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월) 사무엘상 24:1-22 / 비록 나를 죽이려한 대적이라도 / 안병찬 목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1건 조회 34회 작성일 26-05-04 05:41

본문

 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8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9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11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13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14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15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16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18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19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20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 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21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

22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추격하다가 돌아왔을 때, 어떤 사람이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사실을 알립니다(1). 엔게디는 ‘염소의 샘’이라는 곳으로, 일반적인 광야처럼 물이 없는 황무지가 아니라 산악 지형 속에 물이 있어 들염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솔로몬이 사랑하는 여인을 가리켜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표현할 만큼 아름다운 포도원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아 1:14). 이처럼 다윗이 숨어 있던 곳은 사람의 눈을 피해 숨기에는 적합하면서도 생존이 가능한 장소였습니다. 다윗의 은신처를 밀고한 자들은 유다 산간 지역에 살던 십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이미 사울로부터 “그의 숨은 곳을 자세히 알아보고 확실한 정보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지속적으로 다윗을 감시해 왔던 자들이었습니다(23:22-23).

사울은 이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잡기 위해 들염소 바위로 향합니다(2). 삼천 명이라는 병력은 단순한 추격대가 아니라 전쟁을 위한 정예군의 규모였습니다. 사울은 외적과 싸울 때와 같은 전력을 동원하여 다윗을 잡으려 했습니다. 이는 그가 다윗으로 인해 왕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이 장차 왕이 될 것을 전혀 몰랐던 사람이 아닙니다. 요나단의 말처럼 사울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23:17), 이후에는 자신의 입으로도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이라고 인정합니다(2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다윗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만 불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 때문에 불순종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사울은 바로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신의 왕좌를 더 중요하게 여겼고, 하나님의 섭리보다 자신의 불안을 더 크게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향한 추격은 점점 집요해지고, 결국 전쟁과 같은 규모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다윗이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라고 말한 것처럼, 죄는 외부에서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욕심에서 자라납니다(13).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합니다(약 1:15). 사울의 모습은 바로 그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때 사울은 들염소 바위 근처 양의 우리에 이르러 한 굴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그 굴 깊은 곳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뒤를 보러 들어간 것입니다(3). 엔게디 근처에는 목자들이 쉬거나 짐승을 피하게 하는 데 사용하던 동굴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 일행이 숨기에 적절한 장소였습니다. 사울은 어둠 때문에 굴 안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굴 깊숙이 숨어 있던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입구로 들어오는 사울의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쫓기던 자와 쫓던 자의 위치가 한순간에 뒤바뀐 상황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본 다윗의 사람들은 즉시 이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은 다윗에게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원수를 네 손에 넘기신다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라고 말하며 사울을 죽일 것을 권합니다(4). 그들의 판단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오랜 도피 생활을 끝낼 수 있고, 더 이상 두려움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되며, 장차 왕이 될 길도 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는 조용히 다가가 사울의 겉옷 자락만을 벱니다(4-5). 그리고 그 행동만으로도 그의 마음은 심하게 찔립니다(5).

그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의 옷자락을 벤 것만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들을 막습니다(6). 사울은 분명 악한 길을 걷고 있었고, 다윗을 죽이려 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다윗에게 사울을 해할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억울함보다 하나님의 질서를 더 크게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절호의 기회 앞에서도 칼을 거두었습니다. 믿음은 기회를 붙드는 데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기회 앞에서 멈출 줄 아는 데서 드러납니다. 다윗은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행동하였습니다.

사울이 굴에서 나와 길을 떠날 때, 다윗은 그 뒤를 따라 나와 “내 주 왕이여”라고 외칩니다(8). 그리고 사울이 돌아보자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8). 자신을 죽이려 했던 왕 앞에서 다윗은 칼을 들지 않고, 여전히 신하의 자리에서 예를 갖춥니다. 그는 자신의 힘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였습니다. 이어 그는 자신을 반역자로 몰아가는 말은 거짓임을 호소하며, 자신이 벤 겉옷 자락을 증거로 보여줍니다(9-11). 그는 얼마든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과 사울 사이를 판단하시고, 여호와께서 자신을 위하여 보복하시겠지만 자기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12). 하나님께서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히 10:30), (신 32:35). 다윗은 이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서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억울함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억울함을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칼을 들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웁니다. 상황이 허락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상황을 하나님의 뜻으로 오판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태도 앞에서 사울의 마음도 흔들립니다.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라고 부르며 소리를 높여 울고,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라고 말합니다(16-17). 다윗의 진실한 행동이 사울의 양심을 깨운 것입니다. 칼이 아니라 선으로, 복수가 아니라 절제로, 다윗은 사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어 사울은 다윗이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후손을 끊지 말고 자기 집을 멸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20-21). 얼마 전까지 다윗의 생명을 끊으려 하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집안을 다윗에게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권세가 얼마나 덧없는지를 보여줍니다. 붙들고 싶어도 영원히 붙들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자리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놓아줌으로 자신의 미래를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명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칼을 드는 사람보다 칼을 거둘 줄 아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상황을 따라가지 않고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에서 상황이 아니라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지키시고, 우리의 삶을 그분의 뜻 가운데 견고하게 세워 가실 것입니다. 끝까지 말씀대로 행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79bc075c님의 댓글

79bc075c 작성일

가정의 달 5월.
첫번째 월요일입니다.

월요묵상 김봉연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다윗이 깊이 숨어있는 굴 입구에 뒤를 보러들어온 사울을 보는 다윗을 생각해봅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이라고, 지금까지의 모든 고난을 끝내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자기의 손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손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리란 확신을 가지고 사울을 해치지 않습니다.
나도 이런 상황이 닥치더라도 내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며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 다짐해 봅니다.

새벽이슬묵상 목록
열람중
295
294
293
292
291
290
289
288
287
286
285
284
283
282
28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