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수) 아모스 3:1-8 / 백성을 위해 부득불 말씀을 전하게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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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36회 작성일 26-09-09 04:10

본문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4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5 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

 6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8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을 향하여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하십니다(1). 여기에서 모든 족속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포함한 언약 백성 전체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 내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힘으로 자유를 얻거나 민족을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2).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의 존재나 형편을 알지 못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을 특별히 선택하시고 언약적 사랑을 베푸셨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애굽에서 건져 내셨으며, 광야에서 먹이시고 보호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선택은 자랑의 근거가 아니라 감사와 순종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권만 자랑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상을 섬기고 불의를 행해도 안전할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으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2).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심판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언약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책임도 따릅니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를 바른길로 이끌기 위하여 징계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를 드러내시고 돌이키게 하십니다. 선택받았다는 사실은 죄에 대한 면죄부가 아니라 거룩하게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죄를 가볍게 여기는 구실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면서도 회개와 순종은 미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은혜를 아는 사람은 죄 가운데 머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십자가의 값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거룩한 삶을 힘써 살아갑니다. 은혜는 방종의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아모스는 이어서 연속된 질문을 던집니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할 수 있으며,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느냐고 묻습니다(3-4).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며, 덫이 없는데 새가 땅에 치이겠느냐고 묻습니다(4-5). 덫에 잡힌 것이 없는데 그 덫이 땅에서 튀겠느냐는 질문도 이어집니다(5). 모든 결과에는 그에 앞선 원인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에도 분명한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고 공의를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의 심판 선포는 평화로운 시대에 갑자기 생겨난 개인적인 불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가득 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선포된 경고였습니다. 백성이 그의 메시지를 불편하게 여겨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모스는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으며, 여호와께서 행하지 않으셨는데 성읍에 재앙이 어찌 임하겠느냐고 묻습니다(6). 성읍에서 울리는 나팔은 적의 침입과 위험을 알리는 경고였습니다. 나팔 소리를 듣고도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행동한다면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모스의 예언은 이스라엘을 두려움에 빠뜨리기 위한 말이 아니라, 임박한 심판을 깨닫고 돌이키게 하는 영적인 나팔 소리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재앙을 행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죄와 같은 도덕적인 악을 행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시며 언약의 징계를 내리신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역사는 우연이나 인간의 권력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와 역사를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며, 악을 심판하시고 자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아무런 경고 없이 내리지 않으십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7). 여기에서 비밀은 사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행하시기로 정하신 뜻과 계획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시고, 백성에게 전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미리 말씀하신 것은 자기 백성을 멸망시키는 일을 기뻐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죄에서 돌이켜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경고의 말씀 속에는 심판의 엄중함과 함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죄의 결과를 당하게 하시는 것보다, 아픈 말씀을 통해서라도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2:12). 그러나 아모스는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고 선포합니다(8). 사자의 부르짖음을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는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아모스가 말씀을 전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말씀에 붙들렸기 때문입니다.

참된 말씀의 사역자는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말만 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약속뿐 아니라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도 충실히 전해야 합니다. 다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범위 안에서 바르게 전하며, 자신도 그 말씀 앞에서 먼저 회개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계시보다 더욱 분명하고 완전한 성경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며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죄를 깨닫게 하실 때 즉시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말씀 앞에서 자신을 깊이 살펴야 합니다. 평안한 때에도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심판의 경고 속에 담긴 긍휼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기에 부득불 말씀을 전했던 아모스처럼, 우리도 맡겨진 자리에서 복음의 진리를 담대히 증언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돌이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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