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금) 갈라디아서 3:1-9 /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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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53회 작성일 25-09-05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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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우리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며, 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이나 종교적 행위에 마음을 두고, 신앙의 기준을 은혜가 아닌 율법과 형식에서 찾으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모습을 “어리석도다”라고 책망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한 믿음의 여정을 육체의 힘과 율법으로 마무리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안타까움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어리석도다”라고 말합니다(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구원의 사역을 완전히 이루신 사실이 이미 분명히 드러나 있었음에도, 그들은 거짓된 가르침을 가진 자들의 꾀임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 책망은 죄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영적 나태함에 대한 질타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단순히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악한 계략으로 성도들을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며, 타락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들의 접근 방식은 매우 교묘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들어나 보라”는 식으로 시작하여,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씀을 왜곡하여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이었습니다(롬10:14-17). 바울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갈라디아 성도들이 다시금 복음의 기초 위에 굳게 서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라고 질문합니다(2). 이는 그들의 신앙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상기시키는 물음입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분명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려는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3).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받은 자들이 여전히 세상의 방식과 율법적 행위에 의존하여 신앙을 완성하려 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모순입니다. 복음의 은혜로 시작했으면서 인간적인 노력과 종교적 형식으로 마무리하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동안의 신앙 여정을 돌아보게 합니다. “너희가 이같이 많은 것을 헛되이 체험하였느냐 과연 헛대냐”(4). 여기서 ‘많은 것’에는 복음을 위해 당한 고난과 시험, 믿음 안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들이 모두 포함됩니다. 만일 지금 그들이 율법의 행위로 돌아간다면, 그 모든 경험이 무가치해집니다. 이전에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은 사실을 잊고, 다시금 자기 행위를 의지하며 자랑하는 교만한 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라고 말하며 다시금 근본적인 구원의 원리를 확인합니다(5).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성령을 주신 것은 그들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고, 은혜로 유지되며, 은혜로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여 행하거나, 행위가 의롭게 되는 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려는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참된 의가 무엇으로 말미암는지를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는 말씀은(6),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이 종교적 행위나 율법의 준수 때문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고,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혈통적으로 유대인 가문에 속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을 동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자들, 즉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자들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이며, 하나님의 백성임을 선언합니다(7).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방인의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증거합니다(8). 이 말씀은 창세기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18:18, 22:18). 이는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복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불변하는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계획하시는 분입니다(롬3:21). 그분의 뜻은 사람의 불순종이나 반역으로 무너질 수 없습니다(사46:10).

바울은 결론적으로,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라고 단언합니다(9). 여기서 말하는 복은 단순한 물질적 번영이나 세상적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와 구원의 은혜를 포함한 영원한 복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누렸던 은혜와 동일한 복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이 특정 민족이나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믿음을 가진 모든 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임을 뜻합니다. 따라서 율법의 멍에에 다시 매이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복을 현재와 영원 속에서 누리게 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신앙생활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려는 유혹이 있습니다. 때로는 내 노력과 성취가 신앙의 본질인 것처럼 착각하며, 은혜보다 행위를 앞세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면, 성령으로 끝마쳐야 합니다. 은혜로 시작한 신앙을 율법과 육체의 힘으로 마무리하려는 것은 복음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과 힘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매일 외식된 자리에서 떠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부르심이며, 우리의 신앙이 붙잡아야 할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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