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17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
18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19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20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리
21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22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사무엘은 이미 왕이 세워졌고. 백성의 선택이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지금 이 순간이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임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그는 백성에게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큰 일을 보라"고 말합니다(16). 이 말은 위로가 아니라 경고였고 안심이 아니라 두려움이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죄악을 드러내실 것임을 예고합니다.
사람은 땀 흘려 수고한 만큼 결실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었으니. 이제 거두는 일은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생각을 분명하게 부정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 말합니다(고전 3:7). 사무엘 역시 같은 진리를 이스라엘 앞에 세웁니다. 아무리 수고했고, 아무리 결실을 앞두고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모든 것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손 아래에 있는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사무엘은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고 묻습니다(17). 밀을 베는 때는 가장 기대에 찬 시기였습니다. 한 해 동안의 수고가 눈앞의 결실로 드러나는 때이며. 가족의 먹을 양식이 확보되는 안도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시기에 사무엘은 우레와 비가 내릴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밀 베는 때에 비가 내리는 것은 자연의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습니다. 비와 우레는 수확을 망치고, 그동안의 수고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던 순간,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결실의 때를 흔드심으로써, 이스라엘이 의지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드러내십니다(18).
이스라엘이 거두려 했던 결실은 하나님을 떠나서도 살 수 있다는 착각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말씀 없이도, 자신의 판단과 제도로 충분해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긴 마음이 그 결실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결실을 그대로 허락하신다면, 그것은 곧 이스라엘이 죄를 분별하지 못한 채 죄를 먹고 마시는 일이 될 것입니다 고전 11:29). 그래서 하나님께 서는 우레와 비를 보내셔서, 그들이 자랑하던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흔드십니다. 사무엘의 물음은 책망이었고, 동시에 회개를 추구하는 부르심이었습니다. 너희가 당연히 누릴 수 있다고 여겼던 것들이, 너희의 죄악으로 인해 무너지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사람은 종종 결실을 위해 믿음을 쉽게 양보합니다. 눈앞의 성과와 안정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뒤로 미루고 오늘의 만족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지 못한 채, 오히려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라고 말합니다(전 2:24). 먹고 마시는 가장 기본적인 일조차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는 순간, 사람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선포한 우레와 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을 다시 돌이키기 위한 강력한 은혜의 행동이었습니다. 사람은 때로 모든 것이 잘될 때 하나님을 떠나고 모든 것이 무너질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습니다. 악인이 형통해 보이는 순간조차 하나님의 심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호 4:7). 번성함이 오히려 죄를 키우는 도구가 될 때,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심판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우레와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며 사무엘에게 간구합니다.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19). 이 고백은 진실했지만, 너무 늦은 고백이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경고 속에서도 귀를 닫고 있었고, 자신들의 소유와 생계가 흔들린 뒤에야 죄를 깨닫습니다. 하나님보다 먹고 마시는 문제를 더 크게 여겼던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회개하는 백성을 항해 절망의 말이 아니라. 여전히 은혜의 길을 제시합니다. 그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고 말합니다(20). 여기서 사무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분명히 "이 모든 악"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죄를 직면하게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이 여전히 열려 있음을 선포합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비로 인해 곡식을 잃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21).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 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너희를 버리지 아니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22).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신실함에 근거한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성품에 근거한 선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진실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진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는 신실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서라도. 자기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십니다(22).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에 사무엘은 "나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라고 말합니다(23). 그는 백성의 완고함과 반복된 실패를 알고 있었고. 장차 왕이 하나님 앞에 악을 한하여 또 다른 고통이 올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25). 그럼에도 그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기도로 섬기는 길을 선택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는 이 고백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선지자의 진심어린 충고였습니다.
사무엘은 마지막으로 백성에게 다시 한 번 권면합니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여 너희의 마음에 진실함으로 섬기라"고 말합니다(24). 진실함은 어떤 환난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신앙의 중심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방패와 손방패가 된다고 고백합니다(시 91:4). 이스라엘은 진실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진실하셨고 그 진실함이 백성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진실함으로 응답하시고, 기도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은혜와 긍휼이 장치 올 모든 환난의 때를 이길 힘이 되기를 소망하며. 사무엘의 마지막 권면이. 오늘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부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시 14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