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수) 데살로니가전서 4:9-18 / 서로 사랑하며 주님을 소망하라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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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20회 작성일 26-02-04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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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사랑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쉽게 상처를 주고받고, 함께 믿음의 길을 걷는 공동체 안에서도 오해와 피로가 쌓이기 마련입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삶이 여유롭지 못할 때에는 마음을 내어 주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집니다. 더 나아가 죽음과 이별의 현실 앞에 서게 되면,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던 관계가 끊어지는 것처럼 느껴져 깊은 허무와 슬픔에 잠기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삶의 자리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하는 삶을 멈추지 말고,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붙들라고 권면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과 소망이 어떻게 함께 세워져 가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삶을 떠올리며, 그들이 이미 사랑 안에서 말씀을 살아내고 있음을 먼저 인정합니다. 그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이 말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삶의 자리에서 드러나고 있음을 기쁨으로 말합니다(9). 데살로니가 교회는 말씀을 듣는 공동체에 머물지 않고, 들은 말씀을 삶으로 옮기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특정한 감정이나 일시적인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께 배운 사랑이었고, 그 사랑은 성도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공동체를 세워 갔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모습을 보며 그들이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사랑은 교회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마게도냐 온 지방에까지 전해졌고, 많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습니다(10). 신앙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사실을 삶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라”고 말하며, 이미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풍성한 사랑을 향해 나아가라고 권면합니다(10). 사랑은 어느 한 순간 완성되는 목표가 아니라, 계속해서 자라가야 할 삶의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랑이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보여 주신 삶의 본질은 사랑이었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신 것도 사랑이었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는 유일한 표지는 바로 이 사랑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사도들과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는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외형적인 성장이나 눈에 띄는 성과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큰 건물이나 화려한 제도, 많은 수의 성도로 칭찬받은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서로를 향해 깊이 사랑하며 하나 되어 살아갔다는 점에서 본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이 어떻게 구체적인 삶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교회가 명령과 복종의 구조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함께 동역하는 공동체임을 전제로 말합니다. 진정한 동역은 소리 높여 앞서 나서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먼저 “조용히 자기 일을 하라”고 권면합니다(11). 조용히 자기 일을 감당한다는 것은 자신의 헌신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태도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맡겨진 자리를 성실하게 지켜 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과장된 행동보다, 묵묵히 이어지는 책임 속에서 더 깊어집니다.

또한 바울은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말합니다(11). 이는 다른 사람을 지시하거나 통제하려는 태도보다, 스스로 낮아져 먼저 섬기는 삶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말로 앞서기보다, 손으로 수고하는 삶이 공동체 안에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손의 부지런함은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단단하게 세워 줍니다. 사랑을 말하면서 자신의 삶의 책임을 외면하는 태도는 참된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성도가 자신의 삶을 게으르게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고, 오히려 더 오래, 더 넓게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12).

바울은 이처럼 현실의 삶을 바로 세우는 권면을 마친 뒤, 성도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다룹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이해와 소망의 문제였습니다. 그는 믿는 자들 가운데서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을 가리켜 ‘죽은 자’라 부르지 않고 ‘자는 자’라고 말합니다(13). 잠든다는 표현에는 다시 깨어난다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이 이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분명한 부활 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죽음을 모든 것의 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슬픔 속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잠시의 쉼과 같은 상태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근거로 이 소망을 확신 있게 전합니다. 그는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우리가 믿을진대”라고 말하며,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분명히 합니다(14).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의 미래를 보증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죽음은 영원한 단절이 아니라, 다시 만남을 전제로 한 잠깐의 이별일 뿐입니다. 이 땅에서의 이별은 마음에 슬픔을 남길 수 있지만, 그 슬픔이 절망으로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재림의 날에 일어날 일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 날에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주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16). 그리고 그 후에 살아 남아 있는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17). 이 약속은 사라지지 않는 모든 성도의 소망입니다. 죽음조차도 이 소망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소망 없는 슬픔에 머물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아픔이 절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죽음이 없고, 오직 다시 만날 소망만이 있습니다. 주께서 다시 오실 때, 먼저 잠든 이들이 일어나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권면합니다(18). 부활 신앙은 개인의 위안을 넘어 공동체를 세우는 힘입니다. 슬픔 속에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곁에 서 주는 것이 사랑의 실천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일상의 수고 속에서도, 이별의 눈물 속에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소망하는 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사랑과 소망으로 서로를 붙들어 주며 오늘을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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