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 정탐꾼의 회의적인 보고에 온 회중은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합니다(1).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히 11:6).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곡은 회개로 이어지는 기도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한 채 절망에 빠졌습니다. 애굽에서부터 홍해, 광야까지 수많은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그곳이 자신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 여겼습니다. 밤새도록 통곡했다는 것은 그들의 절망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절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불신앙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복 앞에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해 원망합니다.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탄식합니다(2). 이는 지도자에 대한 불만이자,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성경은 원망을 매우 심각한 죄로 다룹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하며,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고전 10:10-11).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단지 환경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며, 하나님의 인도와 약속을 거부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들은 고난 앞에서 반복적으로 죽음을 입에 올렸습니다. 홍해 앞에서도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원망했고(출 14:11), 고기를 달라 할 때에도(출 16:3), 물이 없을 때에도(출 17:3) 죽음을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습관적인 말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은혜에 대한 모욕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고 권면하며(약 5:9),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증거합니다. 믿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절망에 빠진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의심합니다.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고 합니다(3).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하신다는 불신이며, 하나님의 약속보다 인간의 안전을 더 신뢰하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근심은 실제로는 불필요한 것이었고, 결국은 믿음 없는 두려움에 불과했습니다. 백성들의 시선은 온통 자신들의 목숨과 자녀의 안전에만 있었고, 그들의 근심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과는 무관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의 질서를 거부하며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모의합니다(4). 이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통치를 거절하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반역 행위였습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들 「모세, 아론, 여호수아, 갈렙」을 돌로 치려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아갑니다(10). 그들의 분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을 향한 미움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이런 실수를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신뢰하기보다는 현실을 기준으로 판단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고백했습니다(빌 3:13-14).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을 때 인간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푯대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부르심입니다.
백성들의 반역 앞에서 모세와 아론은 온 회중 앞에 엎드립니다(5). 이는 항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의탁하겠다는 표현이며, 자신들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습니다(6). 이는 단순한 분노가 아닌,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신앙에 빠진 백성들에 대한 깊은 슬픔과 절망의 표현이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심정의 표출이기도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을 가지고 외칩니다. “우리가 정탐한 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7-8). 그들의 말은 상황을 분석한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선포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외형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기준으로 그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칩니다(9). 이는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기반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창 15:16). 이는 가나안 족속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그 땅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이 계획을 믿었습니다. 그들이 말한 “보호자가 떠났다”는 표현은 그들이 의지하던 모든 일반 은총이 제거되었다는 뜻이며,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만이 남아 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은 백성들의 마음을 돌리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회중은 오히려 그들을 돌로 치려 합니다(10). 이는 더 이상 반론의 여지가 없을 때, 악한 자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보다 폭력으로 덮으려는 미련한 선택이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십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공의와 은혜를 함께 드러냅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라고 찬송했습니다(시 37:28). 이스라엘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믿음을 저버렸고,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도 다시 광야로 돌아가 사십 년을 헤매게 되었습니다(33).
믿음을 잃는 순간, 우리는 눈앞의 복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조건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을 본받아, 오늘의 현실을 믿음의 눈으로 해석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신 분이며, 그분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믿음만이 우리의 길을 열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게 하는 열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