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나의 가장 멋진 선배님, 우리 할머니! /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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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20회 작성일 25-12-1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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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QT, 대체 무슨 차이일까 싶었습니다. 왜 우리 목사님은 늘 “묵상”이라고 하실까 궁금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목사님께서 QT 교재를 여러 번 선물해 주셨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학생회관 2층 휴게실에서 교회 청년부 QT 모임이 아침 7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 받은 책들은 책장에 쌓여가기만 했습니다. 성경 본문보다 간증처럼 남겨진 적용 글만 읽고는 덮어두곤 했습니다. 그래서 QT는 저에게 먼지가 쌓이는 책, 좋은생각보다 더 재미없는 책, 대단한 선배들이 하는 멋진 일이었지요. 나의 하나님을 만나는 책이 아니라, 언니 오빠의 하나님을 나누는 책이었습니다.

모임에 모태지는 숫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오빠와 사모님이 되신 언니, 그리고 신입생이었던 저, 이렇게 세 명의 아침 모임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저 참석했을 뿐이었습니다. 언니 오빠에게 이쁨받고 싶어서요.

우리 할머니는 아흔을 가까이 사셨습니다. 제가 함께한 세월만 해도 벌써 47년입니다.

강진 집 대문을 열면 할머니는 늘 햇볕을 따라 앉아 계셨습니다. 아랫마루에 앉아 계실 때도 있고, 윗마루 평상에 앉아 계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곁에는 언제나 오래된 할머니의 성경책이 있었습니다. 겉표지가 다 닳아 제가 아끼던 천으로 커버를 만들어 드렸는데, 그 커버마저도 물들고 바래버린 성경책을 늘 손에 들고 계셨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따뜻한 햇볕을 따라 앉으신 줄 알았는데, 사실은 성경 말씀이 잘 보이는 자리를 찾아다니신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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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지 나는 안 배워서 못 알아들어야. 근디 그냥 하나님 말씀인께 몰라도 읽어보는 거여.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는 유식한 사람처럼 못 알아 먹지만 그래도 계속 읽어야. 하나님 말씀인께! 다 그대로 그렇구나 하제. 내가 뭣을 알겄냐? 내가 뭔 유식한 소리를 하겄냐?”

정성껏 한 자 한 자 읽으시던 그 모습. 그러다 어느 날, 제가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릴 때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겄냐? 그건 하나님이 주신 맘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면 절대 따지지 않고, 그저 순종하셨던 할머니. 말씀은 어려워도, 하나님이 하라 하시니 그대로 해야 한다고 믿으셨던 그분.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묵상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반추하는 것이라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묵상은 내 삶 속에서 열매로 나타나고, 기뻐서 즐거워서 계속하고 싶은 것이며, 영적 교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묵상책은 누군가 하든 하지 않든, 가볍게 여기든 어렵게 여기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위해 매달 완성됩니다. 그 시간들을 통해 내 의지를 버리고 무조건의 순종이 되게 하는 과정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묵상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변했습니다.

저에게 어려웠던 묵상의 의미가 결국 할머니의 모습 속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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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순애 권사님의 3번째 성경필사본과 외손녀 이정현 권사가 수놓아 제작해드린 표지


새벽예배를 위해 할머니 방 불은 늘 4시 30분이면 켜졌습니다. 다다닥, 옷 입는 소리, 문 열리는 소리, 그리고 대문이 쾅 닫히는 소리. 어떤 상황에도 멈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할머니의 발걸음은 늘 직진이었습니다.

그 삶을 통해 보여주신 모습이 바로, 예배가 삶이 되는 순종의 열매가 맺힌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었습니다.

학원에서 아이들이 묵상을 나눌 때가 있습니다. 질문도 깊고, 얼마나 진지하게 읽고 쓰는지 참 멋집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제 마음 속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에게 우리 할머니 같은 모습의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지요. 아이들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밀알처럼 심겨지길 바라는 꿈이 점점 커갑니다.

그러나 다시 보게 됩니다. 제게 잔소리 한마디 안 하셨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보여주셨던 할머니. 그 삶이 저를 가르쳤던 것처럼, 나도 말과 행위로 앞서가려는 어리석음을 버려야겠다고 기도합니다. 오직 나의 삶을 통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봐 주며, 하나님의 향기를 뿜어낼 수 있기를, 할머니처럼 하나님을 닮아가길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간섭하십니다. 잔소리 많은 것 같지만, 그 간섭이 참 좋습니다.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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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세대의 기도가 다음 세대를 안아 올리듯, 외현손녀 희수에게 사랑을 전해주시는 임순애 권사님.


그리고 우리 할머니, 임순애 권사님! 지금까지도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기도하시고, 마음을 나눠주십니다. 껍질 다 까서 삶은 밤을 담아 주시고, 제가 좋아하는 콩나물국을 끓여주시고, 거금 들여 갈치를 사다가 맛나게 조려 주십니다.

우리 할머니. 임순애 권사님! 나의 가장 멋진 신앙의 선배님. 닮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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