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화) 데살로니가전서 4:1-8 /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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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38회 작성일 26-02-03 05:39

본문

 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지 깊이 묻지 않은 채 하루를 살아가곤 합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익숙하다는 이유로, 혹은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밀려 신앙과 삶을 분리한 채 살아갈 때도 적지 않습니다. 신앙은 예배의 자리와 말씀을 듣는 시간에 머물러 있고, 일상의 선택과 관계, 생각과 욕망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옛 방식대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순간마다 마음 한편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살고 싶다는 소원이 남아 있으면서도, 그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해 머뭇거리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이미 배운 대로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고 권면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이미 배운 바를 다시 상기시키며 권면합니다. 그는 성도들이 어떻게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를 배웠으니, 그 배운 대로 행하며 더욱 힘쓰라고 말합니다(1). 바울의 이 권면은 새로운 요구가 아니라, 이미 그들이 복음을 통해 들었고 삶으로 배우기 시작한 내용에 대한 재확인이었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기보다, 이미 받은 말씀 안에 머물며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데서 깊어집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그 길 위에 서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거기에서 멈추지 말고 더욱 전진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이 권면이 개인적인 생각이나 인간적인 조언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말합니다(2).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말씀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통해 주신 명령임을 밝힙니다. 그는 이 말씀을 ‘권고’나 ‘조언’이 아닌 ‘명령’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반드시 준행해야 할 말씀임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그는 “주 예수 안에서, 주 예수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을 반복하여, 이 명령이 사도의 권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드러냅니다. 거룩한 삶은 인간의 의지나 결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바울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거룩한 삶은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선언합니다(3). 하나님의 뜻을 묻는 질문은 신앙의 여정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멀리서 찾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특별한 사명이나 눈에 띄는 업적 이전에, 부르심을 받은 성도가 거룩하게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거룩함은 일부 특별한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이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삶의 방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부르실 때, 부정과 혼탁 속에 그대로 머물게 하시지 않고, 거룩함으로 이끌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이 거룩함이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지 않도록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거룩한 삶을 향한 첫걸음으로 음란을 버릴 것을 말합니다(3). 음란은 인간의 육체적 욕망에서 비롯되는 가장 근원적인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도 육체의 일을 언급하며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갈 5:19). 음란은 단순히 외적인 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마음과 생각을 타락시키며 결국 관계를 파괴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거룩한 삶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각 사람이 자기의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4). 여기서 그는 인간의 몸과 관계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존귀한지를 강조합니다. 몸은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며 거룩함을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같이 정욕의 욕심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됩니다(5).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욕망에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욕망을 절제하며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음란이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바울은 분명히 합니다. 그는 형제의 일을 범하여 해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6). 음란과 탐욕은 결국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죄에 대해 주께서 친히 보응하신다고 말하며, 이미 이 모든 것을 미리 말하고 증언하였음을 상기시킵니다. 죄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문제입니다.

바울은 다시 한번 성도의 부르심의 목적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라는 그의 말은 신앙의 본질을 분명히 드러냅니다(7). 구원은 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택함을 받은 성도는 이전의 삶의 방식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거룩함을 향한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날마다 자신을 살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권면을 거절하는 것이 곧 사람을 저버리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말합니다(8).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성령을 주셔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우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는 것은 단순한 불순종을 넘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거룩한 삶은 인간의 힘으로 이루는 도덕적 완성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거룩함을 향한 이 부르심은 성도를 억압하기 위한 요구가 아니라, 존귀한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 11:45).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정욕과 죄에 매여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이미 그러한 초청을 받은 사람이며, 그 부르심에 합당한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할 책임을 지닌 존재입니다.

바울의 권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거룩한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목표가 아니라,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이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삶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거룩함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지 깊이 묻지 않은 채 하루를 살아가곤 합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익숙하다는 이유로, 혹은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밀려 신앙과 삶을 분리한 채 살아갈 때도 적지 않습니다. 신앙은 예배의 자리와 말씀을 듣는 시간에 머물러 있고, 일상의 선택과 관계, 생각과 욕망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옛 방식대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순간마다 마음 한편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살고 싶다는 소원이 남아 있으면서도, 그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해 머뭇거리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이미 배운 대로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고 권면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이미 배운 바를 다시 상기시키며 권면합니다. 그는 성도들이 어떻게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를 배웠으니, 그 배운 대로 행하며 더욱 힘쓰라고 말합니다(1). 바울의 이 권면은 새로운 요구가 아니라, 이미 그들이 복음을 통해 들었고 삶으로 배우기 시작한 내용에 대한 재확인이었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기보다, 이미 받은 말씀 안에 머물며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데서 깊어집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그 길 위에 서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거기에서 멈추지 말고 더욱 전진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이 권면이 개인적인 생각이나 인간적인 조언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말합니다(2).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말씀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통해 주신 명령임을 밝힙니다. 그는 이 말씀을 ‘권고’나 ‘조언’이 아닌 ‘명령’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반드시 준행해야 할 말씀임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그는 “주 예수 안에서, 주 예수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을 반복하여, 이 명령이 사도의 권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드러냅니다. 거룩한 삶은 인간의 의지나 결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바울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거룩한 삶은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선언합니다(3). 하나님의 뜻을 묻는 질문은 신앙의 여정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멀리서 찾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특별한 사명이나 눈에 띄는 업적 이전에, 부르심을 받은 성도가 거룩하게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거룩함은 일부 특별한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이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삶의 방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부르실 때, 부정과 혼탁 속에 그대로 머물게 하시지 않고, 거룩함으로 이끌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이 거룩함이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지 않도록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거룩한 삶을 향한 첫걸음으로 음란을 버릴 것을 말합니다(3). 음란은 인간의 육체적 욕망에서 비롯되는 가장 근원적인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도 육체의 일을 언급하며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갈 5:19). 음란은 단순히 외적인 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마음과 생각을 타락시키며 결국 관계를 파괴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거룩한 삶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각 사람이 자기의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4). 여기서 그는 인간의 몸과 관계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존귀한지를 강조합니다. 몸은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며 거룩함을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같이 정욕의 욕심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됩니다(5).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욕망에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욕망을 절제하며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음란이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바울은 분명히 합니다. 그는 형제의 일을 범하여 해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6). 음란과 탐욕은 결국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죄에 대해 주께서 친히 보응하신다고 말하며, 이미 이 모든 것을 미리 말하고 증언하였음을 상기시킵니다. 죄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문제입니다.

바울은 다시 한번 성도의 부르심의 목적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라는 그의 말은 신앙의 본질을 분명히 드러냅니다(7). 구원은 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택함을 받은 성도는 이전의 삶의 방식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거룩함을 향한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날마다 자신을 살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권면을 거절하는 것이 곧 사람을 저버리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말합니다(8).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성령을 주셔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우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는 것은 단순한 불순종을 넘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거룩한 삶은 인간의 힘으로 이루는 도덕적 완성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거룩함을 향한 이 부르심은 성도를 억압하기 위한 요구가 아니라, 존귀한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 11:45).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정욕과 죄에 매여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이미 그러한 초청을 받은 사람이며, 그 부르심에 합당한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할 책임을 지닌 존재입니다.

바울의 권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거룩한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목표가 아니라,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이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삶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거룩함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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