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수) 느헤미야 11:1-12:26 / 자원하는 자들로 세워지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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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4건 조회 173회 작성일 25-10-22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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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3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자기 성읍 자기 기업에 거주하였느니라 예루살렘에 거주한 그 지방의 지도자들은 이러하니

 4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이니 그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대 손이며

 5 또 마아세야니 그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대 손이요 스가랴의 육대 손이요 실로 사람의 칠대 손이라

 6 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은 모두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였느니라

 7 베냐민 자손은 살루이니 그는 므술람의 아들이요 요엣의 손자요 브다야의 증손이요 골라야의 현손이요 마아세야의 오대 손이요 이디엘의 육대 손이요 여사야의 칠대 손이며

 8 그 다음은 갑배와 살래 등이니 모두 구백이십팔 명이라

 9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

10 제사장 중에는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와 야긴이며

11 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이니 그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 손이며

12 또 전에서 일하는 그들의 형제니 모두 팔백이십이 명이요 또 아다야이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블라야의 손자요 암시의 증손이요 스가랴의 현손이요 바스훌의 오대 손이요 말기야의 육대 손이며

13 또 그 형제의 족장된 자이니 모두 이백사십이 명이요 또 아맛새이니 그는 아사렐의 아들이요 아흐새의 손자요 므실레못의 증손이요 임멜의 현손이며

14 또 그들의 형제의 큰 용사들이니 모두 백이십팔 명이라 하그돌림의 아들 삽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느니라

15 레위 사람 중에는 스마야이니 그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요 분니의 현손이며

16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이니 그들은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17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이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18 거룩한 성에 레위 사람은 모두 이백팔십사 명이었느니라

19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이니 모두 백칠십이 명이며

20 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살았고

21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니 시하와 기스바가 그들의 책임자가 되었느니라

22 노래하는 자들인 아삽 자손 중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사뱌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

23 이는 왕의 명령대로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 주었기 때문이며

24 유다의 아들 세라의 자손 곧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

25 마을과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일부는 기럇 아르바와 그 주변 동네들과 디본과 그 주변 동네들과 여갑스엘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며

26 또 예수아와 몰라다와 벧벨렛과

27 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28 또 시글락과 므고나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29 또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뭇에 거주하며

30 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마을들과 라기스와 그 들판과 아세가와 그 주변 동네들에 살았으니 그들은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31 또 베냐민 자손은 게바에서부터 믹마스와 아야와 벧엘과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32 아나돗과 놉과 아나냐와

33 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34 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

35 로드와 오노와 장인들의 골짜기에 거주하였으며

36 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의 일부는 베냐민과 합하였느니라


【11장】


 1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제사장들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2 아마랴와 말룩과 핫두스와

 3 스가냐와 르훔과 므레못과

 4 잇도와 긴느도이와 아비야와 

5 미야민과 마아댜와 빌가와

 6 스마야와 요야립과 여다야와

 7 살루와 아목과 힐기야와 여다야니 이상은 예수아 때에 제사장들과 그들의 형제의 지도자들이었느니라

 8 레위 사람들은 예수아와 빈누이와 갓미엘과 세레뱌와 유다와 맛다냐니 이 맛다냐는 그의 형제와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고

 9 또 그들의 형제 박부갸와 운노는 직무를 따라 그들의 맞은편에 있으며

10 예수아는 요야김을 낳고 요야김은 엘리아십을 낳고 엘리아십은 요야다를 낳고

11 요야다는 요나단을 낳고 요나단은 얏두아를 낳았느니라

12 요야김 때에 제사장, 족장 된 자는 스라야 족속에는 므라야요 예레미야 족속에는 하나냐요

13 에스라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아마랴 족속에는 여호하난이요

14 말루기 족속에는 요나단이요 스바냐 족속에는 요셉이요

15 하림 족속에는 아드나요 므라욧 족속에는 헬개요

16 잇도 족속에는 스가랴요 긴느돈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17 아비야 족속에는 시그리요 미냐민 곧 모아댜 족속에는 빌대요

