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수) 느헤미야 8:1-8 / 율법을 듣고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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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4건 조회 51회 작성일 25-10-15 05:35

본문

 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4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성전과 성벽이 재건된 후, 백성은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학사 에스라에게 가져오기를 청하였습니다(1). 성전과 성벽이 완성되었다고 곧바로 공동체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건물의 회복이 아니라 말씀의 회복에서 완성됩니다. 백성은 일곱째 달 초하루, 곧 나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모였고, 그 중심에 말씀을 두었습니다.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3차 귀환을 이끌어 성전 건축을 독려했었고, 타락한 믿음을 슬퍼하며 회개를 촉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손에 다시 율법책이 들려 펼쳐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백성을 다스리시고 새롭게 하심을 의미합니다.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백성은 이제 말씀으로 돌아가 묻고 또 듣고자 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을 낭독하였고, 남녀를 막론하고 알아들을 만한 모든 자가 귀를 기울였습니다(3). 

에스라는 수문 앞 광장에 특별히 마련된 나무 강단에 섰습니다. 그의 오른편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가, 왼편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 섰습니다. 이는 말씀 아래 한마음으로 서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강단은 높이 세워졌으나 그 위에 선 사람이 높임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높으신 하나님을 선포하려 함이었습니다. 에스라가 모든 백성 앞에서 책을 펴자 무리가 일어나 경외심을 표하였고, 그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자 백성은 손을 들고 “아멘 아멘”으로 응답하며,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경배하였습니다. 그들의 “아멘”은 단지 감탄사가 아니라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믿음의 서약이었습니다. 다윗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응답의 전통은 말씀 앞에서 백성이 하나로 연합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거룩한 언약의 고백이었습니다(4), (5), (6), (대상16:36).

백성이 감격하여 응답하는 사이, 레위 사람들 예수아, 바니, 세레뱌, 야민, 악굽, 사브대, 호디야, 마아세야, 그리다, 아사랴, 요사밧, 하난, 블라야가 백성 가운데 흩어져 서 있는 자리에서 율법을 해설하여 깨닫게 하였습니다. 말씀은 단지 낭독으로 끝나지 않았고, 들리기만 하는 소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낭독된 말씀은 해석을 통하여 의미가 밝혀졌고, 의미가 밝아짐으로써 백성의 마음에 빛이 비추었습니다. 귀가 듣고, 머리가 이해하며, 심령이 동의하고, 의지가 순종으로 움직이는 과정이 한 현장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낭독과 해석의 질서를 통해 백성이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예배는 본문을 열어 낭독하고, 의미를 풀어 해석하며, 마음에 새기도록 적용하는 전 인격의 예배여야 합니다. 이 날 백성은 말씀의 권위 앞에 서서, 해석의 도움을 받아, 순종의 결단으로 나아갔습니다(7), (8).

이러한 모습은 믿음의 회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모으십니다. 이는 백성이 자발적으로 모였다고 기록되었으나,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말씀을 펴십니다. 말씀은 백성의 눈앞에 ‘펼쳐진’ 하나님의 의지이며, 공동체는 그 말씀 아래 서서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깨닫게 하십니다. 낭독과 해석의 질서를 세우시어, 백성으로 하여금 깨달음과 순종에 이르게 하십니다. 회복은 건축의 완성에서 끝나지 않고, 말씀의 청종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첫 징조는 말씀이 닫히는 것이며, 공동체가 일어나는 첫 표지는 말씀이 열리는 것입니다(1), (3), (7), (8).

