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해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 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고 고백합니다(15-16). 이 고백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감사의 표현입니다. 바울은 앞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는 뜻 안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선포하였습니다(11-12). 그러한 하나님의 뜻이 실제로 에베소 교회 공동체 가운데서 열매 맺고 있다는 소식은,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와 기쁨이 되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삶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위에 서서 서로를 향해 사랑으로 행하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바울이 자신의 고난을 잊게 할 만큼 큰 감사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교회 공동체를 세워 가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입니다. 믿음은 교회의 기초이며, 사랑은 그 기초 위에 세워지는 공동체의 실제적인 모습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 안에서 한 몸을 이루며 교회를 세워 가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16). 이는 우상 숭배가 만연하고, 거짓 사도들과 니골라당과 같은 이 단들의 위협이 끊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성도들이 흔들리지 않고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으로 공동체를 지켜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바울의 감사는 성도들의 신실함 자체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러한 공 동체를 은혜로 붙드시고 끝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인간의 결단에서 시작된 결과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예수님의 완전한 믿음과, 양된 백성을 끝까지 품으신 사랑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구 원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워 가는 과정에서 환경과 조건을 탓하기보다. 우리 안에 예수를 향한 믿음과 서로를 향한 사랑이 실제로 살아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상처가 방치된 나무는 결국 썩어 버리지만,차유된 나무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푸른 잎과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처럼, 공동체도 믿음과 사랑 안에서 치유될 때 건강하게 자라가게 됩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이러한 위협 속에서도 하나 되어 교회를 세워 갈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감당할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힘과 능력을 '지혜와 계시의 영'이라고 말하며, 이는 곧 성령을 가리킵니다(17). 죄로 어두워진 세상 속에서는 진리가 비진리처럼 보이고, 비진리가 진리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인간의 분별력과 경험만으로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바른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걸어가야 할 길을 밝히 보이시며, 참된 진리를 분별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성도의 마음 가운데 내주하시며 역 사하셨기에, 그들은 수많은 미혹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17).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4:26. 바울이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라고 간구한 것은(17-18), 이미 성도들 안에 내주하신 성령께서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것처럼, 앞으로도 변함없이 함께하시며 그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을 계획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구속을 십자가에서 이루셨으며, 성령께서는 이제 그 구속의 은혜가 성도의 삶 속에서 실제로 열매 맺도록 적용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깊고도 오묘한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도록 마음의 눈을 밝히시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망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알게 하시며, 주신 기업의 가치를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18).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을 거슬러 행하는 삶을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 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마 12:31-32), 성령께서 주시는 깨우침과 인도하심을 무시한 채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마음에 주시는 감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성령께서 지금까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하나님께 받은 소망과 기업의 영광, 그리고 믿는 자에게 베푸신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하신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역사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18-19). 교회는 다양한 성품과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한다는 것은, 획일화된 모습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유기적인 공동체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은 인간의 노력이나 인격 수양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섭섭함과 시기, 투기와 분열은 죄성을 지닌 모든 사람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은, 사도 바울처럼 동역자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께 받은 소망과 기업의 풍성함을 깨닫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교회의 참된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힙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위대한 구속 사역을 마치신 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20). 이는 모든 권세와 통치와 능력과 주권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발 아래 모든 만물을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21-22). 또한 교회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23).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누구도 통치자의 자리에 설 수 없으며,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다스림 아래 있는 종입니다. 내가 예수님 보다 앞서려 하고, 내 생각과 고집을 내세워 공 동체를 움직이려 할 때,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함을 경험하기보다 오히려 심 령이 메말라 가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해 나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동역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충만함을 함께 누리도록 기도하는 것이, 바울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공동체를 향한 참된 목회의 모습입니다. 오늘도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겸손히 인정하며, 믿음과 사랑 안에서 서로를 살리고 세워 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