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5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8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내가 너희 중에 전염병 보내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13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열심을 칭찬하지 않으시고 책망하십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라고 말씀하십니다(4). 벧엘과 길갈은 이스라엘의 신앙 역사에서 의미가 깊은 장소였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돌기둥을 세웠던 곳이며, 길갈은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이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던 곳이었습니다(창 28:18-19; 수 5:7-10).
그러나 은혜의 기억이 담긴 장소가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하나님께서 정하지 않으신 제사장과 절기를 만들었습니다(왕상 12:28-33). 과거에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라고 해서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예배가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예배의 형식과 열심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예배라는 이름으로 더 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침마다 희생을 드리고 삼 일마다 십일조를 드려 보라고 말씀하십니다(4).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를 드리고 낙헌제를 큰 소리로 선포하라고도 하십니다(5).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를 기뻐하셔서 권하신 말씀이 아니라 종교적인 열심을 자랑하는 모습을 풍자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은제를 드릴 때 누룩 넣은 떡을 함께 드리는 것 자체는 율법에 규정된 일이었습니다(레 7:13). 그러므로 본문에서 누룩을 곧바로 외식의 상징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율법의 일부를 열심히 행하면서도 공의와 긍휼을 버리고,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사람들에게 자랑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고 말씀하십니다(5). 그들은 자신들이 즐기고 자랑할 수 있는 종교생활을 사랑했습니다.
우리도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하며 봉사한다는 사실로 자신의 믿음이 온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배당 안에서의 모습뿐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 살아가는 삶도 살피십니다.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웃을 미워하고, 예물을 드리면서 불의한 이익을 취한다면 예배와 삶이 분리된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돌이키도록 여러 차례 경고하셨습니다. 모든 성읍에서 이를 깨끗하게 하고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셨습니다(6). 이가 깨끗하다는 것은 음식을 먹지 못하여 이에 낀 것이 없을 만큼 심한 기근을 겪었다는 뜻입니다. 풍요를 자랑하던 이스라엘의 식탁에서 양식이 사라졌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깨우치고 계심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비를 멈추셨습니다. 어떤 성읍에는 비를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비를 내리지 않으셨으며, 어떤 밭에는 비가 내리고 다른 밭은 말라 버리게 하셨습니다(7). 두세 성읍의 주민이 물을 마시려고 한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갔지만 만족하게 마시지 못했습니다(8).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도록 하셨지만, 백성은 여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그들을 치셨고, 팥중이가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먹게 하셨습니다(9). 애굽에서 행하신 것과 같은 전염병을 보내고, 청년들이 전쟁에서 죽게 하셨으며 진영의 악취가 코를 찌르게 하셨습니다(10). 또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린 것처럼 이스라엘의 일부를 무너뜨리셔서, 그들이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처럼 되게 하셨습니다(11).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동일한 탄식이 반복됩니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는 말씀입니다(6, 8-11). 하나님께서 기근과 가뭄과 병충해와 전염병과 전쟁을 허락하신 목적은 백성이 죄를 깨닫고 돌아오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고통 자체가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징계를 통하여 완고한 마음을 깨뜨리고, 우상에게 향한 백성의 마음을 자신에게로 돌이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오늘 우리가 겪는 모든 재난과 질병과 경제적 어려움을 특정한 사람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의인에게도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이 찾아올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난을 함부로 정죄하지 말고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다만 고난을 통하여 삶의 연약함을 깨달을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며, 죄가 있다면 지체하지 말고 돌이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한 데만 있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경고에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오면 잠시 두려워했지만,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우상과 쾌락을 좇았습니다. 종교적인 제사는 계속 드렸으므로 자신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외적인 예배가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12). 그리고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고 명령하십니다(12). 이는 평안한 예배의 만남을 준비하라는 초청이 아니라, 언약을 배반한 백성이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하라는 두려운 경고입니다. 여러 차례 돌이킬 기회를 거절한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만나야 할 하나님은 산들을 지으시고 바람을 창조하시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시는 분이십니다. 새벽을 어둡게 하시고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시는 분이며, 그 이름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13). 사람의 마음과 생각까지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종교적인 가면으로 죄를 숨길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힘과 재물도 만군의 여호와 앞에 서는 사람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날 준비는 더 많은 종교적 행위를 쌓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공로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므로, 십자가에서 죄인을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배와 삶이 하나 되는 순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책망하실 때가 은혜의 때입니다. 양심에 가책을 주시고 돌이킬 마음을 주실 때 완고하게 버티지 말아야 합니다. 외식적인 열심으로 자신의 죄를 가리지 말고 마음을 찢으며 주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날이 반드시 다가오고 있음을 기억하며, 오늘 우리의 우상과 불순종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