우리는 여기서 예배의 거룩성을 배워야 합니다. 첫째, 시간의 거룩입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이어진 낭독은 예배가 편의가 아니라 헌신임을 가르칩니다. 시간의 일부가 아니라 황금 같은 시간대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먼저’로 세웁니다. 둘째, 자세의 거룩입니다. 일어서고, 손을 들고, 엎드리는 몸의 언어가 영혼의 진심을 동반합니다. 하나님은 형식 없는 열정을 원치 않으시고, 열정 없는 형식도 원치 않으십니다. 셋째, 질서의 거룩입니다. 학사 에스라가 낭독하고, 레위인들이 해석하며, 백성이 응답하는 질서는 권위와 섬김의 균형을 세웁니다. 권위는 위에서 누르는 힘이 아니라 말씀 아래서 섬기는 질서입니다(3), (4), (5), (6), (7), (8).

또한 본문은 말씀 사역의 공동체성을 드러냅니다. 말씀은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에스라의 낭독과 레위인의 해석, 백성의 응답이 하나되어 하나의 예배를 이룹니다. 교회는 강단과 회중, 설교와 교육, 낭독과 해석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건강하게 서게 됩니다. 어떤 시대에는 낭독 없는 해석이, 또 어떤 시대에는 해석 없는 낭독이 문제였습니다. 낭독 없는 해석은 말씀의 권위를 잃게 만들고, 해석 없는 낭독은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펴시고’ 그 뜻을 ‘밝히시며’ 백성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본문을 정확히 열고, 교사는 의미를 바르게 풀며, 회중은 믿음으로 “아멘”으로 화답해야 합니다(4), (5), (7), (8).

바벨론에서의 세월은 언어를 변질시키고 풍속을 흐리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의 상처를 말씀으로 다시 꿰매십니다. 들을 귀를 주시고, 깨달을 마음을 주시고, 행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또한 예배 때마다 ‘오늘 저희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들었고, 일어섰고, 엎드렸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구한다면, 하나님은 성령으로 귀를 열고 마음을 밝히실 것입니다(3), (5), (6), (7), (8).

수문 앞 광장은 모든 세대가 함께 서는 자리였습니다. 가정에도 광장이 있어야 합니다. 즉, 말씀을 펼치는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에서 말씀이 전해지는 강단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말씀이 정확히 펼쳐지고, 해석하되 성경으로 해석하며, 적용하되 복음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의 응답이 늘 새로워야 합니다. “아멘”은 단지 습관이 아니라 순종의 서약입니다. 손을 들고, 마음을 열고, 무릎을 꿇는 참된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4), (5), (6), (7).

마지막으로, 회복은 항상 말씀에 근거한 ‘깨달음’으로 완성됩니다. 깨달음 없는 열심은 쉽게 왜곡되고, 깨달음 없는 감정은 금세 식어 버립니다. 반대로 깨달음이 있을 때 감정은 거룩한 애통과 기쁨으로 변화되고, 의지는 견고한 순종으로 굳어집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이스라엘은 율법을 듣고 그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는 뒤이어 나오는 회개와 절기의 회복, 기쁨의 축제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시작하신 일을 말씀으로 마치십니다. 우리는 건물을 세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항상 말씀의 빛 아래 자신과 공동체를 다시 세워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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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깨달은점---)
나의 삶의 모든 것들...기쁨과  평안과 고난까지 모든것들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나를 지으시고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로부터입니다. 내가 묵상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고 마무리 됩니다. 매일 새롭게 하실 것도 오직 말씀뿐입니다.

실천하기---)
지금의 내가 왜 이 자리에. 이 곳에서. 이 일들을 하고 있는것인지 하나님의 자녀로써. 매순간 존재의 의미를 묵상하겠습니다.
나를 사용해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위해 성실히 살아내겠습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나의 존재성에 대해서 묵상하는 것은 믿음의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지식이 늘어가면서도 삶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성에 대해서 묵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건축학개론님의 댓글

건축학개론 작성일

묵상: 느헤미야는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말씀을 주심으로 이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살아가는 능력 있는 주님의 자녀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기뻐함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는 주님의 백성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향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쁨은 억지로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참 기쁨의 길로 인도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길이 아니라, 늘 내 만족의 길을 택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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