앉아 있는 여인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상징합니다. 납 조각이 들린 것은 그 죄악이 매우 무겁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고 말씀하시며 자기 백성의 상태를 드러내셨습니다(6). 그러나 아직 죄악이 완전히 가득 찬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고를 통해 돌이킬 기회를 주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수많은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될 때 그 죄악은 가득 차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3:32). 이는 죄악이 끝까지 쌓여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지만 동시에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에바 가운데 있는 여인의 모습은 죄악에 대한 경고이면서 동시에 돌이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더 깊은 죄악으로 빠져들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끝까지 죄를 붙들고 살아간다면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천사는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으로 덮었습니다(8). 이어서 학의 날개 같은 날개를 가진 두 여인이 나타나 그 에바를 들어 시날 땅으로 옮겨갑니다(9-11). 시날은 바벨탑이 세워졌던 교만과 죄악의 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거룩한 땅에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심판의 자리로 옮기고 계셨습니다. 이는 죄가 하나님 앞에 결코 머물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불순종의 죄를 지은 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죄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고통의 자리로 사람을 끌고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죄를 제거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죄와 함께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는 거룩한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세상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죄를 드러내시고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죄를 숨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돌이킬 때 비로소 회복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동시에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육체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유익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을 회개하며 성결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백성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삶 속에서 참된 평안과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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