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목) 아모스 7:1-9 /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케 되며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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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26-09-17 04:10

본문

 1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

 2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3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4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5 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6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7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8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9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을 세 가지 환상을 통하여 아모스에게 보여 주십니다. 메뚜기와 불과 다림줄의 환상은 이스라엘의 죄가 가득 찼으며 심판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자기 백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모스에게 심판의 계획을 보여 주신 데에는 그의 선포를 통하여 백성이 속히 돌이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담겨 있습니다.

아모스는 자신이 본 환상이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임을 밝힙니다. 그는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고 거듭 고백합니다(1, 4, 7). 참된 선지자는 자신이 원하는 말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충실히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은 사람들의 반응이나 시대의 유행에 따라 말씀을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첫 번째 환상은 메뚜기 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풀을 벤 뒤에 다시 풀이 움돋기 시작할 때 메뚜기 떼를 만드셨습니다(1). “왕이 풀을 벤 후”라는 말씀은 왕에게 바치는 첫 수확이 끝나고 백성들이 생계를 위하여 거둘 풀이 다시 자라기 시작한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때 메뚜기 떼가 땅의 풀을 모두 먹어 버린다면 백성의 양식과 가축의 먹이가 사라집니다. 풍요롭던 이스라엘이 순식간에 기근에 빠질 수 있는 치명적인 재앙이었습니다.

메뚜기 떼가 땅의 풀을 다 먹은 뒤에 아모스는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라고 간구합니다(2).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죄를 부정하거나 심판이 부당하다고 항변하지 않았습니다. 심판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의 간구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누구도 심판 앞에 설 수 없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의 간구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시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3). 하나님의 뜻 돌이키심은 잘못된 결정을 고치셨거나 영원한 작정이 변경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의 중보기도까지도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섭리의 방편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경고하시고 선지자로 기도하게 하시며, 그 기도를 들으셔서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성도의 기도는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불로 심판하는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불로 징벌하겠다고 명령하시자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했습니다(4). 모든 것을 삼키는 불은 이스라엘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철저한 심판을 나타냅니다. 아모스는 다시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라고 기도합니다(5). 그는 백성의 죄를 꾸짖었지만 그들의 멸망을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말씀을 맡은 종의 마음에는 죄를 향한 거룩한 분노와 죄인을 향한 애통함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기도에도 응답하시며 “이것도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6). 이스라엘이 재앙을 피한 것은 그들에게 의로움이나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누리던 평안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평안히 살아가는 것도 다른 사람보다 의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중보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함이 없을 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세 번째 환상에서 하나님께서는 다림줄을 잡고 쌓은 담 곁에 서 계셨습니다(7). 하나님께서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시자 아모스는 다림줄을 보았다고 대답합니다(8). 다림줄은 건물이 수직으로 곧게 세워졌는지를 측정하는 도구입니다. 담을 지탱하는 장치가 아니라 담이 바르게 세워졌는지, 무너질 상태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과 공의라는 다림줄로 이스라엘을 측량하셨습니다. 겉으로는 견고해 보였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재어 보니 그들의 신앙과 삶은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경제적 풍요와 군사적인 힘이 자신들의 삶을 견고하게 해 준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물질과 권세는 사람의 삶을 바르게 세우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이 성공이라고 평가해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났다면 그 삶은 기울어진 담과 같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경험과 감정도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신앙과 삶을 판단하는 변함없는 기준입니다. 말씀의 다림줄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8). 앞선 두 환상에서는 아모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재앙을 거두셨지만, 세 번째 환상에서는 더 이상 심판을 미루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는 끝이 있으며 회개의 기회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긍휼의 시간을 죄를 계속 지어도 된다는 허락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실 때 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고 말씀하십니다(9). 이삭의 산당은 언약의 조상 이삭의 이름을 내세우며 종교적 정당성을 주장하던 이스라엘의 산당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임을 자랑했지만 조상들의 믿음은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언약 백성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 언약의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산당과 성소는 파괴될 것입니다.

여로보암 이세의 집을 칼로 치시겠다는 말씀도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죽은 뒤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스가랴는 육 개월 동안 다스리다가 살룸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왕하 15:8-10). 이로써 예후의 자손이 사 대 동안 왕위에 있으리라는 말씀과 함께 여로보암의 왕조를 치시겠다는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왕하 10:30).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왕조와 성소와 풍요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들을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교회와 성도의 삶이 말씀의 다림줄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은지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외형적인 성장과 물질적인 풍요를 하나님의 인정으로 여기며 불의와 탐욕을 방치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자신의 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붙드시는 은혜를 의지하여 말씀 앞에서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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