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교회님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귀한 믿음의 동역자로, 사역의 동역자로 함께 세워져 갈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늘 어떻게 복음을 마음을 다해 전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전도사님의 사역과 메시지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기를 축복합니다.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 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 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 나님이 중언하시느니라
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 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 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 이라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라고 말하며 자신의 사역을 돌아 봅니다(1). 바울과 동역자들은 빌립보에서 모진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수모를 겪은 직후에 데살로니가로 들어왔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발걸음은 위축되지 않았고 복음을 전하는 입술은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길이지만,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 앞에서 "우리의 수고는 헛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전한 복음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내렸고, 그들 안에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라는 결실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1:3). 고난과 능욕 속에서도 복음을 전한 자들의 수고를 하나님께서 헛되게 두지 않으셨음을, 바울은 그들의 삶을 통해 확인한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준 후. 그 여종을 통해 이익을 얻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잃게 되자 바울과 실라를 고발하여 매질하게 하고 옥에 가두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행16:19-24). 사람의 눈에는 억울한 고난처럼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옥중에서 찬송하고 기도하던 그 밤에. 하나님께서는 옥문을 여시고 간수와 그 집안을 구원으로 이끄셨 습니다(행16:25-34). 바울과 실라는 이 일을 통해. 복음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고난조차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생명의 역사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에 들어갔 을 때에도 이전의 상처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침묵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2). 용기와 담대함은 자신들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하는 자들의 연약함을 아시고,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영적인 담대함을 주셔서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복음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받았으니"라고 말합니다(4). 복음을 위탁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길 만하다고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사람이 완전하고 홈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연단하시고 다듬으셔서 복음을 맡겨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 가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맡은 자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지 않고,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해야 합니다(4). 사람의 눈치를 보고, 인정을 받으려는 마음으로는 끝까지 복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들의 사역의 태도를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아시나니"라고 말합니다( 5). 아첨은 상대의 기분을 맞추는 말 같지만, 그 속에는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간사함이 숨어 있습니다. 탐심의 탈을 쓴다는 것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진리를 가리고, 사람을 속이며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자 한다면, 그 사역은 이미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길에 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6). 그는 자신의 사역이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 앞에 서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말이나 행동을 철저히 경계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자의 길은 자기 안의 간사함과 부정을 끊임없이 내려놓는 길입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충분히 권위를 주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 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다"고 고백합니다(7). 복음 전하는 자의 참된 모습은 윗자리에 앉아 지시하는 자가 아니라, 어머니처럼 품고 돌보는 사람입니다. 유모가 자기 자녀를 품에 안고 밤낮으로 돌보듯이, 바울과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고 돌보았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가 됨이라"고 말할 정도 입니다(8).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죽기까지 사랑하셨듯이, 복음을 맡은 자 또한 사랑하는 영혼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힘, 목숨까지도 내어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은 말문이 아니라 삶으로 이러한 사랑을 증거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고 말합니다(9). 그들은 복음을 빙자하여 성도들의 물질을 탐하지 않았고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일하며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면서, 동시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는 단지 경제적인 자립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본이 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이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다"고 말하며,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도,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 사실을 증언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10). 사람 앞에서 떳떳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숨길 것이 없는 삶을 살았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태도를 부모의 모습에 비유합니다. 앞에서는 유모와 같이 자녀를 기른 사랑을 말했는데. 여기서는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였다"고 말합니다(11). 어머니의 사랑은 품어 주고 안아 주는 따뜻함이 강조된다면. 아버지의 사랑은 방향을 잡아 주고, 잘못된 길을 갈 때는 단호히 붙들어 세우는 역할이 포함됩니다. 바을과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실수와 연약함에 대해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책망도 했고, 낙심할 때는 위로도 했으며,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살도록 권면도 했습니다. 그 목적은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도록"하기 위함이었습니다(12). 성도는 그 신분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를 향하여 위로와 칭찬만을 기대하는 태도로는, 하나님 앞에 합당한 성도로 세워지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말씀을 통해 내 마음을 찌르는 책망이 들릴 때가 있고, 내 삶의 방식이 흔들리는 도전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본다면 그 모든 권면과 경계는 감사의 제목이 될 것입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의 수고와 눈물이 헛되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도 주님의 이름으로 헌신하는 모든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1). 하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서도 신실하게 복음을 붙드는 자를 기억하시고. 그의 수고와 눈물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시며. 마침내 자신의 나라와 영광 가운데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귀한 믿음의 동역자로, 사역의 동역자로 함께 세워져 갈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늘 어떻게 복음을 마음을 다해 전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전도사님의 사역과 메시지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