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님의 댓글
건축학개론 작성일묵상: 하나님과의 깊은 동행하심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고 어디서나 작은 지도자이지만 하나님이 찾으시는 느헤미야 같은 자 되겠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싫어함을 기억하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만을 붙잡기 내가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기억하기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다.
11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12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13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
14 앞으로 나아가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15 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돌아왔으나
16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
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곧바로 성벽 중건을 공포하거나 자신의 권한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기다렸습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감정과 의욕을 앞세우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깊이 묵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것을 곧장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머문 지 사흘이 지나도록 그는 자신이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받은 위임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귀를 타고 무너진 성벽을 돌아볼 뿐이었습니다(11-12).
이러한 느헤미야의 신중한 행보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안으로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대한 배려였고, 밖으로는 산발랏과 도비야와 같은 대적들의 불필요한 견제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동족들에게조차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다 지도자들 중에는 이미 대적들과 내통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계획이 대적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성벽 재건의 일이 방해받을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중건하는 일 자체보다 먼저 유다 지도자들과 마음을 함께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를 가지고 왔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일이 협력될 것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지도자들의 마음을 살피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흘 동안 형제 하나니로부터 들었던 예루살렘의 상황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언제, 어떻게, 누구를 통해 실행해야 할지를 기도하며 준비했습니다(13).
그는 골짜기 문을 나가 용정 곁을 지나 왕의 못에 이르기까지, 나귀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까지 나아가 성벽의 폐허를 확인했습니다(13-14). 그는 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며 성벽을 면밀히 살펴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방백들은 느헤미야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심지어 성벽 중건을 지지하던 이들에게조차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15-16). 하나님의 때가 이르기 전까지 그는 자신의 계획을 입술에 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자 느헤미야는 유다의 지도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먼저 백성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현실을 직시하도록 했습니다. 성벽 중건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무작정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절망적인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게 하고, 그 현실 앞에 서게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단지 형제 하나니로부터 전해들은 말에 근거해 설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을 근거로 백성을 독려했습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고 촉구하며(17), 자신이 왕의 허락을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이라고 증거했습니다(18).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은 단순히 건축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수치를 씻고, 무너진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유다 지역에 거주하던 사마리아인들과 여러 이방인들에게는 이 일이 매우 위협적으로 여겨졌습니다. 유다 백성의 부흥은 곧 그들의 쇠락을 의미했고, 자신들의 터전을 잃게 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이 하나님의 뜻이며, 왕이 허락한 합법적인 일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는 좌절에 빠진 백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고, 자기 권위나 능력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도우신 일임을 고백했습니다. 냉철한 현실 인식과 동시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는 사람에게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에게 함께할 동역자를 붙여 주십니다. 그래서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힘을 내었습니다(18).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대적들이 먼저 반발했습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느헤미야의 계획을 듣고 비웃고 업신여기며 말했습니다.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19). 이들은 느헤미야가 성벽 중건을 허락받은 조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을 배반하려 한다는 식으로 여론을 왜곡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실제 권한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을 퍼뜨려 백성들의 마음을 약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대적들은 유다 백성이 성벽을 재건하면 바사 왕의 노여움을 사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조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단호하게 응답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20). 그는 이 일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요, 왕의 허락을 받아 합법적으로 행하는 일임을 확신했습니다. 대적들의 위협과 왜곡된 여론은 그에게 두려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지도자는 철저히 기도하며 신중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조서라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밤에 홀로 성벽을 둘러보며 현실을 직시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둘째, 지도자는 냉철한 현실 인식과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함께 가져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단순히 “하나님의 뜻이니 따라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수치를 직시하게 하고, 그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증거했습니다. 사람을 설득하는 일은 감정이나 권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말씀을 함께 붙잡을 때 이루어집니다. 셋째, 대적의 방해는 언제나 따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확신하는 사람은 대적의 조롱 앞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대적들에게 담대히 선언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읍이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권리가 있고, 대적들에게는 기억될 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교회의 성벽을 세워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무너진 예배와 말씀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 거룩의 경계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이 일에는 반드시 대적의 방해가 따릅니다.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이 있을 것이고, 때로는 교회 안에서도 타협하려는 목소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의 눈치를 보며 두려움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그분의 선한 손을 의지하며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확신할 때, 대적의 조롱은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묵상: 하나님과의 깊은 동행하심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고 어디서나 작은 지도자이지만 하나님이 찾으시는 느헤미야 같은 자 되겠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싫어함을 기억하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만을 붙잡기 내가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기억하기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다.
소망하시는 것을 이루시도록 함께 동역하겠습니다. 늘 주 안에서 성실하게 믿음을 세워가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이옥희 권사입니다
♡ 깨달은 점
기도는 가장 좋은것으로 주시려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고 조급함을 내려 놓고 인내함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담대히 나아가야함을 깨닫습니다.
♡ 실천하기
기도의 응답이 더딜지라도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고 신뢰하며 묵묵히 성실하게 내 자리를 지키며 말씀이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벽마다 가장 먼저 오셔서 기도로 하루를 여는 분의 묵상답습니다. 기도는 내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맞추는 과정이기에 우리에게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