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목) 느헤미야 8:9-18 / 전례 없는 감사로 초막절로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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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31회 작성일 25-10-16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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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13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14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15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16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17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18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학사이며 제사장인 에스라가 읽은 율법을 듣고, 다시 레위인들에게서 율법의 뜻을 배우고 깨달은 백성은 하나같이 울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거울 앞에서 자신들의 실상을 본 애통의 눈물이었고, 심판 받아 마땅한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총독 느헤미야와 학사 에스라와 백성에게 가르치던 레위 사람들은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권면하며 그들의 울음을 만류했습니다. 회개의 눈물은 은혜의 자리로 인도되어야 하며, 은혜의 자리는 기쁨의 찬송으로 열매 맺어야 하기 때문입니다(9). 느헤미야는 이어 백성에게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명했습니다(10).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앞에서 백성은 나눔으로 감사의 본질을 드러내야 했고, 그 기쁨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의 힘으로 드러나야 했습니다(10). 레위 사람들도 같은 말로 백성을 권하여, 울음의 여운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의 성일을 즐거움으로 지키라고 반복하여 일깨웠습니다. 회개의 통곡이 예배의 기쁨으로 이어질 때에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산 제사가 됩니다(11).

이 날은 일곱째 달 초하루의 초막절이었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장막에 거하며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을 경험한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래서 장막절이라 불리기도 하고(요 7:2), 수장절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출 23:16). 유월절과 오순절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삼대 절기인 초막절은,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며 공동체가 함께 즐거워하는 감사의 날이었습니다. 긴 포로기의 세월 동안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초막절을 이제 예루살렘에서, 낭독된 율법을 듣고 깨달은 마음으로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 그들의 눈물은 동시에 감격의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결핍을 한탄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의 뜻 앞에 바르게 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기쁨으로 먹고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나님의 기쁨이 공동체의 힘이 되게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구원의 감격은 언제나 나눔으로 증언되며, 나눔 없는 감사는 아직 감사가 아닙니다(10).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백성의 힘이 되는 것은, 그 기쁨이 현실의 형편이 아닌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근거로 하기 때문입니다. 광야 사십 년을 먹이시고 지키신 그 하나님이 수많은 전쟁과 포로의 굴욕 중에도 이스라엘을 보존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오늘 우리에게도 초막절의 기쁨으로 다시 서게 하신 것입니다. 레위 사람들은 백성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같은 권면을 거듭 전했고, 백성은 그 말씀을 따라 먹고 마시며 나누고 크게 즐거워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백성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었고, 그 깨달음이 곧 감사와 순종의 자리로 백성을 이끌었다는 사실입니다. 깨달음 없는 감정은 고갈되나, 깨달음 위의 기쁨은 순종이 됩니다(11), (12).

이튿날,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더 깊이 율법의 말씀을 배우고자 학사 에스라에게 다시 모였습니다. 리더십의 영성은 “이미 안다”는 자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서서 “더 배우겠다”는 갈망에서 자랍니다. 전날의 예배가 공동체의 심장을 뛰게 했다면, 이 날의 지도자 모임은 공동체의 두뇌를 맑게 했습니다. 지도자들이 먼저 듣고, 먼저 배우고, 먼저 순종하는 본을 보일 때 교회는 질서 있게 세워집니다. 그들은 율법의 책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신 바를 발견했습니다. 말씀은 낯익은 본문 안에서도 언제나 새롭게 발견되며, 발견은 곧 순종을 부릅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초막절 규례였습니다. 그래서 감람나무와 들감람나무, 화석류와 종려나무와 기타 무성한 가지를 가져다가 지붕 위와 뜰 안과 하나님의 전 뜰과 수문 광장과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지어 거했습니다. 이것은 광야 은혜를 오늘의 삶 한가운데 재연하려는 신앙의 순종이었습니다(13), (15), (16).

이 초막절의 순종은 ‘전례 없는 기쁨’의 폭발로 이어졌습니다. 성경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고 기록합니다(17). 초막절은 매해 지켜졌을 수 있으나, 이렇게 지킨 적은 없었습니다. ‘이같이’라는 의미는 말씀을 듣고, 깨닫고, 즉시 순종하여,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전 삶의 공간에서, 나눔과 찬송으로 절기를 지킨 것을 가리킵니다. 전례 없는 기쁨은 전례 없는 순종에서 나옵니다. 형식은 그릇이고 은혜는 내용입니다. 그릇을 바로 세우되 내용으로 가득 채울 때, 예배는 기쁨이 되고 기쁨은 힘이 됩니다(17).

그리고 초막절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했습니다. 절기의 기쁨은 말씀의 공급으로 유지되었습니다. 기쁨이 말씀을 낳은 것이 아니라, 말씀이 기쁨을 낳았습니다. 그들은 이레 동안 절기를 지켰고 여덟째 날에는 규례대로 성회를 가졌습니다. 말씀에서 순종으로, 더 깊은 말씀에서 더 온전한 순종과 더 큰 기쁨의 선순환이 공동체 안에서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회복은 한 번의 감격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날마다 펴지는 말씀, 날마다 새로워지는 순종, 날마다 풍성해지는 기쁨으로 이어집니다(18).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예배와 삶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줍니다. 첫째, 회개의 눈물은 예배의 기쁨으로 인도되어야 합니다. 죄를 슬퍼함은 필요한 출발이지만, 그 슬픔이 은혜의 확신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믿음의 성장은 멈추게 됩니다. 둘째, 감사는 반드시 나눔으로 증언되어야 합니다.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는 명령은 초막절 규례의 일부이자 복음의 생리입니다. 우리가 받은 위로가 이웃의 상처를 씻길 때,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은 공동체의 힘이 됩니다. 셋째, 리더의 자리에는 늘 ‘다음 날’의 배우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열광의 여운에 머물지 않고, 다음 날 아침 말씀 앞으로 모이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발견이 공동체를 움직입니다. 넷째, 전례 없는 기쁨은 전례 없는 순종에서 나옵니다. 예배의 자리를 넘어 지붕과 뜰과 광장으로 퍼져 나가는 순종, 일상의 공간을 초막으로 바꾸는 순종이 새로운 기쁨을 엽니다(10), (12), (13), (15), (16), (17), (18).

마지막으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함”은 신앙 감정의 최종형이 아니라 신앙 의지의 동력입니다. 현실의 결핍과 상처는 우리의 기쁨을 빼앗을 수 있어도, 하나님 자신은 우리의 기쁨을 끝내 빼앗기지 않게 하십니다. 그 기쁨은 고난을 가볍게 만들지 않지만, 견딜 힘을 줍니다. 초막은 임시 거처이지만, 그 초막에서 누리는 기쁨은 영원하신 하나님께 닻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시 말씀을 펴고, 깨닫고, 순종하여, 나누고, 기뻐함으로, 전례 없는 감사의 초막절을 지금 여기서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함이 우리의 힘입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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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님의 댓글

건축학개론 작성일

묵상: 우리의 심령은 무엇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공동체는 무엇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습니까? 느헤미야 시대의 백성들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뜨거운 갈증을 회복하고 그 말씀이 주는 깨달음과 눈물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참된 기쁨과 힘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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