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월) 사무엘상 30:21-31 / 나누며 베푸는 믿음의 공동체로 / 안병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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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20회 작성일 26-05-18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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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다윗이 전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명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오는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

22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23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24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25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26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전리품을 그의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이르되 보라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 하고

27 벧엘에 있는 자와 남방 라못에 있는 자와 얏딜에 있는 자와

28 아로엘에 있는 자와 십못에 있는 자와 에스드모아에 있는 자와

29 라갈에 있는 자와 여라므엘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 겐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

30 홀마에 있는 자와 고라산에 있는 자와 아닥에 있는 자와

31 헤브론에 있는 자에게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왕래하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브솔 시내를 건너 아말렉 사람들을 기습하여 빼앗겼던 모든 것과 여자들과 자녀들을 도로 찾아온 다윗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이,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한 이백 명에게 돌아왔습니다(21).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했던 이백 명의 사람들이 피곤하였다는 것은, 가드 왕 아기스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과의 전투를 위하여 집결하였던 아벡까지 사흘을 걸어갔고 다시 시글락으로 돌아오기까지 또 사흘의 여정을 감당해야 했던 상황을 고려할 때, 집결지에서의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최소 엿새 이상을 행군하며 탈진에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1). 사실 다윗과 함께 브솔 시내를 건너 아말렉을 공격한 사람들 역시 거의 탈진 상태에 가까웠기에, 그들이 전투를 감당할 수 있었다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위하여 싸우셨음을 드러내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했던 자들이 돌아오는 다윗 일행을 영접하며 문안하였을 때, 다윗과 함께했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일어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으니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게 하자고 주장합니다(22).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다윗의 곁에도 이러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었으며, 다윗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과 영달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으로 따랐던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이 옳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미 모세를 통하여 전리품 분배에 관한 율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얻은 물건을 반으로 나누어 전쟁에 나갔던 자들과 회중에게 나누어 주며, 그 가운데 일부를 여호와께 드리도록 명령하셨습니다(민 31:27-28). 또한 승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과, 브솔 시내에 머물렀던 이들도 소유물을 지키며 뒤를 지키는 역할을 감당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악한 자와 불량배들의 주장은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불의한 생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권면합니다(고전 10:24).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몫을 주장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공동체를 세워가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하여 다윗은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그는 아말렉과의 싸움에서의 승리가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임을 밝히며,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고 말합니다(23). 다윗의 고백은 전리품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는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사람의 기준으로 나누려는 시도는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행위가 됩니다.

다윗은 전쟁에 나갔던 자들과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들에게 동일하게 분깃을 나누어 주었고, 이 일이 이후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로 세워지게 하였습니다(24-25). 더 나아가 그는 유다 지파의 여러 장로들과 친구들에게까지 전리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26-31). 인간적인 계산으로 보면 전쟁에 직접 참여한 자들에게는 손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이 나눔은 훗날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뜻에 따른 나눔이 결코 손해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은 언제나 사람의 계산을 넘어서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나눔의 원리를 단지 한 시대의 사건으로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은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고 증거합니다(행 4:32).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교회는 단순히 모이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를 돌아보며 나누는 공동체로 존재해야 합니다.

브솔 시내에서의 사건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연약한 자와 강한 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깊이 깨닫게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사람을 의지하고 육신을 힘으로 삼는 자가 저주를 받는다고 선포합니다(렘 17:5). 사람은 물질이나 건강이나 지위와 같은 것을 의지하기 쉬우나,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생명을 붙드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탐심을 비롯한 육체의 욕심을 죽여야 할 것으로 규정합니다(골 3:5). 탐심은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하나님보다 자신을 앞세우게 만드는 근원이 됩니다. 반대로 잠언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잠 19:17). 이는 나눔이 사람을 향한 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의 행위가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행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눔은 손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은혜의 통로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보여 준 분배는 모든 지체가 서로 다른 역할을 감당하지만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고 말합니다(롬 12:5). 교회는 서로를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 주는 몸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생각이 자리 잡을 때 공동체는 분열되고, 하나님의 뜻은 가려지게 됩니다.

다윗은 블레셋 땅 시글락에 거하면서도 그의 마음이 여전히 유다에 있음을 전리품을 나누는 행위를 통하여 드러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21). 사람이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어디에 나누는지를 보면 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눔은 단순한 물질의 이동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드러내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교회가 성장과 확장만을 추구하는 공동체로 머물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터질 수밖에 없는 풍선과 같은 모습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는 서로를 향하여 마음을 열고, 가진 것을 나누며, 약한 자를 품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라는 말은 따뜻한 소속감을 드러내는 표현이지만, 때로는 그 울타리 안에만 머물며 밖을 향하지 않는 폐쇄적인 태도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울타리를 넘어 이웃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나누며 베푸는 믿음의 공동체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들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누어야 하며,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은혜의 열매를 기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사용될 때 가장 온전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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