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깨달은 점---)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나의 시간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일 속에서든지 나를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의 원인은 나에게서 찾아야합니다.
실천하기---)
나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려는 변명거리로 상황을 모면하고 있지않은지 항상 확인하겠습니다. 하루의 일상 끝에 하나님께 묻고 잠들겠습니다.

36 사울이 이르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이르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이르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
37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는지라
38 사울이 이르되 너희 군대의 지휘관들아 다 이리로 오라 오늘 이 죄가 누구에게 있나 알아보자
39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모든 백성 중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아니하매
40 이에 그가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너희는 저쪽에 있으라 나와 내 아들 요나단은 이쪽에 있으리라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하니라
41 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되 원하건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
42 사울이 이르되 나와 내 아들 요나단 사이에 뽑으라 하였더니 요나단이 뽑히니라
43 사울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가 행한 것을 내게 말하라 요나단이 말하여 이르되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44 사울이 이르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45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46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 추격하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47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
48 용감하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졌더라
49 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이스위와 말기수아요 그의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
50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이니 아히마아스의 딸이요 그의 군사령관의 이름은 아브넬이니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며
51 사울의 아버지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버지는 넬이니 아비엘의 아들이었더라
52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모았더라
사울은 블레셋 군대를 상대하여 싸워야 할 백성들에게 금식을 명령함으로써, 이미 하나님께서 열어 두신 승리의 길을 스스로 막아 버렸습니다(24). 그 결과 이스라엘은 완전한 섬멸의 기회를 놓쳤고, 사울은 그 책임을 돌아보지 않은 채 다시 전쟁을 이어 가고자 합니다. 그는 밤을 틈타 블레셋을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완전히 진멸하기를 원하였습니다(36). 전술적으로만 보자면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사울은 그날 블레셋을 끝까지 추격하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섬으로 잔존 세력을 남기게 되었고(46), 훗날 그들이 다시 세력을 키워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으며, 결국 사울 자신과 요나단이 전사하는 비극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31:1-6).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전략보다 믿음이 더 중요합니다. 사울에게는 열심과 판단은 있었으나, 하나님을 신뢰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사울의 이러한 상황을 본 제사장 아히야는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라고 권면합니다(36). 이 말은 전쟁의 승패가 사울의 결단이나 열심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상기시키는 권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하나님께 블레셋을 계속 추격해도 되는지를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37). 하나님의 침묵은 거절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백성의 지도자인 사울 자신이 먼저 돌아보고 회개하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로 규정하며 백성들에게 일방적인 금식을 명령하였고(24), 그 결과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피째 고기를 먹고, 소와 송아지를 같은 날 잡는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32). 이 모든 일의 출발점이 사울 자신의 경솔한 결정에 있었음에도 그는 그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나단의 전투는 백성들의 고백처럼 전적으로 하나님과의 동역이었습니다(45). 이는 요나단의 싸움이 사람의 용맹이나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 전투였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사울의 전투는 자신의 판단과 체면을 앞세운 자기 주도적 전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어떤 자책이나 회개의 기색도 없이, 오직 더 큰 전과를 얻는 데에만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그의 전쟁에는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사울의 말에 대하여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36, 40). 이는 신뢰에서 나온 순종이 아니라, 강압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백성들의 체념이었습니다. 사울은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 말했고(24), 결과에 따라 반드시 죽이겠다고 선언하는 경솔하고 폭압적인 지도자였습니다(39). 지도자는 사람들의 추종과 침묵 속에서 자신의 결정에 대한 정당성을 확인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지도자에게 남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침묵뿐입니다.
사울에게 임한 하나님의 침묵은 지도자로서 치명적인 위기였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침묵이 곧 죽음과 같음을 알았기에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시83:1). 사울은 마땅히 이 자리에서 자신을 낮추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침묵을 공동체 안에 숨은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그 죄인을 색출하려고 합니다(38). 그리고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솔하게 말합니다(39). 이 말 앞에서 백성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죄의 근원이 요나단에게 있지 않고 사울에게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침묵과 백성들의 침묵은 사울에게 자신을 돌아보라는 강력한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제비뽑기를 통해 죄인을 가려내려 합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을 세우고 자신과 요나단을 백성과 구별하여 세운 뒤, 죄의 책임자를 밝히려 하였습니다. 결국 제비는 사울과 요나단에게로 옮겨 갔고, 마침내 요나단이 뽑히게 됩니다(41-42). 그러나 요나단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고(45), 사울의 금식 명령도 알지 못한 채 꿀을 먹었을 뿐이었습니다(27). 설령 그것이 지도자의 명령을 어긴 것이라 하더라도 부지중에 지은 죄였기에 속죄제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자신의 맹세를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내세우며 요나단의 죽음을 선언합니다.
요나단은 그 앞에서 변명하지 않고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라고 담담히 말합니다(43). 그는 아버지의 결정이 왕으로서 옳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29),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의 권위 아래 자신을 맡깁니다. 사울은 자신의 말에 갇혀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44). 그러나 결국 백성들의 중재로 요나단은 사면되고, 사울은 자신의 말로 스스로를 저주의 자리에 몰아넣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말이 앞선 지도자는 결국 그 말에 묶여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게 됩니다.
요나단의 죽음이 현실이 되려는 순간, 그동안 침묵하거나 왕의 비위를 맞추던 백성들이 입을 엽니다. 그들은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라며 요나단을 적극적으로 변호합니다(45). 이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입술을 통해 요나단이 아니라 사울이 문제의 중심에 있음을 드러내신 순간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사울의 금식 명령에도, 제비뽑기와 사형 선언 앞에서도 부당함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이 억울하게 죽을 위기에 처하자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미 백성들의 마음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사울은 결국 백성들의 항변 앞에서 전쟁을 중단하고 블레셋 추격을 포기한 채 고향 기브아로 돌아갑니다(46). 지도자가 따르는 자들의 입을 통해서야 자신의 잘못이 드러난다는 것은 이미 지도력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자기를 돌아보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는 것은 무능함입니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준비되지 못한 것이 무능함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도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무능한 사람입니다.
사울은 왕위에 오른 후 암몬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을 쳐서 가는 곳마다 이겼습니다(47). 그는 용감하였고, 능력 있는 자들을 모아 전쟁에 활용할 줄 아는 지략도 갖추고 있었습니다(52). 그러나 성경은 그의 승리를 담담하게 기록할 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다는 평가는 남기지 않습니다(47). 이는 그의 마지막을 미리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아무리 많은 승리와 성공을 거두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는 인생의 끝이 어떠한지를 사울의 삶은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샬롬
깨달은 점---)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나의 시간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일 속에서든지 나를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의 원인은 나에게서 찾아야합니다.
실천하기---)
나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려는 변명거리로 상황을 모면하고 있지않은지 항상 확인하겠습니다. 하루의 일상 끝에 하나님께 묻고 잠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