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데 사용되는 도구가 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분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내 삶을 나눔이 동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것을 사용하게 하시길...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되기에 합당한 내가 되길 기도합니다.

1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2 그가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3 내가 나가서 네가 있는 들에서 내 아버지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아버지와 말하다가 무엇을 보면 네게 알려 주리라 하고
4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칭찬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5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6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7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고 요나단이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전과 같이 있었더라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생각은 더 이상 개인적인 분노나 순간적인 감정의 표출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마음을 공식화하여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이 참여하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다윗을 제거할 것을 명령합니다(1). 왕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곧 국가의 결정이 되었고, 사울은 이를 통해 민심이 다윗에게로 기울어 가는 흐름을 차단하고 자신의 왕권을 다시 굳게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동시에 이는 후계 구도를 분명히 하려는 정치적 판단이기도 하였습니다. 사울의 속내는 훗날 요나단에게 퍼부은 독설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는 다윗을 사랑하는 아들 요나단을 향해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고 말합니다(20:30). 이 말에는 왕위 계승이 혈통을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울의 집착이 담겨 있습니다. 요나단이 왕위를 이어받지 못하고 다윗이 왕이 되면, 그 수치와 상실이 고스란히 요나단의 몫이 될 것이라는 왜곡된 두려움이 사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신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왕을 통해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계심을 알게 하시려는 신정 통치의 표지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생각은 점점 이방 나라들의 방식과 닮아갔습니다. 그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정적을 제거하고, 혈통 중심의 왕조를 세우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보다 자신의 자리와 가문을 우선에 두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윗을 공개적으로 죽이려는 명령은 그 절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다시 사울 앞에 전과 같이 설 수 있었던 것은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7).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고 고백합니다(시91:14). 성경은 이 장면에서 다윗의 마음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고 다시 사울 앞에 서게 하신 사실 자체가 다윗의 신뢰와 믿음을 증거합니다. 요나단에게서 모든 사실을 전해 듣고도 평소처럼 왕을 섬길 수 있었던 다윗의 담대함은 사람을 향한 용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7).
사울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사랑하였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왕위를 이어받을 위치에 있던 요나단이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내려놓고 다윗에게 마음을 내어준 것은 인간적인 판단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이미 다윗과 언약을 맺고 자신의 겉옷과 군복과 무기를 벗어 주며, 장차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18:3-4).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여겼다는 성경의 표현은(18:1) 감정적인 우정을 넘어선 신앙의 결단을 의미합니다. 이는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고백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요3:30).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내려놓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의 공개적인 살해 명령을 다윗에게 알리며,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고 당부합니다(2). 이 말은 우발적인 대응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피난처가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제거하려는 마음을 품기 시작한 때부터, 요나단은 다윗을 보호할 길을 미리 마련해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아침에 사울과 함께 나아갈 장소 근처에 그 은신처를 두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지 즉시 확인하고 다윗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3). 요나단의 일상은 이미 다윗을 살리는 방향으로 재편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을 중심에 두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사울과,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기까지 하며 다윗을 살리려는 요나단의 모습은 육체의 소욕을 좇는 삶과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삶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 줍니다. 다윗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신을 지키고 계심을 깊이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시140:12).
요나단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아버지 사울 앞에 서서 다윗을 적극적으로 변호합니다. 그의 변호는 감정에 호소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관점에서 다윗의 삶을 평가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왕 앞에서 행한 모든 일이 선하였음을 말하며, 다윗이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골리앗을 죽임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음을 분명히 합니다(4-5). 다윗의 행동이 개인적인 영웅심이나 야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을 죽이려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일이며, 무죄한 피를 흘리는 죄가 된다고 요나단은 말합니다(5). 이는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신19:10).
요나단의 말은 사울의 마음에 남아 있던 마지막 양심을 두드립니다. 사울은 잠시나마 요나단의 말을 듣고 다윗을 죽이려는 뜻을 거두며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합니다(6). 이 장면은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찬 사람과 믿음의 시선을 가진 사람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시기와 질투는 언제나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사람을 바라보게 합니다. 사울의 눈에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의 눈에는 다윗을 통해 역사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보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기꺼이 다윗을 위해 희생할 각오를 하였고, 훗날에도 다윗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20:4).
동역자는 단지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질 때, 자신의 자리와 미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참된 동역자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보았고, 그 길에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요나단과 같은 동역자를 붙여 주십니다. 또한, 우리 자신을 누군가의 요나단으로 부르실 때도 있습니다. 그 부르심 앞에서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다윗이 요나단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도전을 줍니다.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평소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삶,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동역자의 삶이 함께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림 없이 세워집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요나단과 같은 신실한 동역자를 주시기를 구하며, 또한 누군가를 살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요나단의 자리로 부르실 때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데 사용되는 도구가 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분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내 삶을 나눔이 동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것을 사용하게 하시길...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되기에 합당한 내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