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묵상

요한일서 5:1-12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믿음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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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교회
댓글 2건 조회 151회 작성일 25-04-24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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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믿음의 능력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제 믿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요한사도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라고 선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새 생명의 증거임을 강조합니다(1). 이 말씀은 단지 입술의 고백이나 지적 동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라는 실존적인 선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그분의 본성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반드시 형제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삶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믿음은 반드시 사랑이라는 열매로 나타납니다. 성도는 같은 하나님 아버지를 둔 가족이며,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곧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향한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의 핵심이며,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2).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명이 무겁지 않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들고, 억제하고 제한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를 억압하는 짐이 아니라 생명의 능력을 주는 길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죄의 종 되었던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말씀을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 안에서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순종은 형제를 사랑하는 실제적 행동으로 나타나며, 사랑은 곧 계명 순종의 실체로 드러납니다(3).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제 세상을 이기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4).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단순한 물질 세계나 삶의 현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가치관과 죄된 본성, 악의 세력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세상의 유혹과 악의 권세 앞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 모든 유혹과 죄를 이기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단순히 무언가를 바라는 바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분을 신뢰하며 따르는 삶 그 자체입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그 이름으로 악한 자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5).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세상의 모든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지 고난의 상징이 아니라, 악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승리를 선포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 승리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언하면서 물과 피와 성령의 증거를 언급합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6). 여기서 물은 예수님의 세례 사건을, 피는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그 사명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지금도 성도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게 하시는 진리의 영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일치된 증거를 제공함으로, 예수님의 신성과 사역의 진실성이 온전히 증명됩니다(7-8).

율법에서도 두세 사람의 증언으로 사실 여부를 결정하듯이(신 19:15),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구속 사역에 대해 세 가지 결정적인 증인을 세우셨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확신은 단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내적인 확증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외적인 증거뿐 아니라 내면의 성령의 확신을 통해 믿음 위에 더욱 굳게 서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시고, 그 믿음 가운데 거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롬 1:17).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 생명은 그저 시간이 무한정 연장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질적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은 단지 죽음 이후의 생존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생명이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1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이 생명을 누리고, 이 생명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씨앗이십니다. 씨앗이 땅속에서 썩고 자라 열매를 맺듯,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심겨질 때, 모든 어둠과 절망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생명은 성도의 힘이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 앞에 감사하며, 날마다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자유케 하는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따라 사는 성도는 세상 가운데서도 생명의 빛을 비추며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하게 증거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십자가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고, 그 사랑을 믿는 자에게는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단지 종교적 동의가 아니라, 존재 전체를 거는 생명의 결단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며,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영적 전쟁터와도 같은 이 세상에서 성도는 결코 홀로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전신 갑주가 있고, 성령의 확신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이 이름을 의지할 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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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선짱님의 댓글

해선짱 작성일

샬롬!!  김해선입니다

♡ 깨달은점
 아들이 있는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겐 생명이 없는데 나는 주안에 늘 거하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로서 형제를 사랑해야함을 깨닫습니다.

♤ 
 하나님 계명을 지키며 사랑하고 나의 삶을 기꺼이 내어드리는  헌신을 하며 살겠습니다.

강남교회님의 댓글의 댓글

강남교회 작성일

적대적 관계에 있거나 이기적이고 미운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하려 한다거나 혹은 먹이를 주려고 하며 오히려 공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격적인 관계를 경험해보지 못해보았기 때문입니다. 방법은 지속적으로 사랑을 주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성급히 서두르거나 포기하지 않고 삶 속에서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것, 그것이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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