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화) 사무엘상 4:1-11 / 형식적인 종교생활에서 돌이켜야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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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17회 작성일 26-03-10 05:32

본문

 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었다는 기록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대언자로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드러내셨음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며, 타락과 부패가 가득한 시대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사무엘이 정치적·군사적 지도자로서 전쟁을 주도할 권한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실질적인 종교적·사회적 주관자는 여전히 엘리 제사장이었기 때문입니다(1). 그러므로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혼란스러운 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실행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3:18).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벌어진 블레셋과의 전쟁은,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는지를 드러내는 시험대와 같았습니다. 블레셋은 당시 주변 민족들 가운데서도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나라였고, 철제 무기를 앞세워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진을 친 아벡은 본래 가나안 족속의 주요 거점이었는데, 블레셋이 그곳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그들의 힘이 상당히 강성했음을 말해 줍니다. 내부적으로는 영적 타락과 도덕적 부패가 깊이 스며든 이스라엘과, 외적으로는 군사적으로 우위에 선 블레셋의 대결은 시작부터 그 결과가 쉽게 예측되는 싸움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에벤에셀 곁에 진을 치고 블레셋과 맞서 싸웠으나,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습니다. 사천 명가량의 전사자가 쓰러졌고,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2). 이 패배는 단순한 군사적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드러내는 결과였습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 정복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승리는 그들의 전투력에 있지 않았고 언제나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죄악 속에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적만을 의식했을 뿐,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죄와 불신앙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 역시 혈과 육에 속한 싸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악한 영과의 싸움임을 성경은 분명히 증언합니다(엡 6:12). 그러므로 문제를 넘어서는 길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으로 서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이미 오랜 시간 블레셋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삼손이 사사로 세워질 무렵,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보시고 그들을 블레셋의 손에 사십 년 동안 넘기셨습니다(삿 13:1). 그런 배경 속에서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했다는 기록은, 그들이 스스로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음을 의미합니다(1). 그러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 묻거나, 회개와 제사로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자신들의 힘과 판단을 신뢰하며 교만해져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모습은 훗날 모압과 암몬의 침략 앞에서 여호사밧이 보였던 태도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여호사밧은 온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일을 기억하며 “우리는 이 큰 무리를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오나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대하 20:12). 그러나 이스라엘은 패배의 원인을 자신들의 죄와 불순종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게 하셨는고”라고 말하며, 패배를 하나님께 돌립니다(3). 이는 영적인 분별력을 잃은 공동체의 모습이며, 형식적인 제사장은 있었으나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참된 영적 지도자는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 전투에서 패한 후 즉시 옷을 찢고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려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수 7:6). 그러나 이스라엘 진영에는 그러한 지도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패배의 원인을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온 우주에 충만하신 분으로 고백하기보다, 특정한 물건이나 형상 안에 가두려는 우상적인 사고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완전하시며 선하신 하나님을 탓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심각한 영적 타락이었습니다. 문제 앞에서 먼저 회복되어야 할 것은 상황이 아니라 예배이며, 외적인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임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이스라엘은 실로에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와 진영 한가운데 두었고, 그 순간 사기가 크게 올랐습니다. 언약궤가 들어올 때 온 이스라엘이 땅이 울릴 만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5).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승리를 거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최선이라 여긴 선택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두려운 선택이었습니다. 언약궤와 함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진영에 있었다는 사실은, 제사장들조차 얼마나 종교적 형식과 기복적인 신앙에 물들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손에 쥔다고 해서 누구나 홍해를 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제사장의 옷을 입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삶으로 세워져 가고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오자 블레셋 진영에는 큰 두려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언약궤라는 물건이 아니라, 과거에 애굽을 치셨던 전능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라고 탄식하며, 광야에서 애굽을 치신 하나님을 기억합니다(8). 놀랍게도,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블레셋은 오히려 마음을 다잡고 대장부처럼 싸울 것을 결의합니다(9). 죽음을 각오한 그들의 결단 앞에서, 언약궤로 승리를 확신했던 이스라엘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크게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삼만 명의 보병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빼앗겼고, 홉니와 비느하스도 전사합니다(10). 더 나아가 블레셋은 실로의 성소를 파괴하였고, 이스라엘 전역에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렘 7:12, 26:6).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는 싸움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형식만 남은 종교생활은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는 신앙은 결국 하나님을 잃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 앞에서 외적인 방법을 찾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성전에 무릎 꿇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은혜가 오늘 우리 가운데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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