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목) 사무엘상 23:1-14 / 사명을 감당한 자, 사명을 빙자한 자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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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30회 작성일 26-04-30 04:16

본문

 1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3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5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6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7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8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9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10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11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12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13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14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다윗이 헤렛 수풀에 머물러 있을 때, 사람들이 유다 지역 그일라에 블레셋이 쳐들어와 타작마당을 탈취하였다는 소식을 전합니다(1). 그일라는 다윗이 머물고 있던 헤렛 수풀에서 두 시간 남짓 떨어진 곳으로, 블레셋이 그곳을 노렸다는 것은 단순한 약탈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식량 수탈이었습니다. 타작마당은 한 해의 수확이 모이는 자리였고, 그것을 빼앗긴다는 것은 곧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그일라 사람들은 무장을 갖춘 군사가 아니라 농사를 생업으로 삼던 평범한 백성들이었기에, 블레셋의 공격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식은 다윗에게 있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도망자였고, 사울의 집요한 추격을 피해 광야를 떠도는 처지였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즉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라는 질문은 용기를 내어 던진 결단이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려는 겸손한 태도에서 나온 물음이었습니다(2). 이처럼 다윗이 하나님께 물을 수 있었던 것은 사울의 학살을 피해 도망쳐 온 아비아달 제사장이 에봇을 가지고 다윗에게 합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6). 제사장의 에봇에는 우림과 둠빔이 있었고, 이는 이스라엘이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사용하던 거룩한 도구였습니다(출 28:30). 우림과 둠빔은 인간의 계산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판단을 구하게 하는 통로였습니다(스 2:63, 느 7:65).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가서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윗의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명령처럼 보였습니다.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은 사울의 폭정을 피해 모여든 환난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고, 조직된 군대도 아니었으며 변변한 무기도 없었습니다(22:2). 반면 블레셋은 칼과 창으로 무장한 강한 군사들이었습니다.

이러한 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이미 사울에게 쫓기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블레셋과의 전면전을 치르는 것은 무모한 선택이라 여겼습니다(3). 그일라를 구원하러 들어가는 순간, 다윗의 행적은 드러날 것이고, 이는 사울을 공개적으로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역시 이러한 현실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고 하십니다(4). 이는 승리의 가능성을 말해주신 것이 아니라, 이 싸움이 다윗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임을 선언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조건과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결과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여전히 두려움을 안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합니다. 여론을 따라가면 그일라로 내려가는 길은 죽음을 자초하는 무모한 선택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은 모든 환경과 조건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경험하는 길이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그일라로 내려가 블레셋을 크게 쳐 죽이고, 오히려 그들의 가축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돌려주며 그일라 주민을 구원합니다(5). 성경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고 기록한 것은, 이 싸움이 다윗의 용맹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구원의 역사였음을 분명히 하기 위함입니다. 다윗은 사울 곁에 있을 때에도 늘 백성을 위해 일하던 사람이었고, 그의 출입과 모든 행적은 백성을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18:16). 사울에게 쫓기는 위기 속에서도 다윗은 자신의 안전보다 백성의 생존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통치수단으로 삼았지만(22:7), 다윗은 백성들이 빼앗긴 것을 되찾아 주는 지도자였습니다. 불의한 지도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하지만, 참된 지도자는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고 하나님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고 말합니다(7). 그는 다윗이 성읍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승리를 주셨다고 확신합니다. 사울은 자신의 분노와 집착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며, 불의한 행위를 신앙적 언어로 정당화합니다. 그는 다윗을 독 안에 든 쥐처럼 여기며, 군사를 징집해 그일라로 내려가 성읍을 에워싸려 합니다(8). 

사울은 제사장 학살이나 다윗을 죽이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마음이 강퍅해졌음을 보여 주며, 권세의 자리에 눈이 멀어 분별력을 완전히 잃었음을 증거합니다. 복음을 빙자해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려는 태도는 언제나 사울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복음은 희생을 통해서만 확장되며, 교회의 역사는 그것을 분명히 증거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빙자해 교회가 개인의 권력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사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기업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그일라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아비아달 제사장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하여 하나님께 묻습니다(9). 비록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했을지라도, 힘없는 농부들이 사울의 위협 앞에서 다윗을 넘겨줄 가능성을 다윗은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경험 많은 지략가였고,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 승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라는 질문은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길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11).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내려오고,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넘겨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2). 다윗과 육백 명가량의 사람들은 그일라를 떠나 흩어져 피했고, 성경은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고 기록합니다(14).

사울이 매일 다윗을 찾았으나 찾지 못한 이유는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십 광야의 험준함 때문도 아니었습니다(14). 사울이 찾지 못한 것은 다윗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었고, 사울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곳에 있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사명을 감당한 다윗과 사명을 빙자한 사울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사도 바울은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권면합니다(엡 6:6–7). 같은 교회, 같은 예배, 같은 말씀 앞에 서 있을지라도, 우리는 각기 다른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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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님의 댓글

온누리 작성일

♡샬롬♡

나의 모든것을 주께 맡기며 기도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깨닫지 못 한것은 없는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으로 나의 선택과 행동들을 정당화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하고 순종과 말씀 안에서의 지혜주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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