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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전부가 은혜 /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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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6-04-1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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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4살 때 아버지께서 다니시던 직장에서 영국으로 주재원 발령을 받으셔서 영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어릴 땐 부모님께서 다니시는 한인교회를 함께 다니다가 14살 때부터 혼자 영국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대학생 때부터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교사를 계속해서 하며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주려 노력했다.

 나는 정말 우연한 계기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기는 했지만 가족과 함께 주일엔 당연히 교회에 나가야 된다고만 생각했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었다. 16살 때 다른 지역에서 축구 경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한 아저씨를 만났다. 그 아저씨가 나에게 ‘born again’ 했냐고 물었다. 쉽게 한국말로 거듭났냐, 다시 태어났냐를 물어본 것이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정신을 차리고 신앙생활을 했고 그제서야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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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려서부터 공부가 싫어 그냥 공만 찼다. 축구에는 어느 정도 소질이 있어서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밀월FC’라는 프로팀에서 선수로 뛰었다. 한국 사람들에겐 맨유, 아스날 등의 영국 프리미어리그 팀들은 익숙하지만, 축구 매니아가 아니라면 프로리그 팀 이름은 아마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축구를 하다가 다리가 아프게 되어 더 이상 뛸 수가 없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한 번도 공부를 해본 적 없던 나에겐 앞으로의 미래가 완전 캄캄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운동을 잘하니 체육 선생님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다. 나는 나름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 월급을 가지고 살고 싶진 않았다. 계속 기도하고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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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파생상품(선물옵션) 트레이더가 돈을 많이 버는 것 같았다. 많고 많은 직업 중 그냥 갑자기 이걸 해야겠다 생각했다. 내 성향과도 잘 맞을 것 같았다. 문제는 똑똑한 사람들만 트레이더를 하는 것 같았다. 정말 트레이더가 되고 싶어 기도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적을 보여주셨다. 내 머리와 내 성적으로는 갈 수 없는 대학의 수학과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은혜로 입학은 했지만 졸업을 하기까지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 내가 입학할 때 그 대학에는 성적 미달(?)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1년 동안 공부를 시켜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이 아니면 그런 대학에 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국은 대학이 보통 3년인데 나는 4년을 채우고 졸업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졸업하기까진 정말 힘들었고 거의 울면서 공부를 했다. 한국은 외국 대학에 비해 졸업이 비교적 쉽지만 외국 대학들은 공부를 못하면 졸업을 죽어도 안 시켜주기 때문이다. 입학도 졸업도 은혜 아니면 달리 말할 게 없었다.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이단아였다. 동생이 셋 있는데 다 공부를 잘해서 한국 사람들이 딱 들으면 바로 아는 영국에 유명한 대학을 졸업했고, 아버지께서도 영국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따시고 영국 한인회 회장까지 역임하셨는데, 나는 대학 갈 때까지 책 한번 안 펴본 아이였기에 어머니께서 날 위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셨는지 모른다.  

결국 괜찮은데서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할 때가 되었는데 내가 너무 좋은 회사만 지원해서 그런지 이력서 쓰는 실력이 없어서 그런지 넣는 곳마다 다 떨어졌다. 취직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때 연봉을 제일 많이 준다는 회사에서 연락이 오고 면접을 보았는데 또 덜컥 붙어버렸다. 나도 가족들도 깜짝 놀랐다. 하나님께서 또 은혜를 부어주셨다. 나중에 어떻게 다 보답하라고 계속해서 은혜를 주시는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결국 내가 꿈꾸던 트레이더가 되었고 연봉도 인센티브도 주님의 은혜처럼 넘치게 받았다. 회사 생활을 하다가 이젠 결혼을 해야될 때가 됐다고 생각하여 주변을 보니 여자가 없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공부를 하러 가게 되었다.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와이프를 찾을 목적이었다.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지금의 와이프를 보고 다짜고짜 결혼을 하자고 하였다. 나는 당연히 ‘연애=결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사귀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된다 생각하여 결혼을 하자고 쫓아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와이프 입장에선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처음 보는 한국말도 잘 못하는 영국교포가 사귀자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자니 어이가 없었겠다. 어쨌든 결국 우리는 결혼을 했고, 예쁜 아이들도 셋이나 얻었고, 엄청나게 행복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또한 주님의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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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다니면서 개인 사업을 시작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축구와 트레이딩밖에 없으니 당연히 트레이딩 사업이었다. 올해로 사업을 한지 12년이 되었다. 하나님께선 이 못난 나에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지 않게 매일 만나를 주시듯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편하게 지낼 수 있을만큼 항상 도와주신다. 물론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으나 하나님께선 모든 상황에서 교훈을 주시고 깨달음을 주신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은혜다. 

주님의 은혜로 CME그룹(시카고상품거래소)이 한국에서 진행했던 심포지엄에서 메인 스피커로 강연도 한 적이 있다. 나보다 더 똑똑하고 잘하는 트레이더들도 많았을텐데 이런 기회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 같다. 당시 미래에셋,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한국에 큰 증권회사 트레이더들을 대상으로 옵션 트레이딩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강의를 했었다(한국말이 서툴러 통역을 썼다). 나에게도 정말 좋은 공부가 됐었다.

결혼 후 대만, 미국, 말레이시아, 멕시코, 캐나다 등 해외를 돌아다니며 여행하듯 살았다. 책에서 볼 수도 얻을 수도 없는 값진 인생 공부가 되었고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지금 이곳 한국 강진에서의 생활도 훗날 우리 가족에게 너무 예쁜 추억이 될 것 같아 하루 하루 소중하다. 강남교회를 가면 친척분들을 뵙고 오는 기분이다. 따뜻하고 좋다. 

 돌아보면 내 인생은 계속되는 은혜의 연속이었다. 축구선수, 트레이더, 결혼, 삼형제! 모든 게 은혜가 아닌 것이 없다. 매일 밤 아이들에게 기도를 해주고 일주일에 한번 가정예배를 드린다. 예배를 드릴 때 아이들이 찬양할 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에도 이렇게 예쁜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엔 얼마나 예쁠까싶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은혜를 주셔서 내가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을 실망시키면 안된다.

 하나님, 은혜를 부어주시는 김에 넷째도 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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