18 빌가 족속에는 삼무아요 스마야 족속에는 여호나단이요

19 요야립 족속에는 맛드내요 여다야 족속에는 웃시요

20 살래 족속에는 갈래요 아목 족속에는 에벨이요

21 힐기야 족속에는 하사뱌요 여다야 족속에는 느다넬이었느니라

22 엘리아십과 요야다와 요하난과 얏두아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이 모두 책에 기록되었고 바사 왕 다리오 때에 제사장도 책에 기록되었고

23 레위 자손의 족장들은 엘리아십의 아들 요하난 때까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으며

24 레위 족속의 지도자들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그들은 그들의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대로 순서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25 맛다냐와 박부갸와 오바댜와 므술람과 달몬과 악굽은 다 문지기로서 순서대로 문안의 곳간을 파수하였나니

26 이상의 모든 사람들은 요사닥의 손자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 때에 있었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학사 에스라와 레위인들로부터 율법을 듣고 회개하며 새로운 결단을 인봉하였습니다. 그들은 잘못을 고백하고 새 언약을 맺은 후, 공동체를 다시 세워가기 위한 결단을 합니다. 성전과 성벽은 재건되었지만, 예루살렘은 여전히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철저히 무너졌던 그곳은 과거와 달리 편안히 거주할 만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대적들의 침략에 가장 먼저 노출될 수 있는 위험한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었고, 하나님의 언약이 새롭게 회복되는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삶이 예루살렘에 뿌리내려야 성전과 성벽이 온전히 지켜지고 예루살렘이 다시금 신앙의 중심지로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으로의 이주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흩어진 자리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자녀들과 가정을 세운 상태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활의 기반을 모두 포기하는 일이었습니다. 안정된 생계와 익숙한 환경을 내려놓고 불편하고 불안정한 곳으로 옮겨야 했기에, 자발적으로 결단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민족의 회복을 위해 지도자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로 했습니다(11:1). 이들의 결단은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한 신앙적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예루살렘은 그 어떤 곳과도 바꿀 수 없는 거룩한 도시였지만, 실제적인 삶의 조건만 본다면 불편하고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으로의 이주는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헌신이었습니다.

결국 지도자들이 앞장서 결단한 후, 나머지 백성들 가운데서 제비를 뽑아 십분의 일을 예루살렘에 거주하도록 하였습니다. 제비뽑기는 이스라엘이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방법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광야에서 가나안 땅의 분배를 결정할 때에도 제비를 사용하였고(민26:55-56), 아간의 범죄를 밝혀낼 때에도 제비로 하나님의 뜻을 물었으며(수7:16-18), 사울이 왕으로 세워질 때에도 제비가 사용되었습니다(삼상10:19-21). 다윗 시대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직무가 제비로 나뉘었고(대상24:5), 초대 교회에서도 맛디아를 사도로 세울 때 제비가 뽑혔습니다(행1:26). 이는 사람의 뜻이나 욕심이 개입될 수 없는 방식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거주자를 정하는 데에 제비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순종하겠다는 결단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제비를 뽑혀 예루살렘에 이주하도록 결정된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불평하거나 반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기꺼이 그 길을 받아들였습니다. 더 나아가 제비에 뽑히지 않았음에도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결단했던 그들의 신앙이 이제 실제적인 삶의 순종으로 증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원하여 순종하는 것이 값지고 복된 일입니다. 그러기에 지도자들은 자원하여 순종한 이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강요된 순종이 아니라 자발적인 헌신이며, 신앙은 자유의지로 하나님께 드려질 때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성도는 자원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원하는 자들을 귀히 사용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자원하여 들어간 자들은 대적들의 침략에 노출된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무너진 성읍을 재건해야 하는 노동을 감당해야 했으며, 성전과 성벽을 지키는 임무까지 맡아야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헌신이 아니라 삼중고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름은 후대에 기억되도록 기록되었습니다(11:3-24). 유다 자손들로부터 시작하여(11:4-6), 베냐민 자손들(11:7-9), 제사장들(11:10-14), 레위인들(11:15-18), 문지기들(11:19), 그리고 노래하는 자들(11:22-24)까지, 다양한 지위와 환경 속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헌신했습니다.

