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님의 댓글
온누리 작성일
샬롬~! 정수진입니다.
☆깨달은점☆
입술의 고백이 아닌 진정한 믿음의 삶을 통하여 증명하는 순종과 헌신으로 나아가야 함을 깨닫습니다.
☆실천하기☆
맡은 사역에 진실로 행하며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에 힘이 되는 동역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의 자녀되기를 소망하며 나아가겠습니다.
5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시므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 거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6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와 각기 자기들의 성읍에 이른 자들 곧
7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사랴와 라아먀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왜와 느훔과 바아나와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
8 바로스 자손이 이천백칠십이 명이요
9 스바댜 자손이 삼백칠십이 명이요
10 아라 자손이 육백오십이 명이요
11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팔백십팔 명이요
12 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13 삿두 자손이 팔백사십오 명이요
14 삭개 자손이 칠백육십 명이요
15 빈누이 자손이 육백사십팔 명이요
16 브배 자손이 육백이십팔 명이요
17 아스갓 자손이 이천삼백이십이 명이요
18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칠 명이요
19 비그왜 자손이 이천육십칠 명이요
20 아딘 자손이 육백오십오 명이요
21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팔 명이요
22 하숨 자손이 삼백이십팔 명이요
23 베새 자손이 삼백이십사 명이요
24 하립 자손이 백십이 명이요
25 기브온 사람이 구십오 명이요
26 베들레헴과 느도바 사람이 백팔십팔 명이요
27 아나돗 사람이 백이십팔 명이요
28 벧아스마웻 사람이 사십이 명이요
29 기럇여아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사람이 칠백사십삼 명이요
30 라마와 게바 사람이 육백이십일 명이요
31 믹마스 사람이 백이십이 명이요
32 벧엘과 아이 사람이 백이십삼 명이요
33 기타 느보 사람이 오십이 명이요
34 기타 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35 하림 자손이 삼백이십 명이요
36 여리고 자손이 삼백사십오 명이요
37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이 칠백이십일 명이요
38 스나아 자손이 삼천구백삼십 명이었느니라
39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이요
40 임멜 자손이 천오십이 명이요
41 바스훌 자손이 천이백사십칠 명이요
42 하림 자손이 천십칠 명이었느니라
43 레위 사람들은 호드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사 명이요
44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백사십팔 명이요
45 문지기들은 살룸 자손과 아델 자손과 달문 자손과 악굽 자손과 하디다 자손과 소배 자손이 모두 백삼십팔 명이었느니라
46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47 게로스 자손과 시아 자손과 바돈 자손과
48 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살매 자손과
49 하난 자손과 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50 르아야 자손과 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51 갓삼 자손과 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52 베새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비스심 자손과
53 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
54 바슬릿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
55 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
56 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느니라
57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소베렛 자손과 브리다 자손과
58 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59 스바댜 자손과 핫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몬 자손이니
60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삼백구십이 명이었느니라
61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로부터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종족이나 계보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62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가 육백사십이 명이요
63 제사장 중에는 호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불린 자라
64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찾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65 총독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66 온 회중의 합계는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67 그 외에 노비가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그들에게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사십오 명이 있었고
68 말이 칠백삼십육 마리요 노새가 이백사십오 마리요
69 낙타가 사백삼십오 마리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 마리였느니라
70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총독은 금 천 드라크마와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
71 또 어떤 족장들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
72 그 나머지 백성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칠 벌을 드렸느니라
73 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유다의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했습니다(5). 여기서 귀족과 민장과 백성은 곧 유다 공동체의 모든 계층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을 함께 모아 대회를 열고 계보를 따라 등록하도록 한 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 생활과 수차례 전쟁을 거치며 혈통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심지어 제사장들조차도 계보에서 자기 이름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을 정도로 공동체의 뿌리가 흔들려 있었습니다(64). 그러므로 느헤미야의 조치는 잃어버린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고, 신앙 공동체를 새롭게 세우려는 하나님의 뜻을 반영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계보를 얻어 그 명단을 확인하고, 이를 근거로 각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5-6). 우리는 같은 ‘인구조사’라 하더라도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음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사탄의 미혹을 받아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고자 인구조사를 명령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대상 21:1). 그러나 느헤미야의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인도와 감동을 따라 이스라엘의 신앙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같은 일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진노를 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인구조사를 통해 확인하려 했던 것은 단순히 사람의 수가 아니었습니다. 