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고난주간 1일차】(월) 출애굽기 12:1-13 / 유월절 어린양에서 십자가까지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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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30회 작성일 26-03-30 05:55

본문

 1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4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해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지만, 사실 우리의 삶 자체가 늘 어떤 고난의 계절을 지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계획하지 않았던 상실을 만나고,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며, 왜 이런 길을 걸어야 하는지 묻는 순간들이 반복됩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해결되지 않은 두려움과 죄책, 그리고 하나님께 묻고 싶은 질문들이 쌓여 갑니다. 바쁘게 살아가느라 신앙도 습관처럼 이어 가고, 예배도 익숙한 자리에서 드리지만, 어느새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는 일보다 자기 삶을 지키는 일에 더 익숙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난주간의 첫날은 바로 이런 삶의 자리에서, 우리가 다시 멈추어 서서 묻도록 부르시는 시간입니다. 지금 나는 어디를 향해 살고 있는지, 무엇을 붙들고 버티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로 십자가가 내 삶의 중심에 놓여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오늘 우리는 다시 첫 발걸음을 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첫 달을 정하셨을 때, 그 시간은 단지 출애굽의 시작이 아니라, 장차 십자가로 이어질 구원의 역사를 향한 첫 발걸음이었습니다(2). 그리고 오늘 우리가 고난주간의 첫째 날로 이 한 주를 시작할 때, 교회 공동체는 다시 이 첫 달의 의미 앞에 서게 됩니다. 고난주간은 단지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을 기억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주인을 다시 바꾸는 시간이며, 구원의 은혜 앞에서 자신을 새롭게 세우는 거룩한 시작입니다. 애굽에서의 첫 달이 노예의 시간을 끝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첫 날이었다면, 고난주간의 첫날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주님과 함께, 우리의 옛 삶을 내려놓고 새로운 순종의 길로 들어가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주간의 첫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종려가지를 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습니다(마 21:9). 그러나 그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고, 그 길의 끝에는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월절을 앞둔 예루살렘은 이미 어린양을 준비하는 도시였습니다. 집집마다 흠 없는 어린양을 살피고, 피를 바를 준비를 하던 그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참 어린양을 예루살렘으로 보내고 계셨습니다. 출애굽의 밤에 각 집마다 어린양을 취하게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온 인류를 위해 한 어린양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3). 사람들의 눈에는 왕의 입성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제단으로 나아가는 제물의 행진이었고, 환호 속에 숨은 침묵의 길이 이미 십자가를 향해 조용히 열리고 있었습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각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누구도 대신 취할 수 없었고, 누구도 남의 피로 살 수 없었습니다. “너희 각 사람이 어린 양을 취하라”는 말씀은, 훗날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이어졌습니다(마 16:24). 고난주간은 군중 속에 섞여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라, 각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유월절의 피가 각 집 문설주에 발라졌듯이, 십자가의 은혜도 각 사람의 믿음 위에 새겨져야 합니다.
그 밤에 피는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졌고, 하나님께서는 그 피를 보시고 넘어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13). 고난주간의 십자가는 바로 이 피의 약속이 성취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장식이 아니었고,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흘러야 했던 생명의 값이었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대속의 피였습니다. 애굽의 장자들이 죽던 그 밤, 이스라엘의 집에는 울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골고다의 언덕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울부짖으며 죽으셨습니다. 출애굽의 피가 이스라엘을 살렸다면, 십자가의 피는 온 세상을 살리는 언약의 피가 되었습니다.
유월절 식사는 급히 먹는 식사였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떠날 준비를 한 채 먹는 식사였습니다(11). 고난주간은 머무는 절기가 아니라, 떠나는 절기입니다. 옛 죄의 자리, 옛 욕망의 자리, 옛 자아의 자리를 떠나 십자가 뒤를 따르는 여정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주간 동안 제자들과 마지막 식탁에 앉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 11:24). 유월절의 급한 식사가, 이제 십자가의 만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떠날 준비를 하라는 말씀은, 고난주간을 감상으로 보내지 말고, 삶의 방향을 바꾸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유월절의 밤에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모두가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민족이라도, 같은 집안이라도, 피가 없는 집에는 재앙이 임하였습니다. 고난주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앉아 있어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그 피를 믿음으로 의지하지 않는다면, 구원은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진리를 가리킵니다(마 7:21). 고난주간은 신앙의 겉모양을 점검하는 시간이 아니라, 믿음의 실체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뒤에 무교절을 명하셨습니다. 누룩을 제거하고, 부패의 흔적을 집 안에서 없애라고 하셨습니다(15). 고난주간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간일 뿐 아니라, 죄를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도, 죄를 붙들고 있다면, 그 묵상은 은혜가 아니라 형식이 됩니다. 바울은 “묵은 누룩을 내버리고 새 덩어리가 되라”고 권면합니다(고전 5:7). 십자가의 은혜는 죄를 덮어 줄 뿐 아니라, 죄를 떠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고난주간의 첫날, 우리는 여전히 환호하는 군중과 닮아 있습니다. 주님을 맞이하지만, 십자가까지 따를 준비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첫 달을 정하셨듯이, 이 한 주를 통해 우리 삶의 첫날을 다시 정하고 계십니다. 바로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자기 중심의 달력에서 십자가의 달력으로 옮겨오라고 부르십니다. 십자가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기준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이 애굽의 밤을 지나게 했듯이, 십자가의 어린양은 오늘 우리의 죄와 죽음과 심판을 지나게 하십니다.
고난주간의 첫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삶의 문설주에는 여전히 어린양의 피가 선명히 발라져 있는지, 나는 아직도 급히 떠날 준비를 한 나그네로 살고 있는지, 그리고 이 한 주를 지나며 내 삶의 누룩을 어린양의 피로 제거할 결단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에서 십자가까지 이어진 이 구원의 길 위에, 오늘 우리도 다시 서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너희를 위한 표적이 되리라”는 그 약속이, 고난주간을 지나 부활의 아침까지 우리를 붙들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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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bc075c님의 댓글

79bc075c 작성일

월요일 김봉연입니다.

오늘은 고난주간 첫날입니다.
출야굽시에는 어린양이 피를 흘렸는데,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못으로 박히고, 창으로 찔리셔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고난의 길을 아시면서 묵묵히 걸어가신 주님을 생각하며, 그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그사랑을 또한 마음에 새깁니다.

피흘림은 아픔이며 고통입니다. 죄와 가까이 하지 않음이 고통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임을 알고 은혜안에 머물기를 힘쓰고 노력하는 삶을 살기를 힘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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