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월) 디모데후서 1:9-18 / 거룩하신 소명의 길에서 주신 동역자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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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6-08-24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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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할 이유를 말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행위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구원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은혜 가운데 자기 백성을 예정하셨고,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디모데도, 그리고 오늘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도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9).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로나 자격을 보시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죄로 죽어 있던 인생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1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또한 복음 안에서 썩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을 믿는 자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계 2:11).

바울은 바로 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자랑을 배설물처럼 여기며 오직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빌 3:8). 사람들은 감옥에 갇힌 바울을 실패자처럼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위한 고난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참여하는 영광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고 말합니다(11). 그는 유대인 가운데서도 뛰어난 학문과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헬라 문화와 언어에도 능통하였으며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행 22:3).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 세움을 받았다는 사실만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복음의 가치를 알았고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안다”고 고백합니다(12). 그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서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말합니다(12). 바울은 자신의 사명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맡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뜻을 이루기까지 자신의 삶을 붙드시고 지켜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위한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거룩한 소명으로 부르셨고, 정하신 뜻 안에서 반드시 사용하십니다. 때로는 고난과 핍박 가운데 놓이게 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기 백성을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앞의 상황보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뜻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향한 권면이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하는 것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고 권면합니다(13). 여기서 바른 말은 바울 개인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의 본을 따라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바울은 디모데 역시 그러한 복음의 길을 따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사람의 의지로만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고난이 계속되면 사람은 쉽게 낙심하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는 더욱 연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권면합니다(14). 성령께서 함께하실 때에만 복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지만 성령께서 붙드시면 능히 견딜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연약한 사람을 붙드시고 복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면서 겪었던 고난도 함께 말합니다. 그는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마다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시기하고 미워하였으며 총독들에게까지 고소하며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부겔로와 허모게네의 이름까지 언급하며 자신이 당한 고난이 실제였음을 말합니다(15). 복음의 길은 결코 편안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서도 바울을 혼자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네시보로와 같은 동역자를 붙여 주셨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지런히 찾아와 힘껏 돌보아 주었습니다(16-17). 당시 감옥에 갇힌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칫 함께 미움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바울 곁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고 말합니다(18). 이는 오네시보로의 섬김이 얼마나 진실하고 귀한 것이었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두려워하며 멀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바울의 사슬에 매인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지런히 찾아와 마음을 다해 섬겼습니다(16-17). 그는 바울이 외로움과 고난 가운데 있을 때 함께 울어 주고 위로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동역자를 통하여 복음의 길을 더욱 견고하게 세워 가십니다. 사

바울이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서 오네시보로와 같은 동역자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는 쉽게 지치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할 때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됩니다. 때로는 한 마디의 위로와 한 번의 기도가 낙심한 영혼을 다시 세우는 은혜의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홀로 싸우게 두지 않으시고 서로 붙들어 주며 함께 걸어가도록 교회와 동역자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네시보로와 같이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신실한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을 위해 수고하며 고난받는 주의 종들이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눈물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 곁에 오네시보로와 같은 동역자를 붙여 주십니다. 우리 역시 복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믿음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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