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으나
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16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17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8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20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21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23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유다의 조상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린 채 우상을 섬기고 죄악 가운데 살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돌이키라고 수없이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끝내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며 자기 욕심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무너졌고 성전은 불탔으며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칠십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기 백성을 향해 다시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 내리기를 뜻하고도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나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 베풀기를 뜻하였은즉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14-15).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사람의 공로나 자격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 백성은 포로 생활을 겪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율법의 본질보다 종교적 행위에 더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중심의 변화보다 절기와 규례를 지키는 것에 만족하려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을 약속하신 것은 유다 백성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결코 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구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스스로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죄인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 욕심을 따라 살아가려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인간의 선함이나 종교적 열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긍휼을 베풀기로 작정하셨기에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시 30:11). 하나님께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사 제국 가운데 살던 유다 백성도 하만의 계략으로 전부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인간적으로는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세우셨고,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며 울부짖는 그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하만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절망의 자리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건져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이 아무리 어두워 보여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기로 작정하신 후 유다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이는 은혜를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행함을 명령하신 것은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16-17).
유다 백성은 종교적 의식을 지키는 일에는 열심이 있었지만 정작 삶 속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금식의 횟수보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람들은 모이면 쉽게 남의 허물을 말하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말로 서로를 세워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받은 은혜를 전해야 합니다. 모임의 중심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16).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재판이 이루어지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거짓과 불의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재판의 목적은 단지 상대를 정죄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공동체의 화평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법을 사용하려 합니다. 미워하고 시기하며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도구로 삼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모습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17). 거짓 맹세는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한 수단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하고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십니다. 은혜를 받은 성도는 거짓과 간사함을 버리고 진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은혜는 죄를 마음대로 지어도 된다는 허락이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내면의 변화가 삶의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경건한 척하면서도 가정과 일터에서는 여전히 미움과 욕심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당 안에서의 모습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금식의 날들이 기쁨의 절기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19).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이 무너진 날과 성전이 불타버린 날, 바벨론 군대가 성을 포위한 날을 기억하며 금식해 왔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절기를 지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19). 하나님의 백성은 진실해야 합니다. 겉모습만 경건한 척하는 외식적인 삶이 아니라 중심이 정직한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보시며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7).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잘 보이려는 신앙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유다 백성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를 통해 이방 민족들까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22). 하나님의 회복은 열방을 향한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놀라운 장면을 보여주십니다.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23).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열방이 하나님께로 나오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유다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사도행전을 통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게 하셨습니다. 오늘 교회 역시 동일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보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상처와 실망만 주는 신앙생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고 싶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자기 백성을 통해 세상을 향해 은혜를 흘려보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답게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교회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연약함과 실수 때문에 하나님까지 조롱받는 일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더욱더 하나님의 백성은 삶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입술로만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사랑과 정직과 거룩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순종과 진실한 삶을 사용하셔서 믿지 않는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은 교만할 수 없으며,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