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2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3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되자 이스라엘의 현실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합니다(16:14).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은 군대를 모아 유다 땅 소고에 진을 치고, 가드 사람 골리앗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향해 싸움을 걸어옵니다(1). 사울이 왕으로 선택받았을 때 기대했던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종의 왕”이 아니라, 백성들이 두려워하며 의지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의 상징이 되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리는 왕이 되기보다, 하나님을 자신의 왕권을 뒷받침해 주는 도구로 삼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삶에서 점점 밀려났고, 왕의 자리는 자신의 위세와 안정, 영광을 증명하는 무대가 되어 갔습니다.
그러한 사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여러 차례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무엘을 통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촉구하셨고, 말씀으로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끝내 “자신을 위한 길”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의 보호하심 아래 있던 왕은 사탄의 공격 아래 놓이게 되었고, 그가 꿈꾸던 강력한 왕권과 안정된 나라는 정신적 혼란과 외적 침략이라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악령으로 인한 번뇌가 다윗의 수금 소리 앞에서 잠시 물러갔다는 사실은, 사울이 하나님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 밖으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 줍니다(16:23). 하나님은 사울을 통해 다윗을 준비시키시고, 사울의 고통마저도 하나님의 더 큰 계획 안에서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사울의 타락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때 공동체는 반드시 약해지며, 그 틈을 타 외세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블레셋은 에베스담밈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은 엘라 골짜기 건너편에 진을 치며 서로 대치합니다(2). 블레셋은 이쪽 산에,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서 있고 그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가로놓여 있었습니다(3). 이 물리적인 골짜기는 당장 전면전을 막아 주는 장벽처럼 보였을지 모르나, 실상 이스라엘에게 더 큰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사이에 놓인 깊은 영적 골짜기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공동체는 외형상 진을 치고 전열을 정비한 것처럼 보여도, 그 중심은 이미 무너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방식과 힘을 좇아가는 삶은 결국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고,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서게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손을 떼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위기마저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섭리의 손길입니다. 오히려 더 두려운 상황은 하나님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성공이 이어지는 경우입니다. 그러한 성공은 회개를 미루게 하고, 더 깊은 죄악 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위험한 신기루가 되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진영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싸움을 걸어온 자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었습니다(4). 가드는 블레셋의 다섯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로, 거인족인 아낙 자손이 섞여 살던 지역이었습니다(수11:22). 골리앗은 여섯 규빗 한 뼘이나 되는 거대한 키를 가졌고, 놋 투구와 비늘 갑옷, 놋 각반과 단창으로 중무장한 채 두 진영 사이에 서서 이스라엘을 조롱합니다(4-8). 그의 외형은 단순한 한 장수가 아니라, 압도적인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사라지고 종교적 형식만 남아 있던 사울과 이스라엘에게, 골리앗의 조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형식만 남은 신앙, 껍데기만 남은 종교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사라지고 예배의 형식과 종교적 언어만 남아 있을 때, 가장 먼저 그것을 알아보는 존재는 사탄입니다. 알맹이 없는 신앙은 사탄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거만한 모습으로 다가와 조롱하고 모욕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두려움과 열등감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골리앗의 조롱은 단순히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말이 아니라, 정확히는 사울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골리앗은 “너희가 어찌하여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고 외칩니다(8).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고, 그들을 사울의 졸개에 불과한 존재로 격하시키는 말이었습니다. 아무리 전열을 갖추고 싸울 준비를 해도, 사울을 따르는 무리에 불과한 이스라엘은 결국 블레셋의 종이 될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조롱이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을 내보내 싸우자고 제안하며, 승패에 따라 종속 관계를 결정하자고 합니다(9). 이는 싸움의 제안이 아니라, 이스라엘에는 자신과 맞설 사람이 없다는 단정적인 모욕이었습니다(10).
아무리 조직이 크고 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어도, 종교화된 공동체는 이처럼 세상 앞에서 조롱과 멸시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생명을 잃고, 성도가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남는 것은 외형뿐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열을 갖추고 서 있는 모습은 스스로 보기에는 위엄 있어 보였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 공동체는 세상의 눈에 또 하나의 세속적인 집단에 불과했습니다. 예배는 유지되나 회개가 사라지고, 사역은 분주하나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때, 공동체는 겉으로는 안정되어 보이지만 안으로는 이미 무너지고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세상은 화려한 외형을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능력 없는 신앙을 간파하고 조롱하게 되며, 그 조롱은 공동체의 빈자리를 드러내는 거울이 됩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은 골리앗의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며 두려워합니다(11).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 아니라,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골리앗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교회와 성도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상의 반대나 위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가장 두려운 현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교회와 성도의 삶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와 사랑이 전해지지 않고, 복음의 생명이 증거 되지 않는 공동체는 이미 영적 패배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 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전쟁입니다(17:47).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서지 않는다면, 우리가 맞이하게 될 싸움은 하나님의 전쟁이 아니라 외롭고 두려운 개인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조롱 앞에서 무너질 것인지,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다시 믿음의 자리에 설 것인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의 왕이 되심을 고백하며, 형식이 아닌 생명 있는 믿음으로 돌아갈 때에만, 세상의 조롱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무대가 될 것입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