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모든 셈의 기본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입니다. 더하는 것은 조금 욕심을 부리며 더 가지려는 것처럼 보이고, 빼는 것은 주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덜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곱하기는 너무 많이 가져서 비대하고 미련해 보이는데, 나누기는 서로 도우며 함께 공유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우리 교회에는 나누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좋은 것이 있으면 교회로 가지고 오고, 동역자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과일이든, 밭에서 뽑은 채소이든, 나무에서 딴 열매이든, 혹은 손님이 가져온 선물이라도 함께 나누어 주기를 기뻐하는 공동체입니다. 지난 10월 어느 날에는 보성에 사는 집사님 가정에서 고구마를 캤다며 새벽기도에 나오시는 분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봉지봉지 담아 월요일 새벽에 교회 뒤편에 갖다 놓았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서, 고구마를 캐고, 그것을 다시 보성에서 강진까지 가져다 놓는 그 나눔의 열정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교회는 정원도 나누고 있습니다. 모란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좁고 볼 것이 없지요. 그래서 목사님께서는 아치를 만들어 넝쿨장미를 올려 꽃 터널을 만들고, 양쪽에 장미꽃이 피어 있는 길을 예쁘게 포장하여 열어 놓았습니다. 공원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의 장미꽃길을 걸으며 행복해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나눔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아직은 식구가 많지 않아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작은 실천에서부터 점점 커 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에 공동체가 커진다고 해서 이런 나눔의 실천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강남교회에서 특히 나누기를 잘하는 대표적인 분은 바로 사모님입니다. 많은 것이 아닐지라도 무엇이든 두 개 이상이 있다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교회 주변의 이웃들에게도 날마다 나누어 주러 다니는 것이 일상입니다. 교회 옆의 영랑빌라나 교회 바로 밑에 있는 조그만 집에 사시는 어르신 댁이나, 하다못해 모란공원에 산책하려고 지나가는 분들에게도 나누기를 좋아하십니다. 혼자 사시는 권사님 한 분에게는 새벽기도가 끝나고 차에 시동을 걸려 하면, 사모님이 부지런히 쫓아 나와 무언가를 건네줍니다. 그것이 때론 그날 끓인 국일 수도 있고, 오븐에 구운 빵일 수도 있으며, 때론 떡 한 조각이나 찐 고구마, 찐 감자일 수도 있습니다. 혼자 사시니까 조금이라도 식사 때 드시라고 그릇에 담고, 랩이나 호일로 싸서 쇼핑백에 담아 드립니다.
이런 나눔의 마음씀씀이가 풍족하게 살아왔기 때문일까요? 여유롭기 때문에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것일까요? 사모님께 물었습니다. “어떤 마음에서 이렇게 나누는 것을 좋아하게 되셨나요? 어떤 동기가 있었거나, 아니면 원래 그런 성품으로 태어나신 건가요?”
『목사님이 신학 공부를 하시며 전도사로 사역하실 때부터였죠. 그때부터 음식을 안 한 거예요. 왜냐하면 넘치니까요. 이것저것 주시는데 항상 먹고도 남아요. 이 음식이 나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수고하셨을까 생각하니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너무 어려웠을 때여서 더 그랬을 것 같아요. 사례비도 적었고, 아이들도 어리고 정말 힘들 때였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의를 구하며 온전히 마음을 쏟으니까 이런 손길을 통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더라고요.
어떤 분이 김치를 담가 주면 그걸 먹고, 없으면 안 먹고. 그런데 없을 때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받은 음식 그릇에 집에 있는 것 중 내가 줄 수 있는 작은 것, 떡이 있으면 떡, 빵이 있으면 빵, 감자가 있으면 감자를 넣어드리곤 했죠. 그러다가 어떤 분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요. 많아서가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큰 힘이 되잖아요. 또 권사님 한 분이 휴가도 한 번 못 가본 우리를 위해 백담사에 예약을 해 주시고 주유비까지 봉투에 넣어 주신 적도 있어요.
이제 그것을 돌려드리는 거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물질로는 못하고 마음이 담긴 작은 것으로, 또는 글을 써서 감사한 마음을 카톡으로 전하죠. ‘이것을 만드시기까지 장을 보고 만들며 저를 생각해 주셨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며 너무 잘 먹겠다는 마음을 글로 전해요. 이런 글에 또 감동을 받으시기도 하죠. ‘나는 없어. 난 안 돼’ 이런 게 아니라 없는 중에도 이렇게 나눌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풍성해지고, 받는 사람도 풍성해지고, 또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변으로 퍼지게 해 주시니까 기쁘고, 기쁘니까 ‘아, 이렇구나’ 하는 마음을 주셔서 더 나누게 되는 그런 원리인 것 같아요.
저 원래 욕심이 많았었는데, 나누다 보니 더 많이 받게 되는 것을 알았어요. 줄 때는 손해 보는 것 같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성경에 있잖아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언 11:24–25). 이 말씀을 깨닫는 순간부터 더 주게 되더라고요. 어려울 때 도움을 받으면 감사한 마음이 더 크잖아요. 그리고 요즘은 목사님이 ‘쟁여 놓지 말고, 나눌 때도 신선하고 맛있을 때 나누라’고 하셔요. 목사님의 성품에서 배운 것들을 그대로 행함으로 옮기고 있다고나 할까요.』
목사님은 생활이 아주 어려울 때에도 약속한 장학금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보냈다고 합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따르지 않는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는 그 삶으로 말씀이 선포될 때, 그 설교가 살아서 역사하는 힘을 가지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질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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