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월) 에베소서 2:11-22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한 공동체로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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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5건 조회 82회 작성일 26-01-12 05:49

본문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사람인지를 잊은 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지금의 믿음과 공동체 안에서의 자리, 그리고 익숙해진 교회 생활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수록, 한때 하나님 없이 소망 없이 살아가던 삶의 자리는 흐릿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삶의 자리에서 갈등과 비교, 거리감과 상처가 생겨날 때마다, 그것은 왜 우리가 다시 기억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내가 만들어 낸 자격이나 조건으로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 은혜로 불러 주셔서 함께 세워진 존재임을 잊지 않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11). 이는 구원의 본질을 깊이 새기며 자기 자신을 말씀 앞에 세우라는 요청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아는 사람만이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생각하라”는 표현은 한 번 떠올리고 지나치는 기억이 아니라, 되새김질하듯 마음속에서 반복하여 곱씹는 태도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앞선 말씀에서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은 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존재임을 분명히 하였고, 그 은혜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세움을 받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생각하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나의 자리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은 이후의 삶의 자리를 분명히 대비해 보라는 요구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시선에서가 아니라, 당시 유대인의 관점에서 이방인들이 어떤 존재로 간주되었는지를 염두에 둔 말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을 부정한 자로 여기며, 자신들만을 율법 안에서 선민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에베소 교회가 공동체를 세워 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뿌리 깊은 율법적 관습과 싸워야 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육체적으로도, 전통과 혈통의 면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철저한 이방인이었습니다. 혈통적으로 하나님의 선민의식을 가진 유대인들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향해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말합니다(12). 이 표현은 이방인의 비참한 영적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그들은 소망도, 기댈 언약도 없이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아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말하면서도, 이방인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폐하여졌다는 의미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말하며, 혈통이 아니라 약속과 믿음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을 결정함을 증언합니다(롬 9:6-8).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불리는 것은 육체의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에게 주어지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아온 자마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아무런 소망도 없던 삶에서, 영원한 기업을 약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전환은 출신이나 혈통, 혹은 할례와 같은 외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변화입니다(13). 할례에 대한 문제는 초대교회 전체를 흔든 중요한 논쟁이었으며, 예루살렘 회의에서도 격렬하게 다루어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모세의 법을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행 15:1).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성령을 주셨으며,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셔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으셨음을 선포하였습니다(행 15:7-9). 사도 바울 또한 아브라함의 의가 할례 이전에 믿음으로 인정받았음을 상기시키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기준이 육체의 표식이 아니라 믿음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롬 4:9).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인한 은혜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단순한 순교의 피가 아니라, 죄인을 대신한 대속의 피이며, 원수 되었던 자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희생의 증표입니다(롬 5:10).

이 피로 말미암아 소망 없는 하나님 없는 삶은, 하나님 안에서 평안과 화평을 누리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율법과 전통, 민족과 문화가 만들어 놓았던 모든 경계의 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허물어졌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증언합니다(14). 이 화평이 감정적인 평온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깨어졌던 관계가 회복되는 근원적인 화해를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며,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16). 우리 가운데 자랑할 만한 조건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존재이기에, 교회 안에서는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으며, 한 몸처럼 서로 돕고 함께 아파하는 관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참된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17). 멀리 있던 자나 가까이 있던 자나,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셔서 같은 은혜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성령 안에서 가능하며, 한 성령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얻게 되었습니다(18).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는 출신과 배경, 혈통과 전통을 앞세워 어떤 사람도 차별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하늘 시민이며, 하나님의 권속으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입니다(19). 교회의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한 말씀 위에 세워져 있으며, 그 모퉁잇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20). 육체를 자랑하는 일은 결국 차별을 낳고, 차별은 상처와 분열을 낳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육체로 자랑할 만한 조건이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이었음을 말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앞에서는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빌 3:4-9). 이는 그리스도의 은혜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뿐임을 밝히는 증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하나로 이어 주는 힘이며, 그 믿음 안에서 교회는 더욱 견고하고 아름답게 세워져 갑니다(21-22). 나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세워 가려는 욕망은 언제나 분열을 낳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둘 때 공동체는 화목과 생명으로 자라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은혜를 공동체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려는 끊임없는 결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교회만이 세상 가운데 화목과 평안을 증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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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건축학개론님의 댓글

건축학개론 작성일

묵상: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하여 사도들과 선지자의 터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집입니다.벽돌처럼 각각의 삶이 성령 안에서 연결되어 하나의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담을 쌓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와 함께 지어져 가는 거룩한 성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에 공동체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다는 것은 사람 선지자나 사도들을 지칭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파송하신 그리스도, 그리고 그들을 통해 전하게 하신 말씀 위에 그 터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 터 위에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져 갑니다. 우리 모두가 입으로 만의 신앙이 아닌 삶을 살아내는 신앙으로 거듭나기를 끊임없이 힘써야 할 이유입니다.

79bc075c님의 댓글

79bc075c 작성일

김봉연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우리 다음세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시는 귀한 한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 밖에 있던 나를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다' 는 말씀이 내마음이 콕 박히며 눈물이 납니다.
부족하지만 부르심의 뜻에 합당한 자로 서 가기를 원합니다.

내게 맡겨진 사역에 충실하여 교회의 공동체를 함께  세워가는 동역자가 되기를 노력하겠습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늘 다음세대들의 묵상교사로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실함은 가장 큰 가르침입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마지막때까지 전제와 같이 부어지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며 달려오신 삶을 축복합니다.

79bc075c님의 댓글

79bc075c 작성일

감사합니다.
늘 힘과 용기를 주셔서 나이를 잊은채 얄심히 살 이유를 갖게 하심에 더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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