이방인과 혼인하며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자들을 분별하고, 이방 땅에 거하며 자신의 안전을 추구한 자들과 달리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 회복을 위해 헌신한 자들을 가려내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일꾼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분별하고자 했습니다. 동시에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흩어져 사는 자들을 설득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인구조사는 자신을 드러내려는 도구가 아니었으며, 성벽 재건이라는 치적을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공동체를 지키고 신앙을 이어가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귀환자들의 명단은 스룹바벨과 예수아, 느헤미야, 아사랴, 라아먀, 나하마니, 모르드개 등 지도자들로 시작하여 열여덟 가족과 스무 개의 마을 출신들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제사장들과 노래하는 자들, 성전을 지키는 자들 삼백육십 명의 레위인의 명단도 포함되었습니다(39-44). 심지어 성전에서 일하던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 삼백구십이 명도 포함되었습니다(60). 이 명단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다시 일으키고, 신앙의 공동체를 새롭게 세우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한편, 계보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해 이스라엘 족속에 속하였음을 증명할 수 없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 수가 무려 육백사십이 명에 달했습니다(61-6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수는 총 삼만천팔십구 명이었고, 그들과 함께 거주한 자들의 수는 사만구천구백사십이 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사에서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루살렘을 선택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안정과 평안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을 선택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 믿음이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뜻이 있을 때 지금의 안락과 평안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결단에서 드러납니다. 믿음을 선택하는 자만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입으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인생은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십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갈망하고 주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특별히 제사장이었지만 계보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한 자들은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게 했습니다(64). 만약 신분이 불분명한 자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맡을 경우, 공동체 전체가 부정해지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총독은 이들에게 우림과 둠빔을 가진 제사장이 다시 세워지기 전까지는 지성물을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65).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본이 되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새로 와서 자신이 과거에 목사, 장로, 권사였다고 하더라도, 그의 신앙의 경력과 영적 상태가 확인되지 않는 한 직무를 맡겨서는 안 됩니다. 확인 없이 직분을 맡겼다가 공동체 전체가 상처와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신앙의 순수성과 공동체의 거룩을 지켜야 합니다.
성벽 재건에는 많은 재정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족장들은 자발적으로 금과 은을 드렸고, 또 어떤 족장들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습니다(71-72). 유다의 총독 역시 금 천 드라크마와 제사장들의 의복을 기꺼이 드렸습니다(70). 백성들도 각자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실 때, 총독에서부터 평범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발적으로 헌신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헌금과 헌신이 성벽 재건이라는 위대한 역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믿음은 자신의 호주머니에서부터 드러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교회가 성도들의 재물을 끌어내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돈이 하나님의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일에 나의 재물이 사용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삶 전체와 물질을 드리는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입술로만 믿음을 말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 믿음으로 응답하며, 기꺼이 자기의 안락을 내려놓고, 심지어 물질까지도 아낌없이 드리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믿는다” 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주를 갈망하고, 자신을 내어드리며, 물질과 삶으로 헌신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예루살렘의 성벽이 재건되었듯이, 오늘날 교회와 신앙 공동체도 무너진 곳이 다시 세워져야 합니다. 그 일은 입술로만 믿음을 말하는 자들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을 선택하고 헌신을 결단하는 자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자들을 통해 오늘도 당신의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샬롬~! 정수진입니다.
☆깨달은점☆
입술의 고백이 아닌 진정한 믿음의 삶을 통하여 증명하는 순종과 헌신으로 나아가야 함을 깨닫습니다.
☆실천하기☆
맡은 사역에 진실로 행하며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에 힘이 되는 동역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의 자녀되기를 소망하며 나아가겠습니다.
믿음의 본질적인 깨달음입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괴로운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감사와 기쁨이 있는 길입니다.
묵상: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모든 사람들이 귀환하지는 않았습니다.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왜 돌아오지 않았울지 묵상해 봅시다. 하나님은 포로의 삶을 사는 백성들에게도 복을 주셨습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들을 적어보고 감사의 고백을 함께 합니다. 주님을 온전히 예배하고 황폐한 삶 가운데에서 도 삶의 예배를 올바로 세워 갈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바벨론에 남은 자들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루살렘으로 귀한한 자들의 차이가 뭘까요?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 자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아닌, 미래세대를 위해 기꺼이 길이 되고자 한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런 믿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