광야에서 회막이 세워질 때에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린 사람들이 있었고(출35:29), 요아스 왕이 산당을 철폐하고 성전을 보수할 때에도 자원하는 손길들이 있었습니다(왕하12:1-9). 사도 베드로 역시 장로들에게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자원하여 양 무리를 치라”고 권면하였습니다(벧전5:2). 오늘 우리 역시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 무엇을 자원하여 헌신하였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신앙은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원함으로 드러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예루살렘에만 거주한 것이 아니라 주변 성읍에도 많은 백성이 정착하였습니다. 그곳 또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땅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할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만 거하시지 않고, 자기 백성이 거하는 모든 곳에 함께하시며 그 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사는 십분의 일이 특별히 복되고, 나머지 십분의 구가 덜 귀하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장소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시며, 오직 자기를 희생하며 자원하는 마음을 기뻐 받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사는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순종하고 헌신하는가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성벽을 봉헌하기에 앞서, 조상들의 발자취를 돌아보았습니다. 스룹바벨 시대에 귀환했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명단이 기록되었고(12:1-9), 요야김 대제사장 시대에 섬겼던 제사장들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12:12-21). 그리고 느헤미야 이후부터 성벽 봉헌식에 이르기까지의 레위 족장의 명단이 이어집니다(12:22-26). 이 기록은 오늘 우리의 공동체가 있기까지 누군가의 눈물과 희생적인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회개하기 전의 이스라엘은 조상들 때문에 자신들이 고난을 당한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나 회개한 후에는 조상들의 믿음을 기념하며 그 발자취를 존중하였습니다. 이것이 회개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믿음을 지켜 온 조상들의 삶을 기억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고 선포하였습니다(사46:9). 

우리가 지나온 과거 속에서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내일 나아갈 길에 대한 지혜를 얻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신앙의 길입니다. 예루살렘에 자원하여 거주한 자들의 이름이 기억된 것처럼, 오늘 우리가 드리는 작은 순종과 헌신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언제나 자원하는 자들의 손을 통해 세워져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주님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물으시며, 자원하는 심령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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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현님의 댓글

정현 작성일

샬롬.

깨달은 점---)
은혜를 주시기 위해 나를 항상 지켜보시는 하나님. 다시 기회를 주기위해 항상 말씀으로 전해주시는 하나님.

진정한 자유를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이십니다.

실천하기---)
하나님의 말씀안에 세워진 나의 모든 시간과 공간 상황에 오직 감사만 채우겠습니다. 이해되지않는 상황에도 감사하며 순종하기위해 끊임없이 말씀앞에 서겠습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나는 항상 '크로노스' 속에서, 그러나 하나님은 '카이로스',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와 살아계심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말씀 안에서 시간과 공간을 감사로 채우시려는 결단 속에 "하나님의 때"를 반드시 붙잡게 될 것입니다.

건축학개론님의 댓글

건축학개론 작성일

묵상: 이들이 생업을 해야 제사장들도 먹고 살수 있기에 모두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30절까지는 유다 자손의 거주지이고 36절 까지가 베냐민 자손의 거주지예요. 기럇아르바는 야곱이 밧단아랍에서 돌아와 아버지 이삭을 만난 장소이고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로 아비멜렉과 분쟁이 났을때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이에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거주하라고 내게주신 그땅에서 순종과 겸손으로서 잘 살아내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묵상은 항상 1인칭 "나는~"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성실한 자의 길에는 항상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삶이 척박하지만 기꺼이 그 괴로움을 견딜 것을 결단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거주처에서 한량없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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