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이야기

(연재) 녹아지고, 부숴지고, 버무려지다 / 김봉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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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9회 작성일 26-05-0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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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맨 앞에 있는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사람에게 맡기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창세기 1장 12절에서는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며 각종 채소와 나무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29절에서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하시며 이 모든 것을 사람의 먹을거리로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이 먹을 것을 먼저 나게 하신 후에 사람을 만드셔서 그것들을 관리하고 먹을거리로 삼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은 이런 채소류를 우리가 먹고 살아가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다이아몬드나 금이나 은처럼 값비싼 것을 우리의 식량으로 주셨다면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또한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과 산소입니다. 산소를 다른 물건들처럼 장에 가서 사 와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코로 언제나 산소가 저절로 몸 안으로 들어와 생명을 유지해 줍니다.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에서나 필요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기에 가장 기본적인 생명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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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채소가 우리의 먹을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땅에서 뽑혀져야 합니다. 뽑힌 채소는 뿌리가 잘리고, 잎이 잘리거나 꼭지가 떨어져 나가며, 사람의 식성에 맞게 잘리고 다져져서 불에 익히거나 기름에 튀기거나 볶아집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맛을 음미하며 먹는 사람의 입에서 다시 씹히고, 목구멍을 넘어 소화기관으로 들어간 음식물은 몸속에서 소화되어 필요한 곳으로 운반되고 흡수되어 형체도 남지 않게 됩니다.

지난 11월 28일과 29일은 강남교회의 김장하는 날이었습니다. 날씨는 춥지 않아 포근했고, 김장하러 교회에 와서 봉사하는 손길과 마음씨도 포근했습니다. 예부터 김장하는 날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재료도 섞고, 말도 섞고, 동네 소문도 나누며 오순도순 절인 배추에 속을 넣으며 겨울을 준비하는 날이었습니다. 지금은 김장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혼자서 하는 일은 거의 없고 누군가와 함께 일손을 나누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서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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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은 일 년 치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음식이며, 갖은 양념으로 발효되어 영양 면에서도 매우 훌륭한 우리 고유의 음식입니다. 이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는 한국의 여성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겨울이 닥치면 많은 가정이 김장을 준비하며 정성과 시간을 들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봅니다. 고추가 빨갛게 익으면 기계에 넣어 빻아 가루가 되어야 하고, 각종 생선들은 소금을 뿌려 오랜 시간 삭혀져야 젓갈이 됩니다. 또 희고 통통하게 잘생긴 무도 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습니다. 채칼에 잘게 썰리고 다져져야 제대로 양념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마늘, 쪽파, 갓, 미나리, 대파 등 모든 양념이 제 모습을 지키며 부서지기를 거부한다면 그 쓰임에 맞는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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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중심이 되는 것은 배추입니다. 모든 양념은 배추에 속을 넣기 위한 재료들입니다. 배추는 밭에서 길러져 뽑힌 후 갈피갈피 소금을 뿌려 그 뻣뻣함이 사그라지도록 절여져야 합니다. 배추가 절여지기를 거부하면 안 됩니다. 소금이 제대로 닿지 않으면 뻣뻣해서 양념을 넣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소금이 가장 중요합니다. 소금을 빼놓고는 양념도, 김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소금에 대해서는 성경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의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2장 13절에는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하셨고, 민수기 18장 19절에서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하여 소금이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와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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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6장 6절에서는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말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하여 음식의 맛과 관련된 의미를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4장 5절에서는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하여 관계 속에서의 태도까지 가르쳐 줍니다.

그 소금은 매우 중요한 역할이 주어진 존재이지만, 중요한 사실은 소금도 자기 형체를 고집하면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녹아져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소금이 아무리 귀한 일을 하려 해도 자신이 녹아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내려놓고 형체 없이 녹아 스며들 때 비로소 소금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는 데에는 동역자들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도 하루 전부터 수고하는 손길들이 있었습니다. 쪽파를 곱게 다듬어 오고, 조기와 젓갈을 손질해 오고, 부족한 양념을 서로 보충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녹아지고 다져지고 부서진 재료들은 다시 한 번 큰 과정을 거쳐 한데 버무려집니다. 잘 버무려진 양념은 형체를 분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무엇이 들어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섞여,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단지 붉은 고춧가루의 색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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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것들은 완전히 절어 부드러워진 배추의 갈피갈피에 들어가 김치라는 새로운 존재로 탄생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배추 속을 넣으며 나누는 즐거운 대화 속에서 마음이 섞이고 사랑이 버무려지며 맛있는 김장김치가 만들어집니다.

그날 목사님께서는 탁자를 넓게 펼쳐 놓고 그 위에 비닐을 깔고, 옆에는 난로를 켜 두어 만반의 준비를 해 놓으셨습니다. 권사님들이 오시고 전도사님과 사모님도 오시면서 일할 분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준비된 배추에 속을 다 넣고도 양념이 많이 남아, 마침 장날이기도 하여 장에 가서 알타리를 사 와 다듬어 알타리김치까지 담갔습니다.

서로 마주 보며 배추 속을 넣고, 맛보라고 서로 먹여 주는 모습 속에서 참으로 행복한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김장을 마치고 함께 나누는 식사는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어느 분의 수고로 잘 키워진 칠면조 한 마리가 희생되었고, 온갖 재료가 들어간 큰 가마솥에서 오랜 시간 푹 삶아졌습니다. 거기에 찹쌀을 넣어 다시 끓이니 맛있는 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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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위해 준비했던 자리를 정리하고, 막 담근 김치와 따뜻하게 끓여진 칠면조 찹쌀죽을 앞에 두고 수고한 손길들이 한자리에 앉았습니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보다 더 포근한 시간이었습니다. 서로를 섬기고 품어 주며 한데 어우러지는 공동체가 바로 강남교회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강남교회는 김장을 하는 과정처럼 녹아지고 부서지고 서로 버무려져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모든 교회의 모범이 되어 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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